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대회 파행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유별났다. 서울올림픽 이후 무패의 대접 기록이 깨진 데 대해 개탄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나라 전체가 당장이라도 결딴날 것처럼 패닉에 빠진 건 우리 DNA에 잔존해 있는 사대주의가 꿈틀댔기 때문은 아닐까.
현 정권 책임이냐 전 정권 책임이냐의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국무총리가 직접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고, 민간기업의 사원들까지 현장 봉사에 쓰이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그로테스크한 현상이다. 메타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개최한 잼버리 대회가 파행을 빚는다면 바이든 현 행정부 책임인지 트럼프 전 행정부 책임인지를 놓고 국가적 논쟁이 벌어질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직접 변기를 닦으며 청소에 나설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민간 기업에서 사원들을 차출해 현장 봉사를 할까.
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국격과 긍지를 잃었다”는 전직 대통령의 한탄도 지나친 자학(自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은 국제행사 한번 잘못 치렀다고 격이 떨어질 체급이 아니다. 우리 기업이 만드는 반도체와 자동차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고, 세계 젊은이들은 여전히 K팝에 열광하며, 한국을 관광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은 여전히 많다.》서울신문. 서울광장, 김상연 전략기획실장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잼버리 대회 파행을 보는 대다수의 관점을 ‘사대주의’로 얘기하기는 좀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다가 '사대주의 DNA'라는 말도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지난 12일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감사원이 새만금 잼버리 대회 실패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한만큼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잼버리 유치부터 따지면 박근혜, 문재인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까지 감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 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전임 정부와 현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조직위원회, 중앙정부간 ‘네 탓’ 공방이 치열해 감사원 감사 결과로 끝날 지도 미지수다.
폭염 속에 시작된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온열환자가 속출하고 화장실, 샤워실, 숙영지, 식사 등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면서 ‘잼버리 악몽’이 시작됐다. 전 세계적으로 K-드라마 위력을 떨친 ‘오징어게임’에 빗대 ‘잼버리 생존게임’으로 변질된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 지구촌 젊은이들이 선망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잼버리 ‘준비 부족’알고도 손 놓았다’(8월15일자, 김승환·송은아·이강은·김동욱 기자) ‘새만금 잼버리, 첫 사업비 산정부터 주먹구구’(8월16일자, 김승환·박지원 기자) ‘위생엉망 잼버리 화장실, 전북도는 어이없는 포상’(8월17일자, 김승환 기자)‘잼버리 위기대응 매뉴얼 안 지켰다’(8월18일자, 박지원·박유빈 기자) 기사는 “예견된 참사”의 근거들을 드러냈다. 이제 남겨야할 것은 실패의 경위와 책임, 교훈을 제대로 담은 ‘잼버리 백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여야, 지자체와 중앙정부로부터 잠시 눈길을 거두자. 이런 시끄러운 목소리는 백서에 담을 하등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지난 6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밟다보면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고, 누구의 책임이 큰 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잼버리 감사에서 짚어야할 핵심 포인트는 기존의 새만금 부지를 두고 새로 갯벌을 메워 개최지로 결정한 경위다. 그 바람에 부지 조성하는 데만 5년 넘게 시간이 소요됐고 농지관리기금 1845억 원이 쓰였다. 전북도가 밀어붙였다는데 전임 지사는 침묵하고 있다. 주무부서인 여가부도 할 말이 없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시절 여가부도 잼버리 부지 매입공사 중단 요구에 “상당히 진척된 상태라 (사업 진행이)불가피하다”고 손을 들어줬다.
1130억 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 과정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조직위가 이 가운데 870억 원을 사용했는데 시설 조성, 운용, 식음료 지원 등 예산을 썼다는 항목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본지 단독 보도에 따르면 행사 개최를 1년여 앞둔 지난해 예산 실집행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사업이 지적되거나 기존 사업비 대비 140%가 넘는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빚어지는 등 예산 집행·관리에서 부실 징후가 역력했다. 2016년 사업 유치 당시 400억 원대였던 예산이 세 배 가깝게 증액됐는데도 총체적인 준비 부실로 실패한 데는 방만한 예산 관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 고성 잼버리 대회 등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민간 부문의 협력, 국민들의 호응도 필요하지만 공무원들의 헌신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이번 잼버리 행사에도 많은 공무원들이 동원돼 노심초사 맡은 일에 땀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색한 장면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본지가 단독 보도한 잼버리 행사와 관련한 공무원·민간인 포상이 대표적이다.
잼버리 대회의 성패와 무관하게 전북도는 지난해 잼버리 기반시설 조성 유공 명목으로 공무원, 민간에 대해 포상 조치를 했다. 실제 행사에서 그늘 시설 부족, 침수 방지 미흡 등이 문제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전 유공 포상’의 적절성 논란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뿐 아니다. 야영장내 ‘분뇨 처리’ 관련 기반 시설 조성에 기여했다며 전북도 공무원 2명도 포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대회 기간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화장실 청소에 나설 정도로 화장실 관련 민원이 적잖았다.
물론 조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위급 공무원들 책임이 가장 크다. 행정안전부와 여성가족부 등 17개 중앙부처, 전북도와 민간전문가 등 40여명은 지난 7월11∼13일 행사장 안전 전반을 점검해 문제점이 지적됐는데도 보완 조치 이행을 확인하지 않았다.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일선 직원들 보고만 받고 누구 하나 나서서 사전 준비 실태를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날 대한민국 중앙, 지방공무원 수준이 궁금하다.
잼버리 파행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미담 기사도 없지 않았다. 2000명이 넘는 스카우트 대원들이 묵었던 익산 원광대에서는 대학 직원, 학생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까지 나서 식사 준비를 도왔다. 9∼11일 3일간 대략 7000인분 식사를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새벽 3시부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현장으로 안전하게 배달까지 했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스카우트 대원들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밥값을 내주는 익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그저 국민 몫으로 남지 않으려면 잼버리 실패의 전말을 담은 ‘잼버리 백서’ 발간과 책임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세계일보. 김승환 기자
출처 : 세계일보. [편집인의 원픽]. ‘잼버리 실패 백서’에 남겨야 할 것들
“백서(白書)”는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문제에 대하여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표하는 보고서’를 말합니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소상하게 밝혀서 다음의 다른 문제를 시행할 때에 참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새만금 세계 잼버리대회에 대한 실패 백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실패 백서를 만드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거기에는 실패의 원인도 있지만 당사자들의 책임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정부와 전 정부, 여당과 야당은 서로 책임을 떠밀려고 야단법석이지만 그래서 더욱 더 실패 백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