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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방의 위협
조선 초기 4군과 6진을 기반으로 광대한 황제국을 자랑하나 4군을 이내 곧 무너지게 되며 4군을 통한 유목족이 유입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6진은 임진왜란 전후까지 강하게 버티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년 동안 북방에서는 유목족의 이합집산이 일어나면서 여진족은 해서(海西) ·건주(建州) ·야인(野人)의 3부로 나누어진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여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워 신강성 일대와 내몽고에서 발흥하기 시작한다.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위협하게 된다.
서남방의 배신
명나라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어부지리 효과를 보고 양자강 이남과 상류지방에 머무는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 양자강 하류지방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전통적으로 동이족과 서이족은 형제관계를 통한 친선 교류의 나라였으며 중국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을 서이족인 한족에게 한번도 빼앗기지 않은 황제국의 위상을 대대로 지켜왔다. 황하강 일대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을 중심으로 동양 역사의 주도적 역활을 해온 것이다.서이족은 남서방이나 서방 또는 남지나 해를 기반으로 하는 변방의 열국에 지나지 않았다.
동남방의 위협
왜는 해양세력을 말한다.왜(倭)는 외(外)이며 바깥을 의미하며 여인국을 의미한다.광동성과 복건성 그리고 동남아 일대를 대상으로 해적질을 하는 도적때이며 왜구라는 별칭으로 존재하였으며 일본과 또 다른 분류를 하고 있다. 일본이 왜가 아니며 단지 대륙왜의 근거지를 일본왜의 근거지로 바뀌는 것 이외는 없다.왜는 조선국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표현한 것이다.즉 지방 체계로 보면 도 관찰사의 지위이며 지방 호족의 왕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상한 명나라와 이상한 조약이 체결되는데 일본이 점유한 탐라를 주고 조선이 점유한 대마도를 맞교환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탐라는 제주이고 대마도는 쓰시나 섬이 아니다.탐라는 대만이고 쓰시마는 일본인 것이다.즉 대륙왜가 일본왜로 쫓겨 들어갔지만 왜는 일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임진 왜란 당시에 일본은 해양도 소속이며 부속 도서일 뿐이다.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은 교역이 거의 없는 변방이였으며 왜구들이 해외 포르투칼 세력과 해석과 해양 세력의 엽합을 통해 대륙 조선을 정벌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완전 할양 받은 일본은 덕천가강에 의해 에도막부 [江戶幕府(강호막부)]가 열린다. 강호라 불리운 것은 양자강 일대를 형성한 대륙 왜 세력이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붕괴시키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키고 다시 조선을 침공한 것이다.두 번의 침공으로 조선은 완전 패망으로 전략하게 된다.
동북방의 피신
동북방인 간도와 한반도로 피신하는 과정은 서서히 여러 차례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1차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많은 유민이 대륙을 떠나 간도로 진입하게 되며 2차로 청나라의 오르도스 지방인 서안 북부 내몽고 지방을 점령하게 되고 북경을 위협하자 한반도로 이주하게 된다.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대동법과 사회제도가 크게 비뀌게 된다.또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많은 지리서가 출간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정치적 분열은 당파 싸움이다. 당파는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틀리는 것에 따른 국론 분열이 아니다.지방 호족간에 이견과 이합집산인 것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동인과 서인이 나누어 지고 다시 동인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데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 계기가 분조(分朝)활동이다. 그 시작은 광해군 때에 분조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직후 토지결수가 1/10로 줄어들게 된다. 급격한 세입감소는 지방 호족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쟁을 통한 인구 감소나 농사 지을 인구 감소가 아니라 중앙 조선 황제국에서 이탈하는 지방 호족이 늘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지방으로 이전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대륙 조선은 동방조선국(중국 동해안)과 북방조선(만주국과 한반도)으로 나누어 지게 된다.이 이후 본토 조선이 멸망한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명성황후 시해를 기점으로 추산된다.그 때까지 황후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황제국의 전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조선개국 480년에 한양시대가 끝나다!
북경과 서안을 기반으로 하는 한양시대가 끝나는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1895년 10월8일(양력) 명성 황후 시해(을미사변)를 기점으로 열리는 시기로 본다.대륙 조선이 망하자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조선인이 한국으로 배를 통해 육지를 통해 건너오게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거나 대량 학살이 된다.관동대학살 남경대학살. 중국 해남성 조선인 학살 사할린 대학살 그리고 만주 지방에 거주하는 많은 조선인을 이억만리 땅으로 이주 시킨다. 자세히 조사되지 않았지만 뿔뿔히 흩어지는 비극의 역사가 된 것이다. 수 많은 임시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충칭 임시정부-북경 임시정부-만주 독립국이 들어선 것이 그 실 예이다.가장 극심한 타격이 된 이유는 일본의 대륙 진출과 정복 지역이 정확히 대륙조선과 만주 한반도 조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일본이 동남아 제국을 침공한 것은 해양도 백제의 영역이며 해양조선의 영역이다. 중국 동부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를 침공한 것은 대륙조선과 만주조선의 영역이다.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성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경성이라고 부른다.우리나라는 그냥 서울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 것인가!
중국에서는 전신이 명나라와 청나라이므로 조선에 대하 잘 안다. 한양과 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에서 망한 조선인이 건설한 수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한성이라고 부른다.한성 중에 황제가 사는 곳이 한양인 것이다.한민족은 동대문을 낙양으로 서대문을 서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 동대문 서대문을 일본인이 강제로 부르게 해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의 동대문과 서대문으로 부르는 것은 일본인 일뿐..우리는 그냥 서대문을 서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덕수궁 대안문이 일제시대 대한문으로 바뀌었다.서울 한 복판에 일어난 사실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어떤 학자의 주장과 근거가 나와 얼마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물며 이런 상황인데 임진왜란 이후에 벌어지는 엄청난 대륙조선의 수난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이다.거기에 36년 동안 일제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이다.또한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탬이 비로서 일본에 의해 본격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건립 당시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에서 1906년 지금의 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뀐 것을 둘러싸고 여러 억측이 있었다. 왜 대안문이라고 했는가! 북경은 천안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安) 을 쓰는 것은 황제국에서만 쓰기 때문에 안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대한(大漢)과 대한(大韓)중에 대한을 쓴 것인가! 그것은 한나라의 피지배 민족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이거나 우리가 원래 한문을 쓰는 주도국이라는 의도인데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럽다. 다만 안북-안남-안동-안서를 쓰는 것은 대대로 환인제국 안파견의 정통맥이자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북경이 천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민족이 세운 건물과 말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왜 경성이라고 부른 것인가! 옛날부터 경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부른 것이다.경성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조선은 3경 5부제도를 유지해 왔다.즉 복수의 수도를 두고 그 수도를 지키는 주변 도시를 세우는 것이다. 한성을 둔다면 3개의 한성이 있고 그 중에 임금이 계시는 곳을 한양이고 나머지는 한성외 된다. 그것이 3경제도나 수도제도다. 그리고 그 수도를 중심으로 전후좌우 포진된 도시가 경성인 것이다. 경을 지키는 성이 경성이며 양을 지키는 성이 한성인 것이다. 경성이라고 하는 것은 3개의 성을 지키는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왜 서울이라고 했는가! 새로운 울이기 때문이다.새로운 터전기반이기 때문이다. 즉 변방의 한반도 주도세력이 이주한 것에 불과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도 조선인이 살았지만 주도세력이 대량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해방을 전후로 하여 엄청나게 서울로 들어 온 것이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은 강북 일부를 제외하고 허허 벌판이였으며 논과 밭이 가득한 한적한 도시였을 뿐이다. 조선 500년을 이어온 수도가 아닌 그저 경성이였다.현 경복궁에 완벽한 왕궁이 있는데 무슨 소리며 조선 개국시기부터 건설한 대들보 상량 기록과 흔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 할 수 있다. 고려 말 강화도 천도가 임시로 되는 계기가 경성에 왕궁이 들어선 내력이다.즉 강화도가 한반도인 것이다.고려 역사에서 강화도 섬은 한반도 이며 대륙에는 한반도를 섬으로 인식한 것이다.그래서 간도도 사이섬이라 하여 대룩을 섬으로 본다. 동쪽 바다에 작은 섬 황하강(한강) 하류에 작은 섬이 강화도인 것이다. 강화도가 천혜의 피난지인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한반도 대룩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완전 분리돤 지역이다. 그리고 그 위는 장백산맥으로 험난하게 장막이 처진 상황이다. 그리고 한반도 북부는 산이 많기 때문에 대륙을 통한 침공은 대단히 힘들다. 한반도 산은 대단히 특이해서 작은 산이 뽀쪽하게 여러겹 존재하여 대룩의 산과 다르다. 대륙의 산은 크고 웅장하지만 말이나 마차로 넘기 쉬운 구도를 가진다. 그러나 한반도 산은 불가능한 구조가 된다.그래서 그리고 경성(서울) 주변에 농사 지을 땅이 역사 기록에 나온 내용과 부합한다. 역사 기록에 보면 강화도 내에 여러 왕궁을 짓고 여러 절터를 세웠다고 나온다.현 강화도 내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를 보인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인 것이다. 한반도는 황하강 하류에 존재하는 작은 섬에 불과하며 날씨 맑은 산동 반도에서 산 위에서 보면 한반도가 작은 섬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대대로 대륙 조선국의 피난지이며 유배지이며 휴양지이며 변방으로 그 역활을 해 왔기 때문에 삼국과 고려와 조선의 역사 위에 유적도 그대로 연동돤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믿는 허상의 반도사관이자 식민사관의 실체이다. 현 한반도 지명은 1차적으로 대륙조선에서 건너와 반도 조선에 그대로 포게지게 되었으며 2차적으로 일제시대 의도된 목적으로 다시 포게지게 되었다.중국 본토는 명나라 이후 청나라 이후 중국정부 이후 여러 차례 지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물론 그 이전은 기원 후 5세기 전후로 하는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세력의 한반도 유입이 그것이다.또한 독자적으로 인도에서 일본과 한반도로 직접 들어온 세력도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대륙에 존재한 동이족의 흔적을 지우고 조작하는 혁명에서 비롯된 누적된 결과이며 일본에서는 식민지 교육을 통한 영구 지배 목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또한 대륙조선을 뺀 만주와 간도 지방의 땅도 러시아에게 연해주와 사할린을 빠앗기고 청나라에게 일방적으로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간도 협약을 맺은 것이다.
또한 조선말은 그 당시 말세와 같기 때문에 많은 도참사상이 유행하였다. 특히 남조선 사상이다.중국 본토에 남은 조선사람은 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학살의 대상이 되거나 강제 이주가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는 멸문이 된 것이다.그 중에 하나가 산맥이 끊어진 섬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었으며 십승지를 찾아라는 말도 있었다.비록 해방 이후에 남북전쟁의 아품이 있었지만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피난지이자 생존지가 한반도가 되었으며 그것도 남쪽이 되었다.이제 위대한 황제국 후손으로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다시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다시 찾아오는 위대한 동양문명과 한국의 문명이 열리고 있다.
중국 대륙조선 한양운이 480년으로 끝났으며 간도조선운이 1875년 이후 108년인 1983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서울 한양이 끝난 것이 아닌 중국 조선 한양운이 끝난 것이다.1984년이 새로운 갑자년이며 하원갑자 마지막 바퀴를 돌고 있다.
특히 국제법상 100년이 되는 시한을 넘겨서는 안된다. 일단 국제법을 통해 소송을 걸어 놓고 보아야 한다.간도 협약 만료시기가 2007년이니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문제 제기를 통해 차기 정부로 해결을 넘겨야 한다.
영토 회복 대세와 프로젝트
일단 중국과 소련으로 부터 소송을 걸어 놓아야 한다.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역사 회복에서 국제 명분에서 승리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불점 점유한 영토에 대한 엄청난 부도덕의 낙인을 찍어야 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포기를 하든 국제적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다.중국 자체도 민족 단위로 되면서 자체 분열된다.중국 통일시대는 끝난 것이다.
청나라가 조선국 대륙을 정벌한 루트 그대로 신강성에서 그대로 재현된다.위구르 독립투쟁에서 내몽고와 몽고 통일 투쟁에서 티멧트의 독립에서 동북 삼성의 민족운동에서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소련은 한국을 경제 협력 파트로 생각해 장기적 안목에서 포기 할 수 있다. 그렇게 나온다면 중국도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중국 자체의 각 소수 민족변화와 미중의 파워 게임에서 어부지리를 보일 수 있다.
아시아 거대한 중앙에 유목제국의 위대한 연맹체를 만들어야 한다.단군조선이 건국한 카스피해에서 바이칼까지 중앙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카자흐와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몽고와 만주를 아우르는 단군조선을 건설하자!
간도 문제는 북한의 권한이 아니다.사할린도 마찬가지며 통일이 되기 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통일이후에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다.역사 부흥운동으로 국내적 관심충만과 국제적 우호가 일단 선결과제다.
황제국에서 다시 세계제국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여
간도찾기 운동을 해야 하며
소련의 사할린 불법 점거에 대항하여
이순신의 녹둔도(사할린)찾기 운동을 해야 한다.
일제에 의해 침탈된 북관대첩비가 100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은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기미와 징조이다.
사물은 반드시 근본으로 돌아간다!
한국은 조만간 세계제국을 건설한다.
광개토태황의 세계 제국 건설이 20년 걸랐다.
2004년부터 시작하는 20년 정복전쟁이 부활한다.
북관대첩의 위대한 사상이 부활한다는 것이며
고구려의 다물정신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며
잃어버린 만주와 사할린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흘러간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변방에서 중심무대로 가고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닌 미래인 것이다.
한류는 모든 동양의 새로운 지표이며 표준이다.
과거에 불었던 단군조선 문명과 문화가 일어나고 있다.
깨어나라! 웅비하라!
간(艮)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듯
간도(間島)를 찾는 것은 새로운 웅비의 시작이다.
통일을 넘어
만주로 세계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나부터 씨를 뿌리면 들불처럼 보인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특정인의 분야가 아닌
한국인라면 가저야 할 소양과 책임 그리고 권리인 것이다.
첫댓글 필명이 세림이란 분의 글이군요.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고증을 시도해 보아야 하겠군요.
주로 증권 투자 사이트같은데 서치하다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어리석음이여^^ 지식을 가진 이는 그저 지식의 진실로 싸울 뿐이다. 이는 공자가 얘기한 명분을 세우는 일이다. 실제 일이 이루어 지는데에는 명분만으로 안된다. 그런데 이 글을 쓰신 분은 명분 싸움의 일을 마치 영토회복 그 자체의 일인양 떠들고 있다. 비유를 들자면 손 떠난 새를 소리를 질러 붙잡겠다는...
것이고(이렇게 어리석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쁘게 말하면 새의 주인을 교묘히 꼬여 소리를 지르게 하여 새를 멀리 쫓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일, 의도적이라면 악독한 인사). 이 정도의 일은 겨우 시작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복병이 있겠는가? 하늘이시여 우리를 슬기롭게...
위선 영토비정에 과장된 부분이 많은 것 같고 (너무 북서편향적) 거대강국지향의 이상에 취해 있는갑다. 땅댕이크고 무력막강한 초강대국을 지존으로 여길 시대는 지나갔다.산해관이동만 회복해도 영토로서는 충분하고 않 되도 서간도및 북간도는 반다시 (국제법논리로,외교적으로,학술적으로 )쌈박질하야 다물혀야한다.마
그먼영토와 인구1,2억만 되도 능히 미-러-일 -쭝의 팽창적 패권주의의 경거망동을 제압할 자주역량을 갖춘 의젖한 선진문명국가로서의 위상에 큰 흠절은 없으리라~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서 경고한 메시지를 염두에 둘 것 미련시러운 넘들만 몸짓 불리는디 열중이다!
하여간 꿈과 이상은 통크게 가져 봄직하리만큼 요즈막 됴선은 옹크려 눈치보는디만 익숙해져 있는 건 사실(세계를 무대로 뛰어야할 덕목은 군사,외교 정치적분야가 아니라 한류같은 문화적 감화력이람 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