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가 가르치는 것은?
20231108
최근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단편 소설을 읽었다. 몇십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시대에 뒤처지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아 한 달 연금의 절반을 부어 신제품 에어팟 실버를 구매한다. 그는 노약자석에 앉기보다 서 있고, 말을 크게 하지 않으려는 등 ‘추한 노인’이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런 주인공에게 에서팟 실버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자신감을 준다. 에어팟을 끼고 나니 가상 현실 게임에 도전할 용기도 생긴다. 하지만 새로운 SNS 가입에 아바타 설정까지 게임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가까스로 게임에 접속하지만 가상 현실은 멀미만 일으키고 결국 주인공은 먹은 음식을 게워 내 게임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길거리에 내팽개쳐지면서 주인공은 가장 피하려고 했었던 말을 듣는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지금은 노인을 추하다고 하는 사람 또한 몇십 년 후면 노인이 되어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힘들게 적응하고 있을 것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이가 드는 것이 무섭다. 나는 나와 다른 고령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늙어야 할까.
“논어”는 시대 간의 문제에 화합의 방법을 제시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나간 사상 유교가 어떤 도움이 될까? 나는 유교에 반감이 있었다. 유교가 말하는 예를 강조하지만 자신의 행동과 남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유교가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정작 유교 사상의 중심에 있는 공자의 “논어”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공자의 가르침에는 군자가 자주 등장한다. 책은 공자가 말하는 ‘군자’란 덕과 학식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인격의 상징적인 인물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군자는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경지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첫 장에서부터 등장한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군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던지 배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을 낮추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논어를 통해서 배우는 삶의 방식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