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스님 입적에 대한 소고(미완성)
나는 1983년 자승 스님이 수원포교당 소임시에 5명이
함께 발우공양이 아닌 식탁공양을 한 것을 시작으로
40여년간 10~12회 스치기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그후 용주사 말사 영월암에서 백납회 모임이 있을 때
만났었고,마곡사 법회 그리고 1994년 종단정화불사시
조계사등 여러곳에서 잠깐잠깐 만났다.
TV에 이명박,박근혜,윤석렬등 대통령들과 만나는
장면을 볼 때마다,그리고 종단 소임을 보며 여기저기
두루 다니며 매스컴에 뜨는 것을 보며 속으로
"야,이거 일 나겠다.머지않아 사단이 나겠어" 속으로
거듭 생각은 깊어갔으나 '정치나 대중예술이나 나섬과
인기'라는 화두는 빼 놓을 수 없는 의제라는 것을 알기에 나 스스로 능력없고 숨어사는 위치에서 다만 깊은 생각
에 잠길뿐이었다.
큰 인기는 큰 불행의 어머니요
큰 명예는 단명의 아버지다.
뭇 대중에게 얼굴 비춤과 이름 날림은 반드시 그 댓가
를 치뤄야 한다.배가 고파 농장의 복숭아를 따 먹었으
면 그 한번으로 손을 씻을 것이요,세끼 굶어 슈퍼 초코
파이를 몰래 먹었다면 다음 갚든지,며칠내 사장한테 참
회하고 갚든지 하면 그 죄과는 희미해지거나 소멸된다
명예도 마찬가지다.나는 저 매스컴이 조명한 영상과 대중인기(실제 인기는 허구지만),그리고 감투 자리는
찰라요,순식간에 초라하게 붕괴될 것임을 잘 아는 바 그의 잦은 매스컴 출현과 반대 의견들의 함성 또한 원결이 컷음을 부인할수 없다. 나같이 민초처럼 숨어
살며 45년의 생활중 초기 3년 월 1천원,그후 4년 3만
원,그후 4년 6만원등 때로는 비루하게 모진 생활비로
버틴 사람에게, 치사찬란한 매스컴의 그림(영상)은
결국 '뻥이요,그림자요,허구'임을 속속이 아는 바다.
서너 스님과도 여러 대화도중 자승스님의 여러 행정
사판 지위에 대해 공통의 걱정하는 의견이 있었으니
나는 '속히 모든 것,모든 감투를 내려놓고 은둔과 칩거
모드로 접어 들어야 한다. 감투,명예 쓸만큼 썼고 세상
과 종단의 행정을 겪어 봤으니 속히 대중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 나는 속으로
오지랖 넓게도 짚어대며 다가올 그의 '마지막'을 걱정
했다.
안성 칠장사도 서너번 참배,순례한 도량이다.
따르는 자도 많았지만 그의 행정, 사람과 친한 그의
성품등 장점도 많지만 1994년 종단 개혁(소납은 그 조계사 그 현장에 있었음)불사 와중의 그의 줄타기,의현
스님 사면등 종단 일반 구성원이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위태위태한 그의 행보에 결국
'그 어떤 대미'가 기다리고 있음은 내 시각으로 명약관
화했다. '아는 자는 알고,모르는 자는 전혀 모른다'는
내 사고로 그의(50년 승납의 자승 스님,45년 승납의
소납)동선을 큰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바라 보았다. '터
질 것은 터지고,반드시 기승전결의 흐름은 필연적이다'
라는 나의 생각은 모든 사안에 적중했다.
매스컴에서 자살이냐 타살이냐,소신공양이냐 분신이냐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사실 우리 구참들은 그 사안에
대해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연극의 예고된 막' '막은 찰라에 내려진다'하는 찰라법
과 몽유임을 알기에 필연적 상황이요,결과임을 안다.
여기서 선악의 이분법 분류 혹은 그가 잘했다 잘못했다
를 논할 생각은 없다. 같은 승가로 수십년 그를 먼 발치
서 지켜본 행자로서 '때를 맞춘 은둔' '장소를 선택하는
혜안'이 늦어짐을 보고 다만 나 스스로를 반추해 봤다는
말이다.'때와 장소' '나아감과 물러섬'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하겠다.
서너 스님들께 전화를 치니 안받거나 묵묵부답이다
우리 모두는 그의 입적이 안타깞다. 권력은 잠시 누리다
속히 빠져야 하는 법이다.무지와 무학은 본인도 결국
그 결말이 고통이요,한 거대한 사회조차 암울한 수렁으
로 몰아간다. 산 정상에 이른 자는 속히 내려와야 한다
그 영화와 환희를 길게 누리다가는 동사하거나 바람에
날아가 골짜기로 쳐 박혀 얼어 죽게되는 불행한
결말이 기다린다. 나는 쪼잔하게 살고싶다.오늘도
젖은 헌비닐을 말니며 재사용하고,헛 옷을 빨아 널며
기쁘게 아침 운동과 비빔밥 점심공양을 맛있게 하고,초
겨울 저녘을 조금전 떠온 약수터 석간수로 빚으 녹차와
함께 마셨다.물인듯 뜨물인듯 사는 내게 원한진 웬수는
없고,갚어야 할 은혜는 많다
어느 보살님이 쓰던 목욕탕 헌 타올을 6장 가져와
수시로 2장씩 빨고 말리며 방청소를 온 몸으로 숨차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한다.수건을 가져온 그의 정성도
고맙고,햇볕에 말리는 일 하나는 내가 똑 부러지니 운동을 하게 해 주어 더욱 기쁘다.나는 환경론자요,지구
촌이 더욱 지속되길 바라는 불심행자일 뿐이다.
나의 초라하고 비루한 일상이 있어 천수를 누린다.
자승스님,그는 갔지만 아직 머문 우리로서는 깨닫는 바
크다.도량뒤 대숲에 바람소리 드세더니 그 대숲바람은 어디로 떠났는가?
불기 2567.11 .30 후 8:40
※그의 필적은 맞다는 내 생각이다.
※현안에 대해 안쓰려 했으나 일반인 관심이 큰 혜민스님에 대한 소고와 이번 자승스님에 대한 소고로
스님에 대한 소고는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