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가에게는 좋은 향기가 난다
꽃의 계절, 봄이다.
요즘 유성에 있는 후암정사 마당엔 꽃이 만발하다.
울긋불긋 어찌나 아름답게 피었는지
산신일에 법당을 찾은 후암가족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 법석이다.
꽃향기가 진동하는 마당을 거닐며
얼마 전 올린 구명시식이 생각났다.
그날은 마치 영가님들에
꽃 공양을 잔뜩 올린 것처럼 법당 안에 향기가 진동했다.
그러나 그것은
꽃향기가 아니라 놀랍게도 영혼의 향기였다.
사람에게 저마다 독특한 체취가 있듯
영가에게도 향기가 있다.
그동안 구명시식을 통해
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가들의 향기를 맡았다.
향의 종류도 영가의 수만큼 다양했다.
대개 좋은 영가에겐 좋은 향기가 나고,
문제가 많은 영가에겐 역한 냄새가 난다.
보통 구명시식 전
영가를 초혼하는 단계부터 그날의 구명시식을 직감한다.
결정적인 느낌은 향기다.
법당 안이 좋은 향으로 차면
그 향기의 주인공을 빨리 만나고 싶어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역한 향이 풍겨오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제가 운전부주의로 그만 제 딸과 조카를 죽였습니다.”
40대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12년 전 그는 아내·딸·조카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딸과 열한 살짜리 조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아내는 큰 부상을 당해 시력을 잃고 말았다.
사고지점은 영동고속도로에서도 사고다발지역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뜻밖에 법당 안은 향기로 가득 찼다.
향기의 주인공은 11세의 조카 영가였다.
꿈 많고 착한 아이 영가는 오히려 그를 달래줬다.
---“삼촌, 난 괜찮아. 누나랑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착하고 맑은 영가가 아직까지 초혼되지 못하고
영동고속도로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1세 아이 영가의 다리를 붙잡고 줄줄이 따라온 영가들이었다.
같은 지점에서 사고를 당해 억울한 영가가 된
그들은 아이 영가가 초혼될까 봐 초혼을 막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게’이야기를 했다.
게 몇 마리를 큰 솥에 넣어두면 그 중
똑똑한 게 한 마리가 위로 올라가 탈출하려다가도
그 밑에 있는 다른 게들이 탈출을 못하게 훼방을 놓아 결국 같이 죽고 만다.
---“똑똑한 게를 탈출시키면 여러분도 그곳을 벗어나게 됩니다.
아이 영가를 놓아주세요.”
그제야 영가들은 아이 영가의 다리를 슬그머니 놓아주었는데.
아이 영가가 초혼된 뒤에도 오랫동안 법당 안은 향기로 그윽했다.
그 향기를 맡으며 이제 곧 20년 동안 구명시식을 올렸던
석촌동 후암정사를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가들을 만났던 구명시식.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