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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개봉 / 137분 / 12세 관람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출연 : 케네스 브래너 & 엠마 톰슨
셰익스피어의 영화화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44년작 <헨리 5세>의 명성에 32살의 신예 케니스 브라나가 도전한 작품
감독, 주연, 각색의 1인 3역으로 198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장차 영국 왕실을 이끌어갈 어린 왕자 헨리 5세는 일찍부터 잡기와 장난에 눈을 더 도무지 학문에는 뜻을 두지 않아 왕실 어른들의 근심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헨리 5세의 한심한 행동거지는 성장함에 따라 점점 심해져서 지정잡배와 어울려 다니며 주색과 잡기에 몰두해 황태자로서의 신분에 먹칠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도둑의 무리에 끼여 부랑 생활을 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왕실에서는 헨리가 과연 영국의 왕으로서 적합한 인물인가하는 회의와 우려가 일게 된다. 그런 가운데 1413년 헨리 4세가 서거하고 영국 왕실은 걱정 속에 헨리 5세를 왕위에 옹립한다.
그런데, 천하의 망나니 왕자였던 헨리 5세는 왕이 됨과 동시에 그의 모든 악행을 청산하고 의젓한 왕으로서 변신, 앙실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학문에는 게을리 했었지만 그의 이론은 논리정연했고, 무술을 연마히자 않았어도 그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훌륭한 군인이요 무사였다. 게다가 그는 충신을 볼 줄 아는 밝은 눈을 가졌으며 정사를 돌봄으로도 현명하고 검허하게 임했다. 헨리 5세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덕망 높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에드워드 3세의 직계 후손임에도 프랑스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데에 분노한다.
헨리 5세는 마침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한다. 아진코트에서 헨리 5세가 이끄는 2만의 영국 군대와 9만명의 프랑스 군대가 대치한다. 전세는 숫적으로 열등한 영국군은 불리한 상황. 대접전을 앞두고 헨리 5세는 영국왕으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과 사랑, 신하들에 대한 신뢰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헨리 5세는 사람의 인간으로써 국왕으로써 해야 할 바를 알게 된다. 마침내 역사적엔 전투가 벌어지고 일치단결한 영국군은 승리를 거둔다. 아진 코투 전투에서의 승리로 헨리 5세는 대내외적으로 여국 왕실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한편, 프랑스 공주 까드린느와 결혼하여 반목과 전쟁으로 얼룩졌던 두 나라 간의 과거 역사를 청산한다.
=== 영화평 === <2013년 2월 19일 알라딘 / Bella님 글>
브래너는 원작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연극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셰익스피어 영화의 작품성을 중시하는 한편, 관객에게 작품 내용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함으로써 영화의 대중성을 높이는 감독이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 시작한 그는 1989년 『헨리 5세』로 흥행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올리비에의 『헨리 5세』를 넘어선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가 만든 다음 셰익스피어 영화 『헛소동』은 제작비 8백만 달러를 들여 미국에서만 2천 3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면서 셰익스피어야말로 고수익 상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었고 브래너 자신 또한 명실 공히 할리우드 흥행 감독 겸 배우로 자리 잡는다. 게다가 원작에 대한 충실한 이해에 대중을 끌어들이는 오락적 요소까지 곁들이고 있어 영화를 통한 셰익스피어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오슨 웰스(Orson Welles)와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er)의 뒤를 있는 감독으로 기대되고 있다.
『헨리 5세』는 셰익스피어가 영국 역사를 토대로 하여 쓴 역사극들 중에서 4부작의 마지막이 되는 작품이다. 왕권쟁탈로 인해 야기되는 내란의 비참함을 다루었던 이전의 역사극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단합되었던 영국왕조의 위엄과 영광이 강조되었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시기적 배경을 5막 도입부의 코러스 대사를 통해 암시하는 것은 이 극의 특징적 요소이다. 원래 코러스는 10~50명 규모의 사람들이 나와 합창을 하는 형태였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규모가 작아졌고 셰익스피어 시대에 와서는 한명이 출연하여 각 장이 시작되기 전에 설명을 하거나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로 축소되었다. 코러스는 각 막의 서두에서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한 단면을 서술하면서 서사극적 효과를 창출해내는 플롯의 외적구조를 형성한다. 등장인물들은 코러스가 설정한 틀의 내용을 언어와 행동으로 채워나가는 내적구조를 이루어낸다. 이러한 설정은 이분법 구조가 아니라 독자, 관객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하여 해설자 코러스의 지침서에 따라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상상적 공간의 영역을 마련해 준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쓰던 시기는 아일랜드 출정으로 국가팽창주의가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국가의 이미지 뒤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고 있었고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이는 수세기 동안 잉글랜드에 합병되어온 웨일즈와 함께 곧 스코틀랜드도 병합되리라는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므로 이 작품에서 헨리 5세가 이끄는 군대가 영군,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군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묘사한 것은 그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웨일즈인 플루엘린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헨리 5세가 웨일즈 출신이라는 사실과도 연관성이 있다. 수세기 동안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던 이 국가들을 대변하는 각기 다른 출신의 인물들로 구성된 영국군대는 중세의 시민군 모병 제도를 시사한다. 이들의 국가적, 계층적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세계가 희극적으로 표현되면서 영국왕권의 강화라는 고양된 주제에 초점을 두는 서사극적 구조 안에 잘 어우러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국력을 확장해 가는 강력한 군주제가 확립되기를 바라던 그 당시의 시대적 염원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헨리 5세』는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승전과 종전을 간구하는 영국인들의 마음을 반영하면서 승전정신을 고취하고자 하였던 올리비에의 영상화작업은 애국주의적인 공헌으로 인정되어 그는 영국왕실로부터 「경」의 작위를 받고 귀족으로 계급 상승하는 영광을 얻기까지 했다. 브래너는 지금 셰익스피어의 영화적 해석과 관련된 주인공으로써 논쟁하고 있으며 그 결과 브래너의 20~21세기의 영화적 연주는 견고하고 존경의 움직임에 서 있다. 브라나의 경력이 미미하더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가 셰익스피어를 연구함으로 인해 발전된 윤곽을 볼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자아인 『헨리 5세』(1989)는 독창적인 것이었고 포스트모던의 모든 관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다시 부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헨리 5세』는 그의 첫 주요 셰익스피어 작품이며, 여기서 브래너는 초기의 예술적인 영화적 관습을 깨려고 노력하였다. 명백하게, 올리비에의『헨리 5세』(1944)는 중대한 작품이었고 그 영화의 영향은 브래너가 의식적으로 하는 언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양쪽 작품에서 헨리 5세의 “성자 크리스핀의 날” 연설은 수레에서 행해진다. 그리고 빗발치는 활은 영국 군대로부터 프랑스 군으로 쏟아진다. 그러나 브래너는 동등하게 그의『헨리 5세』를 현대 관객들에게 맞추려고 『플라툰』,『풀 메탈자켓』,『7월 4일생』같은 최근의 베트남 영화의 동지애적인 역할이나 슬로우 모션 효과를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추구하기 위하여 브래너는 올리비에 영화에서 삭제되었던 더 영웅적이고 국가적 마음을 나타낸 요소, 예를 들면 바돌프의 사형이나 하플레어(Harfleur) 전투에서의 연설을 포함하였다. 브래너의『헨리 5세』는 어두운 빛깔의 현대의상을 입은 코러스가 어두운 역사자료실에서 불을 밝히면서 대사를 시작하고 서서히 역사의 장면으로 이동해 간다. 이것은 자신의 주요 목적이 어둠속에 묻혀있던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상황을 관객에게 설명해 주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때문에 브라나의 코러스는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관객의 역사적 인식을 확대해 보려는 역사해설자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코러스로 분한 데릭 자코비(Derek Jacobi)는 9번 등장하고 2번은 보이스 오버로 나온다. 코러스는 권력을 신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연극의 주체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둠으로써 비판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헨리의 도덕적 행위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즉 브레히트(Brecht) 연극의 “낯설게 하기”의 무대 감독과 같은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으로부터 브래너의 『헨리 5세』는 극 전반에 만연해있는 우울의 강력한 감정과 임박한 충돌에 대하여 등장인물들의 딱딱하게 굳은 태도를 보여준다. 처음에 헨리의 등장은 궁으로 들어올 때 다스 베이더처럼 극적으로 어둡게 표현되었다. 뒤따르는 토론의 숨은 뜻도 매우 정교하다. 걱정의 눈빛,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 살며시 움직이는 카메라는 음모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가 진행될 때마다 각 장면들은 주인공들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완전히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프랑스 공주 캐서린(Emma Thompson)과 시녀 엘리스가 나오는 장면은 실크, 햇빛 비둘기 등으로 활기차고 아름다운 분위기이나 왕족들이 통로를 지나갈 때 방해받는다. 캐서린은 영군 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프랑스의 위태위태한 모습을 아버지(Paul Scofield)의 굳은 표정에서 발견하고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브래너가 자신의 영화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부득이 영화적 중요성을 위해 주인공들의 역할들이 있긴 하지만 브래너는 또한 중요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관심을 둔다. 플래시백은 처음에 이러한 과심을 개인적으로 알려준다. 예를 들면 폴스타프의 죽음을 삽입한 것이다. 그것은 폴스타프(Robbie Coltrane)와 엑서터(Brian blessed)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하는데 그것은 새 군주가 여전히 아버지 보호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헨리가 하플레어 성에서 항복을 받은 후에 안도하며 엑서터의 팔 안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있다. 이때 헨리는 말 위에 있고 카메라는 낮은 앵글의 클로즈업으로 헨리만을 잡았다가 그의 주변에 늘어서 있는 병사들 보여준다. 병사들은 지치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어서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도 헨리가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의 부대가 마을을 위협하겠다는 헨리의 협박이 단지 연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래너의『헨리 5세』에서는 플래시백이 여러 번 사용된다. 피스톨과 님(Geoffrey Hutching)이 주막에서의 옛날을 회상할 때가 맨 처음의 플래시백인데 이때 유쾌하고 혈색이 좋은 폴스타프는 『헨리 4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애교 있는 대사를 한다. “살 찐 잭(Jack)을 버리는 것은 전 세계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에 왕자는 다소 물러서서 침묵을 지키는데 그의 표정은 불분명하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로 “버리지, 버리겠네.” 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고, 폴스타프는 왕자의 우정을 재확인하려는 것처럼『헨리 4세 2』부에서 인용해온 대사인 “맙소사, 우리가 함께 밤을 새워…….한밤의 종소리를 함께 봤지요.” 라고 말하지만 헨리는 “나는 그대 같은 노인을 모르네.”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왕자를 잃었음을 깨달았을 때 폴스타프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고통스런 과정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할 왕자의 단호함을 보여주면서 그가 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수순으로서 왕자 시절의 방탕한 생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주막 친구인 폴스타프를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렸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플래시백은 바돌프가 전장에서 도둑질을 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질 때 다시 주막 장면으로 플래시백 된다. 바돌프는 이전의 친숙한 농담으로 왕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왕자에게 왕이 되면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지 말아달라고 청한다. 할 왕자의 대답은 “아니 그대는 교수형에 처해져야 해.” 라는 대답에 대한 바돌프의 반응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이 처형은 원작에서처럼 보고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운데 왕은 그 장면에 있으며 눈물을 흘리며 옛 친구의 사형을 명령한다. 그는 개인적인 감정과 싸워야 하지만, 엄청난 애정을 거부하고 군주의 권위를 받아들이며 그의 가혹한 처사를 분명히 한다. 브라나의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과거와의 단절이 왕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것임을 보여주면서 왕의 정신적 성장과 심리적 독립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고 있다.
틀림없이 영화의 전투 장면은 개인적인 차원이 앞서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카메라는 헨리의 군인적 노력을 반영하는 행동의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 애진코트 전투 전날 밤 헨리 5세는 진영을 돌아보면서 왕이 군주로서 지니는 의무와 책임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군인들을 “형제들, 친구들, 동포들” 이라고 부르며 통일국가에 대한 갈망을 표출한다. 헨리 5세는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전력 분투하는 영웅이지만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 있고 얼굴은 진흙으로 뒤범벅된 평범한 군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군주로서 지니는 명예, 권위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의 고독한 면을 잘 드러내는데 이는 권위적인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화려한 전쟁영웅의 이미지 부각에 몰두하였던 올리비에 영화와 다름을 나타낸다.
성 크리스핀의 날(St. Crispin's day)에 행해진 헨리의 연설은 전투에 자신이 없는 병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전투의욕을 심어주는 연설로써 이때 역시 헨리와 그의 말에 반응하는 병사들과 귀족들의 표정이 교차적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헨리는 올리비에의 영화에서와 달리 시종일관 병사들과 대등한 위치하여 올리비에의 영화에 나왔던 핏자국 없이 빛나는 하얀 갑옷과 펄럭이는 오색의 깃발들과 대조적으로 피와 진흙으로 얼룩진 채 진창 속을 뒹굴고 전투가 끝난 후엔 어린 소년병의 시체를 어깨에 맨 채 병사들과 전장을 벗어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긴 이동촬영으로 잡는다. 전투가 끝난 후 헨리와 웨일즈 출신 플루엘린(Ian Holm)은 “버디무비”(두 사람의 긴밀한 우정을 다루는 영화)처럼 추억에 잠기며 서로를 안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헨리 5세가 웨일즈 출신이라는 사실과도 연관성이 있다. 수세기 동안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던 각각 다른 출신의 인물들로 구성된(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군대는 중세의 시민군 모병 제도를 시사한다. 이들의 국가적, 계층적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세계가 희극적으로 표현되면서 영국왕권의 강화라는 고양된 주제에 초점을 두는 서사극적 구조 안에 잘 어우러져 있다.
브래너는 올리비에보다 미장센(mise-en-scene) 면에서 큐브릭(Kubrick)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베드폴드(James Larkin), 글로세스터(Simon Shepherd), 요크(James Simmons) 등의 감동하는 얼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브래너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서 큐브릭의 ‘개인화’ 전략을 차용한다. 스파르타쿠스와 함께 하겠다는 커다란 감정적 인식은 그가 그의 군대를 돌아다니며 모여 있는 군인들을 독려할 때 힘을 얻는다. 브래너는 이것을 차용하였다.『헨리 5세』영화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신성하게 이서된 유혈” “군주의 힘, 새로운 사업가의 개성” “신중하게 의도적인” 등등의 평가를 내렸고 이런 평들은 브래너에게 유용하다. 『헨리 5세』의 서술 형식과 전기적 개입은 빠르고, 생동감 있으며 도발적인 대사가 풍부하다. 동시에 개인화 절차는 감정적인 배우들과 역설적으로 뛰어남의 아첨으로 이루어진다. 국가적 소명은 인물들을 변치 않는 영국인으로 만들며 영화에서 사회적, 정치적 논쟁으로 이동한다. 분명히 영화에서 성적인 부분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다. 음모자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동성애적인 흥미를 끄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bedfellow), 더 이상의 암시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 음악은 원문의 구조와는 맞지 않는 모호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헨리가 그의 프랑스와 전쟁하는 목적을 신에게 지지해달라고 간청할 때, 낭만적인 후렴구가 부풀어 오르다 군주의 시도가 유쾌하지 못한 사실이 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흘러간다. 『헨리 5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관중들에게 국가적 서사영화의 획기적 재탄생이며 동시에 이념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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