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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60대 원문보기 글쓴이: 김원호
2. 매순간 희망을 향해
<1>동물의 왕국 케냐로 가는 길
케냐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및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토의 일부는 인도양과 면해 있다. 국토는 남한의 6배 정도이고, 인구는 3200만 명이다. 15세기경부터 포르투갈의 침공을 받아 식민지 통치가 시작되었다. 20세기 초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 모든 식민지가 그러하듯 백성들은 피폐한 삶이 계속되었고, 자원과 인권이 수탈당했으나 마침내 1963년 6월 자치정부를 수립하였다.
아프리카 전역에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케냐야말로 자타가 인정하는 동물의 왕국이다. 적도에 위치하고 있으나 1,000m 이상의 고원지대이고, 상온이 17도 정도라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가는 곳마다 모기장과 모기약이 준비되어 있으니 말라리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모기의 숫자로만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 훨씬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자치정부수립 후 동물을 보호하는 정부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로비공항은 사파리를 하러 온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붐볐고, 관광객들 틈 사이로 한국인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5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와 꿈에 그리던 케냐의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했으나, 입국수속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의자를 찾을 수 없어서 염치불구하고 공항의 맨바닥에 몸을 주저앉히고 기다렸다. 모든 사람이 검다. 내가 그간 살아오면서 보았던 검은색이 아니다. 진흙을 개어 얼굴에 발라놓은 것 같이 약간은 번들거리면서 새카맣다고나 할까? 뚱보 흑인은 찾을 수 없고, 늘씬한 키에 윤곽이 뚜렷한 눈과 코, 입 그리고 밋밋한 목 줄기, 저 인물에 피부색을 흰색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절세의 미남·미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교만해질까봐 1퍼센트로 부족하게 준 신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파리(safari)라는 말의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현재의 올바른 쓰임은 옛날 같이 총을 갖고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말인 것 같다. 걸으면서 구경하는 워킹 사파리는 동물로부터의 위험성이 많고, 벌룬(열기구) 사파리는 하늘에서 지상의 모든 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으나, 별도의 거금을 지불해야 하므로 여행객으로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일반적으로 자동차 사파리를 하게 된다.
자동차라야 우리나라 봉고차를 개조하여 윗부분은 오픈카 형태이나 지붕이 있다. 동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상체만을 내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쇠창살에 갇혀 있는 맹수와 울타리 안에 있는 초식동물들을 수없이 봐왔으나, 이곳에서는 입장이 정반대다. 동물들은 넓은 초원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뛰놀고, 사람들은 사파리 자동차 우리에 갇혀 그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신기하다고 탄성을 지르며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파리 자동차가 맹수 주위에 몰려들어 아우성을 쳐도, 맹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낮잠을 즐기거나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다. 마치 내가 이 초원의 주인이라는 듯이.
암보셀리 국립공원(Amboseli National Park)은 원래 1948년에 수렵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탄자니아에 있는 킬리만자로산 북서쪽 3,261㎢를 차지하는 지역이었다니 규모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초원과 숲의 바다라고나 할까.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7명씩 한 조를 이루어 사파리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포장도로가 끝나자 비포장도로가 시작됐다. 시작과 동시에 검은 얼굴에 빨간 망토를 몸에 걸치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걷고 있는 마사이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솟구쳐 오르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검은 대륙에 검은 마사이족, 내리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검붉게 내 마음에서 요동을 친다.
장시간 비포장도로의 여행이기에 자동차가 불규칙적으로 춤을 춰 엉덩방아를 찧게 하고, 나도 모르게 어이쿠, 어이쿠!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와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우산 아카시아 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린 새집도 정겨워 보이고, 성큼성큼 걷고 있는 타조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광활한 초원 위에 신기루같이 나타나서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코끼리 떼는 실로 장관이었다. 갇혀 있는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생기가 감돌고, 빛깔엔 자연 그대로의 진한 색이 배어 있다. ‘아프리카의 빅파이브’라고 일컬어지는 코뿔소, 버팔로, 코끼리 및 사자는 이곳에서 볼 수 있었으나, 표범은 보이지 않았다. 킬리만자로의 설산(雪山)에 모두 숨어버렸을까?
정신없이 동물을 구경하다 앞을 보니 킬리만자로가 성큼 다가와 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으로 해발 5,895m라니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헤르만 헤세(Hesse, Hermann)의 역작 『킬리만자로의 눈』이 필름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정상에는 흰 눈이 쌓여서 흰 모자를 눌러쓴 듯 보이고, 산중턱엔 흰 구름이 허리띠를 매듯 둘러쳐 있다. 산 아래쪽은 숲으로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황혼이 짙어오니 모든 동물가족들이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킬리만자로 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곳으로 가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부터 다시 초원으로 이동을 한단다. ‘동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도 킬리만자로로군.’ 혼자서 중얼거렸다.
*트리탑스 호텔(Treetops Hotel)
아베르데어 국립공원(Aberdare National Park)은 울창한 숲과 습지, 수많은 동물들을 자랑하고 있지만, 아베르데어가 유명해진 것은 트리탑스 호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2년 영국의 왕 조지 6세가 승하하자 그 당시 이곳에 머물러 있던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지었으나 현재는 몇 그루의 오래된 나무가 용트림을 치면서 건물의 중심 부분을 뚫고 올라가 있고, 건축물은 나무를 이용한 5층의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밤낮 없이 동물들이 호텔에 접근하므로 아래층에는 객실이 없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이용해 호텔을 오르내리게 설계가 되어 있다.
호텔 앞에는 객실에서 훤히 보이는 큰 마당이 있고, 마당에 연해서 방죽이 있다. 말이 객실이지 5평 정도의 방에 야전침대 두 개를 놓을 정도의 크기이고,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목조건물이라 움직이면 소리가 나므로, 동물보호차원뿐만 아니라 옆 사람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걸음걸이를 조심해야 한다. 화재 예방을 위해 이곳 호텔은 절대 금연구역이라 애연가들에게는 고통이 따른다.
객실은 모두 80개이고, 이곳에 머무르려면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니 유명세를 단단히 지불하는 것 같다. 마당에는 소금을 뿌려놓아서 밤이 새도록 코끼리가족, 물소가족, 산돼지가족 등이 무리를 지어 와서는 소금을 먹고 가면 또 다른 동물들이 반복해서 오고간다. 가족과 가족 간에 으르렁거리는 기 싸움을 조금씩 하고는 하지만 큰 싸움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배설물은 한 무리의 새들이 쪼아 먹고 날아가고, 방죽에서는 청개구리가 계속 울어대는데 마치 동물들에게 소금과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평화롭게 자연의 질서는 유지되는가 보다.
객실에는 각 방마다 부저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가 나타날 때는 부저를 울려준다. 부저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비비며 옥외 관망대 또는 3층 관망대로 가서 준비된 담요를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은 채, 물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빛을 내뿜는 맹수의 눈과 마주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낭만이 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홍학과 페리칸
나꾸루 호수의 둘레가 50km라고 한다. 길이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오산을 지나 송탄까지의 거리이니 얼마나 큰 호수인가. 이곳에 핑크색 홍학과 주둥이가 긴 페리칸이 호숫가에 300m 넓이로 꽉 들어차서 먹이를 쪼아대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안내인의 말을 빌리면,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약 200만 마리라고 한다.
한 곳에 서서 호수의 반대편을 바라다보면 활짝 핀 진달래꽃의 군락을 보는 것 같고, 더 멀리 보노라면 핑크빛이 점점이 이어진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다. 이들의 먹이는 민물 말이나 새우인데, 먹이에 카로티노이드(carotinoid)라는 성분이 있어서 홍학의 색이 핑크색으로 보인단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호기심으로 홍학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일제히 비상하며 추는 군무(群舞)는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비상과 동시에 총알같이 현지 감시원이 나타난다. 그래서 케냐 인들은 아름다운 홍학을 늘 감상할 수 있고 우리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철새 도래지인 우리나라의 낙동강 하구가 떠오른다.
*적도를 지나며
‘에콰도르(Republic of Ecuador)’라는 영어로 표기된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낯이 익은 단어다. 중남미에 있는 작은 나라의 이름이 아닌가? 사람들이 몰려 있기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가 보았더니, 물을 넣은 그릇에 현지인이 나뭇잎을 넣으니 나뭇잎이 꼼짝하지 않고 정지된 상태로 그대로 있다. 약간 위쪽으로 그릇을 옮기니 N 방향으로 나뭇잎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반대 방향으로 그릇을 옮기니 S 방향으로 움직인다. 같은 쪽에서 더 멀리 옮기는 만큼 나뭇잎은 빨리 움직인다. 적도에 와 있음이 실감이 났다.
남루한 옷차림에 코를 질질 흘리고 있는 어린 소년을 본 인정이 많은 소설가 안 영 여사가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꼭 쥐어줬다. 가난한 친척에게 차비나 용돈을 주듯이. 소년은 지체 없이 우리 주위를 떠나고, 그 광경을 본 흑인 어른은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빼앗듯이 소년의 손에 쥐어진 돈을 갖고는 멀리 사라졌다. 안 여사는 차 안에서 안타까운 표정만을 짓고, 차 앞에 서 있던 현지 안내인은 애써 못 본 채 먼 하늘만 말없이 쳐다보았다.
목각 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옆에서 상인들과 흥정을 했다. 밀고 당기고가 어쩌면 그렇게 우리네 장터를 연상하게 하는지. 산돼지의 미완성 조각품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조각가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각품에 검은색 칠을 했다.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 있는데, 그가 색칠을 중단하고 진열대에 가더니 마사이 목각 하나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묻지도 않았는데, 왜 이 조각품의 배 부분이 쏙 들어가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으니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배가 고파서 그렇단다.
빈민층은 60센트를 갖고 하루를 사는데, 아침은 빵과 우유로 때우고,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다시 빵으로 허기를 달랜다고 한다. 자기들이 못 사는 것은 모두 인도출신 아시안 아프리칸 때문이라고 푸념을 한다는 케냐 한국 대사의 말이 생각났다. 늘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대하던 케냐 인들은 척박한 환경이나 가난함과는 상관없이 행복해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갖고 있을 만큼 갖고 있고 누릴 만큼 누리고 살면서도 언제나 상대적 빈곤을 느끼며 마음이 허기진 상태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본다.
그렇다. 행복의 지수는 갖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
탄자니아의 마라 강을 거쳐서 마사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길고도 험했다. 흙먼지를 온 몸에 뒤집어쓰면서 비포장도로를 6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이라야 돌멩이 하나를 산등성이에 세워놓은 것이 고작이다. 국경 수비대도 없고 비자를 요구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혹시 오다가다 탄자니아의 국경 수비대를 만나면 동물들을 따라서 왔다고 하면 그만이란다. 동물들이 비자 없이 다니는 길이니 인간인 너희들도 동물이니 자유롭게 이동을 해도 된다는 뜻인가 보다. 하기야 그들은 부족개념이 강하고, 국경이라는 것은 식민지 시대에 강대국들이 땅을 빼앗기 위해 그어놓은 선이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매년 7월과 8월이 되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에서 누우 떼와 얼룩말 무리가 마라 강을 거쳐 케냐의 마사이마라 쪽으로 초원을 따라 이동하고, 10월경이면 온 길을 따라 되돌아간다. 이동기에는 필수적으로 마라 강을 건너야 하고, 건너는 도중 재수가 없으면 그날이 제삿날이 된다. 마라 강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어와 하마 떼가 우글거리고 있다. 누우와 얼룩말이 이동할 때만을 기다리는 듯, 물 속에 몸을 숨긴 채 잠복근무 중인가 보다. 폭풍전야의 고요가 흐르고 있다.
마사이족이 특유의 옷을 입고 창을 손에 든 채 춤을 출 준비를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안 된다고 손을 내젓는다. 지불할 관람료의 흥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리란다. 현대판 마사이는 돈맛을 알고, 자연과 살아가는 멋은 잊어가고 있었다. 흥정이 끝난 모양이다. 우두머리인 듯한 마사이 한 사람이 우리 앞으로 다가선다. 우리 일행을 정렬시켜 놓은 다음, 한 마사이 병사가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안내를 겸한 설명을 했다. 그러고는 마사이들이 우아! 우아! 입으로 위협적인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하늘을 향해 뛰었다. 약간은 춤을 추기 좋게 구부러진 어깨를 으쓱이며 춤을 춘다. 높이 뛰는 만큼 멀리 있는 사자를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높이 뛰는 사람이 유능한 전사이다. 붉은 옷을 입는 것은 동물들이 붉은색을 무서워하기 때문이고, 손에 든 창은 다른 부족 또는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함이란다. 퇴색된 원시를 흥미롭게 보았다.
30여 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마사이 마을에는 흙과 소똥을 섞어서 지었다는 토담집 몇 채가 옹기종기 앉아 있다. 안에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취사를 하는 곳과 잠을 자는 곳이 있었다. 소와 함께 살고 있단다. 총각이 결혼을 할 때 색시 집에 소 한 마리를 주어야 한다니, 몸값이 소 한 마리라고 하면 잘못된 말은 아닐 것 같다. 우리네 외양간은 환기라도 잘 되는데 이곳은 조그마한 환기통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한참 동안 가만히 있어야 동공이 열려서 모든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마사이족과 소는 경계도 없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마당에는 소똥이 쭉 깔려 있어서 발로 밟기에는 섬칫한 느낌이 들었다. 소똥의 냄새가 해충을 쫓아내기 때문에 벽에도 바르고 마당에도 깔아놓는단다. 소의 목에서 뽑은 피와, 우유를 섞은 것을 주식으로 했다. 또 다른 토담집에서 흘러나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사이 마을을 떠났다.
*사파리 게임
‘사파리 게임’이란 말 그대로 동물들을 찾아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시합이다. 그러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오전 내내 헤매어도 사자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발에 채일 정도로 보이는 얼룩말, 가젤, 코끼리, 누우 떼, 기린 등은 수도 없이 봐서 이젠 흥미가 없다. 이곳에 오면 사자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여행사 사장의 얼굴에도 초조한 빛이 엿보인다.
사파리 자동차 운전자들끼리 워키토키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은 것 같다. 그들의 통화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어도, 갑자기 교신내용이 많아졌다. 하늘에는 독수리 떼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낮게 날고 있다. 상황으로 보아 무언가 있다는 직감이 왔다. 쫓아가서 보았더니 그늘 아래 얼룩말의 뼈만 보이고 그 옆에 사자가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다시 장소를 옮겼다.
장관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 두 마리가 나무 옆에서 분노가 섞인 소리를 지르니, 갈기를 세운 수놈 사자 한 마리가 가시덤불 그늘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고, 20여 마리의 예쁜 사자새끼들이 줄을 지어 뒤따라 나왔다. 그 다음에는 수놈 사자 몇 마리가 새끼들을 호위하면서 나왔다. 그러자 사자들에게 빨리 떠나라는 듯이 코끼리가 발을 구르며 위협적인 포효를 했다. 암 사자가 마지못해 마지막으로 그늘을 벗어났다.
무슨 사연이 깊었기에 코끼리는 그렇게 분노하고 밀림의 왕자인 사자가족은 아무 힘없이 무너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중국 계림에서도 우리를 관객으로 덩치 큰 물소와 호랑이가 생사를 건 싸움을 했을 때, 물소가 뿔을 앞세워 선제공격을 하자 호랑이가 잽싸게 물소의 목을 공격했다. 그때 비명소리와 함께 거품을 내뿜으면서 힘없이 쓰러진 물소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는데, 믿기지 않는 광경이 내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0여 마리의 새끼사자가 8개월이라는 현지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내 나름대로 이해를 했다. 맹수도 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꼬리를 내릴 줄 아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네 인간은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특히 부부의 그림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세 쌍이 결혼을 하면 한 쌍이 이혼을 하고, 이혼을 한 그들은 그들이 공동으로 생산한 자녀를 맡지 않겠다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어느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개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어릴 적부터 들으면서 한평생을 살아왔다.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자니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크레이크 패커의 저서를 살펴보면, 수놈 사자 몇 마리와 암 사자가 무리를 지어 새끼를 낳고 평화롭게 몇 년을 살다 보면, 또 다른 침입자인 수놈 사자 무리와 수성(守城)의 입장에 있는 기존의 수놈 사자들이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기존의 수놈 사자들이 패하는 날 암 사자는 불안과 공포에 싸인 채 좌불안석이란다.
침입한 수놈 사자들이 기존의 새끼들을 모두 물어 죽이는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고, 그날로부터 암놈은 발정이 시작되고 침입자의 새끼를 낳아 한 가족을 이루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롭게 산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침입자가 또 다른 침입을 하고 수놈 사자들은 무리를 지키기 위해 다시 싸움을 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사자의 숫자와 생태계의 먹이사슬도 조절이 된다니 이것도 자연의 조화가 아니겠는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여주인공이 살던 카렌 브릭센의 사가 박물관에는 잘 정돈된 정원과, 세계에서 유명한 케냐의 커피 블루마운틴을 생산하던 녹슨 기계만이 자리를 지킨 채 번성했던 어제를 말해주고 있다. 한국인 전낙원 씨 일가에서 경영하고 있는 사파리 호텔에서 케냐의 민속춤을 감상하며, 생전 처음 악어 고기와 임팔라 고기 등등으로 공복을 채웠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밤은 짙게 깊어만 갔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찾아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게다가 그곳의 풍광에도 호기심이 생겨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3시간 30분 동안 인천공항에서 홍콩으로, 13시간 동안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로, 2시간 30분 동안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으로, 비행기 안에서 몸을 비비 꼬기도 하고 눈가리개를 벗었다 썼다를 몇 번 반복하는 가수면 상태에서 도합 19시간.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을 합하면 꼬박 하루를 보낸 셈이다. 더더욱 잠을 푹 잘 수 없었던 것은 왼쪽 자리에 소설가 K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니 여간 신경이 써지는 것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은 이래저래 고통이 따르는가 보다.
인천공항까지 가서 10년간 유효하다는 황열병 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예방약까지 준비를 했다. 아프리카에는 질병이 많고, 특히 에이즈에 조심하라는 친절한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현지에 와서 보니 모든 의구심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5배이고, 인구수는 4,100만 명이다. 인구비율은 흑인 75퍼센트, 백인 14퍼센트, 기타는 유색인종 및 인도계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연중 22~25도로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며, 낮에는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고 밤에는 선선한 편이다.
케이프타운의 양지바른 산 아래에 자리를 잡은 마을들은 밝은 색으로 채색된 집들이 따사로운 햇볕에 반사되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거리로 나서면 흑인과 백인의 혼합비율이 외관상으로는 미국 워싱턴 D.C.와 같아 보인다. 오후 5시 이후에는 백인들이 썰물같이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흑인들의 발길이 바쁘다.
27년이란 긴 세월을 옥살이하고 흑인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의 3대 정책 중 하나였던 인종차별화정책의 폐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으나, 어느덧 미국의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흑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역사의 물결은 이제 인류의 진보·발전을 위해 피부색을 뛰어넘는 예지(叡智)의 배에 올라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눈앞의 전경을 빠짐없이 눈에 담고 싶어서 테이블 마운틴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의 전면에 자리를 잡았다.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계산인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케이블카가 360도로 회전을 하면서 수직 상승함으로써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운 절경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산에 오르고 보니 왜 테이블 마운틴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이유를 알겠다. 사면이 바윗돌로 깎아지른 듯이 둘러싸여 있고, 윗면은 책상 바닥같이 평평하다. 풀과 앉은뱅이나무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40분 정도를 걷고 나니 갑자기 기온이 변해서 한기를 느꼈다. 변덕이 심한 시어머니 같다. 차에 두고 온 긴 소매의 바람막이 생각이 간절했다.
추운 날씨에 두 무릎을 꿇고 바람을 피해 커피숍으로 갔다. 젊은 흑인 청년이 반가이 맞아주며 코리안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 끝까지 코리아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외국인을 처음 만날 때마다 일본인이 아니냐는 물음을 수없이 받아왔다. 그때마다 아니다, 나는 코리안이라고 강하게 답을 하고는 입맛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이 세계의 구석까지 알려졌으니, 정치·경제·문화·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정말 긍지를 느낄 만큼 성장했을 때를 남몰래 그려본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의 거리는 50km이다. 가는 도중에 물개 섬, 펭귄 서식지, 절벽산 등의 볼거리가 있으니 지루하지는 않다.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시문의 마을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네덜란드계 이주민인 보어(Boer)인들은 두 차례에 걸친 영국인들과의 전쟁을 치르고도 1910년 5월 31일 영국인 지배 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탄생하였다 하니, 그때는 우리나라가 한일합병을 당한 시기이다. 내 조국의 현주소를 생각하게 한다.
희망봉 정상에서 한 줄기 능선이 힘차게 뻗어내려 끝이 물속에 가라앉는다. 능선의 왼쪽은 인도양이고, 오른쪽은 대서양이라 한다. 물의 빛깔도 다르다고 해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다를 응시했다. 쪽빛 바다에 눈이 시리다.
1497년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심한 풍랑을 만나 죽기 직전 육지에 상륙하게 된 곳이 희망봉이라 한다. 그 당시 이곳에는 수많은 배들이 들락거리고, 뱃사람들은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희망에 부풀어 노래를 불렀다는데,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떠나가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에 선 희망봉만이 검푸른 바다를 지키고 있다. 어린시절 지리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희망봉을, 인생의 후반에 가서 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가는 길은 멀기만 한데
수많은 앉은뱅이 흰 꽃이
가까이서 손짓을 하네
대서양과 인도양
능선의 양 날개에 소망을 품고
다리를 놓고 있네
멀리서 온 나그네
가슴에 만감(萬感)으로 피어나는
눈꽃 노래 들리네
길은 어디에도 없는 듯
보이지 않지만
어디엔가 기다리고 있어
기도하는 그대 마음 깊은 곳
여물어가는
키 작은 저 꽃씨처럼
눈산(雪山)에 올라 봉우리 건너는
희망을 가진다면
- 「희망봉」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