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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당신을 닮았습니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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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았습니다]
문희봉 시집 / 이든기획시선 002 / 도서출판 이든북(2017.04.20)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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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았습니다
문희봉
거실 안 바구니 안 모과를 봅니다
자기만의 향 피우며
한겨울 이겨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안면 한쪽이 함몰되고 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허무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앙탈을 부려봅니다
어머니
어제는 당신의 묘소 앞에 엎드려
지나간 세월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조심스러웠던 세월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쪽 안면이 함몰된 모과가
어머니 당신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저승꽃으로 도배한 모과
머리 위 이른 서리를 맞고서
대답 대신 고개 조아린 모과
닮아도 너무 닮았습니다
당신의 그 마지막 모습과
망부석
문희봉
한겨울 추워
돌이 되어 살아도
가슴 속엔 따스한 난로 하나
그래서 행복하다
후회하는 날
문희봉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한다
기차소리 듣는 것이 소원이었다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기차
중학생이 되어 만났다
허름하게 지어진 간이역, 그곳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그 후 너는 나를 싣고 초원도 달리고
강도 건너고, 산도 넘고, 터널도 통과했다
네가 지나간 자리마다 추억의 색깔들로 그려진 그림이
알록달록 내 시선을 즐겁게 했다
어떤 날은 하늘로 데려다 주고
어떤 날은 우물 속으로 빠뜨리기도 했다
네가 지나간 자리에는 머리털이 뽑혀 나갔고
맨발에 배낭에는 진흙물이 짙게 배이기도 했다
굴참나무 숲속에서 다람쥐와 함께 듣는 네 울림
가슴에 커다란 풍선을 매달게 했다
어여쁜 여자를 소개시켜 주고
아이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오직 네 덕분
이제 쇠붙이로 치장한 네 몸도 덜그럭거린다
꿈속에서 이제 좀 쉬게 해달라 진정서를 넣기도 했다
매일 침대에서 만나는 너
호흡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붉게 녹슨 네 몸도 이젠 휴식이 필요하나
욕심 많은 주인은 가슴 아픈 머슴 생각은 하지 못한다
네가 나에게 반기를 드는 날 크게 후회를 할 터이지만
우둔한 머리를 가진 나는 그걸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나
네가 말을 해주었음 좋겠지만
겸손으로 치장한 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우매한 주인이 후회하는 날은 이미 해는 서산으로 지고 말 터인데
소나무
문희봉
말을 아낀다
동작도 아낀다
친절하다
하얀 속살
이승의 시름 나이테에 새기고
오늘도 태양에게 몸을 맡긴다
웃고 있는 친구
문희봉
친구가 웃고 있다
평소에 웃음이 많던 친구였음 이해를 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밖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다
친구 웃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은 하늘의 작은 마음이겠다
친구가 웃으니 우리들도 웃을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친구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우리들의 웃음 속에 도랑물은 자꾸 메말라 가고
많던 친구들도 하나둘 자리를 뜬다
빈 자리가 늘어갈수록 두통의 강도가 세진다
어떤 친구는 휴대폰을 들고 자리를 뜨고
화장실에 갔다 온다는 친구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웃고 있는 친구와 거리를 두려는 모양이다
듬성듬성 빠진 이빨처럼 빈자리에는 황량한 바람이 들어와 자리 잡는다
괜스레 옆 자리를 쳐다 본다
낯선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애써 외면하지만
그들도 친구의 웃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 사이 도랑물은 더 말라간다
갑자기 친구 행동이 후회막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속도로 말라가는 도랑물을 보며
가끔씩 창밖을 보니 싸락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남은 우리들은 싸락눈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인생이든, 사랑이든, 절망이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친구와의 추억만 건져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즐겁지 않지만 친구가 웃고 있으므로 우리는 억지로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친구가 사라졌다
우리들은 분위기를 고쳐보기 위해 농담거리를 만지작거렸다
친구의 웃음보를 우리가 밀폐된 공간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소풍 가는 사람의 입가에 웃음이 자리한다는 건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다
그래도 친구 영정 사진 뒤에 달라붙어 있는 우울까지 모두 말릴 수는 없었다
삶의 변두리에 있던 우울이 무성생식을 하여
더 큰 병을 만들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시간이 흐를수록 도랑물을 적시던 빈 병들은 쓰러졌고
채워지지 않은 잔들에 더 이상 위로를 줄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칼바람이 부는 대합실 앞 보도블럭 위에
신문지 한 장 깔고 바구니를 안고 있는
꾀죄죄한 고희의 남자 안면에도 사라지지 않는 웃음이 나풀나풀 날고 있었다
첨성대에 내리는 비
문희봉
당신이 기지개를 켰다
갈 때마다 눈빛만 주던 당신이
오늘은 움직였다. 실로 1,400여 년만이다
인공호흡기를 매단 것도 아니었는데
그간 당신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적 같은 당신의 움직임에
내 가슴에 있던 그리움이 떨어져 나갔다
당신의 미동微動이 내게는 축복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에도 동하지 않던 당신
오늘은 드디어 움직였다
그것은 나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을 지웠을 뿐인데
내 가슴은 찢어진다
당신은 미라로 살아야 할 운명
거역은 반역이다
꿈틀거리는 모습이, 하품하는 모습이
슬픔을 주다니
당신이 누워 있는 병상에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고요한 혁명에 반항하듯
비가 내린다
움직이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당신은 오늘 움직여 나를 슬프게 했다
흙집
문희봉
몹쓸 병으로 아들 잃고
며느리까지 가방 챙기던 날
억척이로 소문 난 민들레 뿌리 같다던 여자
나이는 먹고 싶어 먹었나 흐린 날에는 무릎에서 무종이 울린다
태풍에도 끄떡없이 반듯이 서던 여자
비바람에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 흙집
바르고 나면 그때뿐 다시 떨어져나가는 흙벽
새끼줄로 지붕 얽어매고 떨어져나갈 때마다
고목 같은 손 놀려 다시 발랐다
부서지고 망가진 곳마다
덧칠, 덧칠, 또 덧칠
구멍 숭숭 뚫린 벽은
진흙 바르기로는 이젠 안 통했다
손수레에 황토흙 실어와 다시 바르는 수고
기둥과 문틀 틈에 난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허리 펴자마자 삐걱하는 경고음
숭숭 뚫린 구멍은 누가 메울 것인가
어린 손주들 하늘 보고 우는데
빗속으로 사라진 며느리가 그리워
그 여자, 찰기 없는 흙으로 지은 집이었다
거북이
문희봉
긴 세월의 멱살을 잡고 있던
긴장이 풀어지고 아웃도어 차림으로
등산화를 신은 몇 마리의 거북이들이
모가지 품속에 넣고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엊그제까지는 토끼였는데
금도끼와 은도끼로 계수나무 찍던 토끼였는데
차는 낡았는데 속력은 빨라졌으니
정신 잃은 사람들
안전띠까지 매지 않았다가, 음주를 했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려 과태료만 물고 있다
꽃다발 든 손이 떨리던 그 날
흐린 시야 속 가슴에 안았던 장미
향이 그럴싸했는데
장미는 사라지고 안개꽃만 무성하다
근육질 몸매는 자취 없이 사라지고
육중한 건물 지탱하던 기둥마저 삐걱거린다
보강하는 방법 중 제일은
친구의 도움을 받는 일이라고
미비된 서류로 대출 받는다고
은행문 앞에서 쫓겨나는 신세라니
어스렁어스렁 오르다 토끼를 앞질렀다는
거북이를 생각해 내고는
오늘 정상을 향해 안간힘으로 오르고 있는
저 거북이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용서
문희봉
죽기 전에 하는 용서
죽은 후에 하는 용서
먼저
자신을 살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는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설레임
문희봉
당신을 기다라는 오늘이 행복합니다
환한 햇살 받으며 귀가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기겠지요
등 뒤에 살짝 감춘 선물
보따리 풀어볼 생각에 가슴이 설레입니다
때 이른 개나리 미친 듯이 먼저 피더니
매화 향이 뒤이어 대문을 엽니다
내 코가 벌름거리며 웃습니다
어둠을 건너온
나룻배 정박하니
분홍 웃음이 내리며 인사합니다
아
오늘도
나는
설레임 속에 기쁜 하루가 시작됩니다
걱정
문희봉
칠흑의 밤이다
달이 저수지에 빠졌다
깊은 곳에 이무기가 산다 했다
제 친구는 하늘에 있을 텐데
도수度數 있는 물을 머시고
발을 헛디뎠나
봄
문희봉
터널 공사 현장
산을 뚫다가
암반을 건드렸다는 뿌리
웃음보가 터졌다
봄을 일찍 내보냈구나
고운 밤
문희봉
오랜만에 친정나들이 한 딸
어머니와 나란히 우누운 밤
그 사이에 달빛이 내려와
모녀의 손을 꼭 붙잡아 줍니다
따스한 온기가 방안을 휘감습니다
타이어 공장
문희봉
말끔하게 닦여진 소고속도로 옆
큰 굴뚝을 안고 있는 타이어 공장이 보인다
내 애마의 네 다리도 저 곳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밤 야근 탓이었는지
무슨무슨 분진 때문이었는지
병명도 모른 채 숨을 거둔 철구 씨
어젯밤 꿈에 나타나
나보고 술 한 잔 하자 하는데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저녁 인사
문희봉
염소들이
황구의 구령에 맞춰
일렬종대로 내려옵니다
주인과의
저녁인사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입동
문희봉
딩동!
겨울이 출소했다는 소식을 우편배달부가 가지고 왔다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걷이한 것들
냉동창고에 넣어두니 하늘이 시커매진다
무지막지한 폭염의 기세 꺾이고 난 들녘
다산의 전통 세우고 난 후
저 여유로운 자세 좀 봐라
어른들 사랑방으로 모여들 때
아이들은 골목으로 뛰어나온다
아이들 입술 위에 축제처럼 콩가루가 묻었다
골목을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함성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벗어던지는 옷가지들
공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나가던 시절이 나를 보고 웃는다
손등이 터졌던 맹구네 형제
겨울이면 그저 좋았다
노인들 거처하는 싸리나무 대문집
터지지 않은 지뢰처럼 쓰리고 아린 침묵이 잠들어 있다
토시 하나 없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아이들
입술이 부르터도 겨울이 좋았다
생선 맛있게 먹는 법
문희봉
비린내 때문에 생선을 못 먹는다는 사람을 나는 이해하지 못 한다
비린 게 무지무지 먹고 싶을 때 나는 산으로 간다
산에 가면 비린내 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파아란 바람, 잘 여문 열매, 상큼한 공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다
나뭇잎은 새우튀김처럼 파삭하게 부서져 먹기가 좋다
달콤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식감이 구미를 당긴다
앉은 자리에서 한 그루 다 해치운다
연한 가지는 어금니로 똑똑 끊어 먹고
잎사귀 뒤에 붙어 있는 거미줄도 핥아 먹는다
뿌리까지 먹고 나니 새들이 하늘을 맴돈다
아마도 새 알이 터졌는가 보다
뿌리는 뼈채 씹어야 맛이 좋다
오독오독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염소도 아니고 고릴라도 아닌 내가 나무를 통째 먹을 줄 미처 몰랐다
당신이 있었으면 아마도 못 먹게 말렸을 것이다
애벌레가 잎맥을 남기고 발라 먹듯 지켜보고 있었겠다
나무의 살집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등 푸른 생선처럼 비린내가 나는 나무들
산은 살아 있는 활어들의 천국이다
비늘도 뼈도 살아 있다
두 손으로 꽉 쥐고 핥아먹는 저 나무의 큰 살집
나는 비린내 나는 것을 먹으면 입이 귀에 걸린다
한쪽은 슬퍼 울고, 한쪽은 기뻐 웃고
슬플 땐 특히 비린내 나는 것들이 그리워진다
어린 것의 몰캉한 살점을 뜯으러
오늘도 산으로 간다
홍시
문희봉
응접실이 환하다
문경 소식 전하는 말랑말랑한 사랑
보름달에 색깔 입힌 마술사
그 사랑에 반해
연정 품어보는
네[四] 눈동자
* 문경 가는 길에 얻어온 홍시 달린 감나무 가지 집안에서 칙사대접 받는다.
이승과 저승 사이
문희봉
아내와 함께 왔던 계곡
절벽 중간의 푸른 나무를 캐야겠다고
연장도 없이 장비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아내의 손이 떨린다
손이 닿을까 말까
발은 허공에 떠 있다
갑자기 공포를 느끼는가
빙벽을 타보지 못한 나에게 올라오라 한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아내가
잠이 들면
머리맡에선 아직도 덜 성숙된
청포도 익는 냄새
잠든 아내 이마에선 송글송글 이슬이 맺히고
손가락 마디마디
파란 웃음 배어 있다
만개한 키다리 개망초꽃
울음을 닦아준다
매물도
문희봉
바다의 소리를 들어보실래요
저쪽으로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이 보입니다
바다의 소리를 들어보실래요
심장 소리를 들어보실래요
도시의 공기를 지워낸
도시의 스트레스를 닦아낸
매물도의 심장에서는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건강한 혈관의, 약관의 맥박소리가
통증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방년의 맥박소리가 쉼 없이 연주를 합니다
관광객들의 얼굴에 우물이 생깁니다
모세의 기적을 만나면서 몽돌과의 소통도
피와 강물은 친족인가 봅니다
바다의 소리는
명의의 처방전입니다
심부전을 앓는 혈관을 치유해 줍니다
웃음이 보이고
입속 하얀 이가 보이고
혈색 좋은 복숭아빛 얼굴에 능소화가 핍니다
멀리서 북소리가, 기적소리가 들립니다
바다의 소리가 청량합니다
귀가 맑아졌습니다
순딩이
문희봉
그의 아비는 그에게 올무의 위험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산길에서 산적을 만나도 경계하라 가르쳐주지 않았다
주름진 곱창에 윤기 채우기 위해
아랫동네 마실 온 고라니
푸른 눈에 물이 말랐다
언젠가 만났던 순딩이
배 고파 내려왔다고 수화만 보낼 뿐
적의는 없었다
단풍나무 수줍음 보이던 날
고구마 한 뿌리 얻어먹으러 내려 왔다가
영어의 몸이 되어서도 푸른 눈만 껌뻑인다
십일월의 사나운 인심을 나무랄 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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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序
아직도 팔팔한 나이, 그런데 해놓은 게 없다.
거기다 내 시는 언재나 약관이다.
언제쯤이나 오쏘바쥬 EAU SAUVAGE향을
풍길 수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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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 詩集 [※당신을 닮았습니다※]
[ 해설 ] -
감성感性에서 뽑아올린 소멸과 생성의 미학美學
조근호 / 시인. 문학평론가
Ⅰ.
문희봉文熙鳳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해설을 부탁 받고 여러 번 사양하던 끝에 승낙을 하고 말았다. 간곡한 청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굳이 사양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시는 읽는 이에 따라 그 해석이 분분할수 있는 것이거늘 평자評者의 주관적이고도 자의적인 해설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 시인은 삶에서나 작품에서나 흐트러짐이 없이 조용한 성격에 차가운 듯하면서도, 속 깊이에는 언 땅을 녹이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지심地心과 같은 온기溫氣를 머금었으되 서두르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다.
‘시는 곧 인간이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들어온 말이지만 이 시집의 작품들 역시 그의 인생을 반영한 것으로서 개인적인 사상과 감정은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생활 태도까지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 시인의 시세계에서는 황막荒漠하거나 답답하고 어두운 구석은 그리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언뜻 눈에 드는 것은 밝음 지향의 세계, 청량한 것, 따뜻하되 서늘함의 조화로움 등, 세상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보일 뿐 우울한 세상은 자리할 틈이 없어 보인다.
그는 생활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듯한 소재라 할지라도 이를 감성으로 다듬고 투철하면서도 신명나는 작가 의식으로 갈무려서 보석처럼 영롱한 수작秀作으로 뽑아 올리고 있다.
Ⅱ.
문 시인의 작품에서 눈길이 머무는 대로 그 세계를 탐색하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하며 함께 여행해 보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겨울 추위
돌이 되어 살아도
가슴 속엔 따스한 난로 하나
그래서 행복하시다
-「망부석」全文
시집의 첫 페이지를 차지한 짧은 시이다. 시의 길이가 길고 짧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요즘 세상이다. 나의 잘 잘못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도 짜증나는 일인데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우리를 엄청나게 짜증나게 한다. 이런 정황을 <한겨울 추위>로 환치하여 망부석의 몸조차 굳어 가는 상황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도 미소 짓는 얼굴로 행복한 듯 보이는 망부석에서 조금의 위안을 찾아야 한다고 은근히 주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거실 안 바구니 안 모과를 봅니다
자기만의 향 피우며
한겨울 이겨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안면 한쪽이 함몰되고 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허무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앙탈을 부려봅니다
어머니
어제는 당신의 묘소 앞에 엎드려
지나간 세월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조심스러웠던 세월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후략…
-「당신을 닮았습니다」一部
가을쯤이면 거실 중요한 자리를 떠억 차지하고 있던 모과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시인은 샛노랗고 향기 진한 모과를 떠올리며 풍요한 가을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더께를 이기지 못하고 저승꽃처럼 번지는 모과의 상처를 보며 비로소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조심스러>워 하시며 시인을 애지중지 기르시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 노년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과를 보며 가슴 아프지만 이제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제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된 시인은 <당신의 묘소 앞에 엎드려/ 지나간 세월의 잘못을> 회억回憶하는 수밖에……. 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의도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의 작용 내지 그러한 감성을 노래하기보다 인간과 자연에 바탕을 둔 시의 진실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그만의 개성 있는 심상 표현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빛’은 좋은 말
‘빗’은 괜찮은 말
‘빚’은 나쁜 말
쉰한 살 중년 나이에 젊은 아낙 두고
아이들 두고 ‘빚’이란 선물
교육시켜야 할 돈
배필 맞이할 돈
주머니에 찬바람만 가득하다
빛이 좋은 날 빗을 팔기 위해
가판대에 앉은 아낙
필요하지도 않은 남자
어리빗도 사고 참빗도 산다
인상 좋은 아낙 모습 보며
저만치 갔다가 돌아 와서
한 개 더 사주는 배려
‘빚’이 싫어 ‘빗’ 장사는 하지만
언제쯤 자기 인생에 ‘빛’이 들까
어림해보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어떤 여자」全文
‘빛’, ‘빗’, ‘빚’이 만들어내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를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듯한 쉰한 살 중년 아낙의 핍박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요즘 세상에 색깔 고운 플라스틱 빗들이 얼마나 많은데 전통의 어리빗과 참빗들을 팔고 있는가. 아마도 그 수입은 극히 얼마 안 되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인상 좋은 아낙 모습 보며> 빗이 <필요하지도 않은 남자>가 저만치 가다가 가던 길을 돌아와 <어리빗도 사고 참빗도 사>주는 남자가 있어 훈훈한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혹시 작품 속의 남자가 문 시인은 아닌지 그의 후덕한 인정을 넘겨짚어 본다.
냉동실 안에 내 친구가 반듯이 누워 있다
고독과 추위와 사투 중이다
아득하게 찬란했던 70년 세월이
모두 얼었다.
혼자 누워 있고 아내와 가족들은 오열하고 있다
…중략…
일그러진 얼굴 살살 긁으며 애써 태연한 척 요술을 부린다
이승의 끈을 놓으라고 하는 장의사의 말에 순종하려는 듯
앙탈 한 번 부리지 않고 굴리면 굴리는 대로
손을 그러쥐면 그러쥐는 대로 마치 초등학교 입학생 같다
손발이 묶여도, 가슴이 묶여도 말 없이 따르는
그의 표정이 어둡지 않아 다행이다
…후략…
-「냉동실」一部
이 작품은 아마도 초등학교 동창쯤 되는 친한 친구의 입관식을 지켜보며 지은 것인가 보다. 입관식은 대개 가족들만 참여하는 것이 보통인데 얼마나 친한 친구이면 이승의 마지막 자리를 함께 하며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가. <손발이 묶여도, 가슴이 묶여도 말없이 따르는/ 그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고 했으니 아마도 행복한 삶을 살다가 마감한 친구인가 보다. 우리는 흔히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산 사람은 다 살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남은 사람들의 아픔쯤은 알 까닭이 없다. 오로지 아픔은 살아남아 있는 가족과 친지들의 몫이다. 그런데 여기에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우루루 몰려나오는 살붙이와 친구들>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비가 목젖을 뭉클하게 적신다.>에서 보듯이 이별의 의식은 다한 것이지만 시인은 가슴에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슬픔을 확인하며 재차 아픔을 되새긴다. 참으로 비장한 인간미가 넘치는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산으로 올라가는 곳에 좋은 목을 잡고 그 남자는 오늘도 전廛을 편다
…중략…
그 남자의 가방 속에 든 것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름도 지어주고, 고쳐주고, 취직운, 사업운도 봐주고...
복채는 상관 않기로 했다
연필 가진 사람 글 쓰게 하고
총 가진 사람 철조망 지키게 하고
언변 좋은 사람 강단에 서게 한다
그 남자의 가방 속에 든 것들은 오늘도 웃음을 쏟아낸다
속이 시커멓게 탔거나 멍이 든 사람의 가슴앓이도 고쳐준다
팔십이 넘었는데도 지팡이가 필요 없다
안면 양쪽에 새겨진 볼우물이 인상적이다
-「그 남자의 가방」一部
이 시집의 표제 작품이다. 도시 근교의 관광지를 오르다 보면 가끔은 볼 수 있는 관상, 사주, 작명 등 여러 가지 운명을 점쳐 주는 역술가를 가만히 지켜보며 쓴 작품인 듯싶다. <복채는 상관 않기로> 작정하고 그저 운명이 점쳐지는 대로 좋은 말을 해 주는 팔십이 넘은 역술가의 <안면 안쪽에 새겨진 볼우물이 인상적>인 모습에서 인생살이를 달관한 듯한 선인仙人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어쩌랴! 어떤 역술가들은 복채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진다고들 하던데…….
몹쓸 병으로 아들 잃고
며느리까지 가방 챙기던 날
억척이로 소문 난 민들레 뿌리 같다던 여자
나이는 먹고 싶어 먹었나 흐린 날에는 무릎에서 무종이 울린다
태풍에도 끄떡없이 반듯이 서던 여자
비바람에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 흙집
바르고 나면 그때뿐 다시 떨어져나가는 흙벽
새끼줄로 지붕 얽어매고 떨어져나갈 때마다
고목 같은 손 놀려 다시 발랐다
부서지고 망가진 곳마다
덧칠, 덧칠, 또 덧칠
구멍 숭숭 뚫린 벽은
진흙 바르기로는 이젠 안 통했다
손수레에 황토흙 실어와 다시 바르는 수고
기둥과 문틀 틈에 난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허리 펴자마자 삐걱하는 경고음
숭숭 뚫린 구멍은 누가 메울 것인가
어린 손주들 하늘 보고 우는데
빗속으로 사라진 며느리가 그리워
그 여자, 찰기 없는 흙으로 지은 집이었다
-「흙집」全文
요즘 시골이나 산골에 가면 할아버지 세대와 손주 세대가 함께 사는 조손祖孫 가정이 많다고 한다. 젊은 자식들은 저희들 살기도 빠듯하니 우선 힘펼 때까지만 손주들을 길러 달라고 부탁을 하니 부모된 입장에서 어쩌랴! 자기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늙은 나이에 손주들까지 덤으로 떠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삶이 매우 애틋하다. <몹쓸 병으로> 부모보다 앞서 가버린 자식을 원망해 무엇하랴. 며느리라도 자식들 건사하며 살아 주기를 간곡히 바랐는데, 가방 챙겨 제 살 길 찾아 떠나간 며느리를 원망도 못하고 숙명처럼 내 죄이거니 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골 노인들의 모습이다. <구멍 숭숭 뚫린 벽은/ 진흙 바르기로는 이젠 안통>한다. 늙은 삭신 <허리 펴자마자 삐걱이는 경고음>을 내며 무너지는 삭신을 누가 추슬러 줄 것인가! 메워도 메워도 끝이 없는 <숭숭 뚫린 구멍은> 바로 밑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보다 더 어려운 경제적 빈곤을 웅변처럼 그리고 있어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도시의 풍요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픈 시골의 현실이다.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는
고구마같이 잘 구워진
눈 오는 날 구들장 온기 같은
당진의 산, 아미산
그리움 대동하고 찾는 아미
길을 열고, 바람을 주고, 비를 주고
결 고운 메아리가
헛헛하고 쓰린 영혼을 감싸 안는다
고향의 품이 그리운 노스탤지어
불길 같은 증오 내동댕이치며
하루를 천년처럼 사는
저 부드러운 향기여
오랜 세월 보듬어 주겠다는
자양분 제공해 주겠다는
이슬처럼 눈부신 하늘 간직한
친근한 사투리로 반기는 나의 산하여!
-「 아미산」全文
사람은 누구나 한 세상 살아가자면 허구 많은 비와 바람과 눈, 서리를 피할 수 없고 연륜이 쌓일수록 회고적인 사념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터이지만, 문 시인의 작품에는 그것이 그리움이거나 슬픔이거나 회고적인 사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잃어버린 어젯날의 향수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문 시인은 상상력에 의해 체험을 변용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과 역경을 되돌아보며 기억을 재생시켜 시를 빚고 있으며, 거기에는 인고의 세월을 타고 넘던 때의 아픔과 슬픔, 아쉬움과 그리움의 조각들이 문신처럼 수 놓여져 있다. 한갓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고향 쪽으로 둔다는 말이 있다. 문 시인의 많은 작품에서 회한과 용서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아마도 이것은 세상 역경을 고루 바라보며 달관한 듯한 그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이제는 세상살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칠십 고개에서 바라보는 순한 감정인가 보다.
이 작품은 시인의 고향인 당진 고을의 정겹던 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이들어 갈수록 새록새록 묻어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 성장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고 정서적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던 <나의 산하여!>.
코 묻은 밥을 먹어도 좋다
콧물보다 더한 것이 묻은들 어떠랴
선한 눈망울을 가진 너
나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웃음 보인다
천사가 내려온 양
내 마음은 화선지가 된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하도 귀여워 잠시 안았을 때
네가 나에게 준 선물은
남방에 묻힌 밥알이었다
이튿날 아침 산책을 가기 위해
남방을 입었을 때 꺼끌꺼끌 내 손에 닿는 감촉
그건 밥풀이 아니라
네가 준 사랑이었다
그 사랑 오래 간직하기 위해
금방은 세탁을 보류하기로 했다
-「 손녀가 준 선물」全文
가장 순수하고 부담 없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한 내리사랑 손주 사랑. 평자 또한 손주가 없을 때는 ‘손주가 뭐 그리 예쁘다고 저렇게 호들갑스럽게 난리들인가.’하고 의아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손주가 생기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는 짓마다 어찌 그리 예쁜지 길러 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제 부모가 다투고 말도 하지 않고 집안 분위기가 싸하기라도 하면 할아버지에게 살짝 다가와서는 “하바가 엄마 아빠 불러서 그러지 말라고 해.” 하며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는 센스 있는 아이가 손주다. 감기라도 걸려 풀이 죽은 채로 열이라도 나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대신 감기를 앓아 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심정을 알까 몰라. 코 묻은 밥이면 어떻고 남방에 밥풀을 묻히는 것이 대수랴! 손주의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묻어나는 흐뭇한 작품이다.
여름 내내 비탈진 밭을 일궈
푸성귀를 가꿨고
울타리 치며 고라니를 막았다
검게 그을린 목과 손목이 언제쯤
희어질 것인지 기대도 아니하고
서녘하늘의 따가운 햇살이 쇠잔해질 때를 기다리면서
하늘 올려다보는 일만을 생각했다
힘들면 그늘막에 퍼질러 앉아
‘좋은 생각’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그렇게 여름의 꿈을 익혀 갔다
땡볕이라야 더욱 튼실하게 자라는 놈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영근 꿈을 바구니에 담았다
하늘도 맑고
내 마음도 맑고
하루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이면
타지로 나간 아들 녀석의 안부 전화
붉은 노을을 타고 달려온 딸아이의 살가운 편지 한 통이
지친 육신을 달래주었다
이렇게 보낸 여름 덕분에
이 가을
주름진 내 이마에 노란 국화꽃이 피었다.
-「 가을날의 기쁨」全文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물러나 작은 텃밭을 경영하며 여유 자적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열정을 바쳐 헌신하던 직장에서 물러나고 나면 딱히 이렇다 하게 할 일도, 갑자기 갈 곳도 없고 참 막막한 심정이다. 등산도, 낚시도, 영화 감상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일구어 시간 죽이며 생활하는 것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줄 몰랐다. 시덥지 않은 농사인데도 어쩌자고 고라니가 몰래 찾아와 같이 먹고 살잔다. 고라니 막는다고 울타리치고, 새파랗게 돋아나는 잡초와 전쟁을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일하다 힘들면 그늘에 앉아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는 안빈낙도의 생활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낸 정감 있는 작품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끔하게 닦여진 고속도로 옆
큰 굴뚝을 안고 있는 타이어 공장이 보인다
내 애마의 네 다리도 저 곳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내 이웃 철구 씨가 일했던 곳
매일 밤 야근 탓이었는지
무슨무슨 분진 때문이었는지
병명도 모른 채 숨을 거둔 철구 씨
어젯밤 꿈에 나타나
나보고 술 한 잔 하자 하는데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 타이어 공장」全文
요즈음은 옛날과 다르게 작업 환경 오염에 사회적 관심이 많다. 10여 년 전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서 어떤 여공이 입사한지 2년 만에 급성골수백혈병이라는 희귀병을 얻어 2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300여 명이 같은 병으로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도 산업 재해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14명밖에 안 된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여공이 입원을 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회사 임원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하루 빨리 사표를 쓰라는 요구와 함께 작은 돈 봉투를 내밀었다고 한다. 돈 몇 푼으로 골치 아픈 일 빨리 끝내자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 시인의 친구도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 독한 독성 물질의 분진으로 건강을 잃고 <병명도 모르는 채 숨을 거둔> 모양이다. 문득 꿈속에 나타난 친구의 얼굴에는 생전과는 다르게 얼굴에 핏기가 발그레 하더란다. 아마도 저 세상에는 병마의 고통이 없는가 보다.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며 직원들의 작업 환경은 나 몰라라 하는 그릇된 사회 풍조를 무섭게 힐난하는 사회 고발성이 강한 작품이다.
비린내 때문에 생선을 못 먹는다는 사람을 나는 이해하지 못 한다
비린 게 무지무지 먹고 싶을 때 나는 산으로 간다
산에 가면 비린내 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파아란 바람, 잘 여문 열매, 상큼한 공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다
나뭇잎은 새우튀김처럼 파삭하게 부서져 먹기가 좋다
달콤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식감이 구미를 당긴다
앉은 자리에서 한 그루 다 해치운다
연한 가지는 어금니로 똑똑 끊어 먹고
잎사귀 뒤에 붙어 있는 거미줄도 핥아 먹는다
뿌리까지 먹고 나니 새들이 하늘을 맴돈다
…중략…
등 푸른 생선처럼 비린내가 나는 나무들
산은 살아 있는 활어들의 천국이다
…중략…
어린 것의 몰캉한 살점을 뜯으러
오늘도 산으로 간다
-「생선 맛있게 먹는 법」一部
요즘은 웰빙 식품에 관심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세 가지 흰색 식품(소금, 설탕, 흰 쌀밥)을 멀리 하고 되도록이면 거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삶들이 많아졌다. 자연에서 무공해로 자란 나뭇잎들을 아삭아삭 씹어 보는 자연인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여리게 돋아난 부드러운 솔잎도 별미이고, 밭둑가에서 자라고 있는 찔레순을 꺾어 먹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지 않는가!
<등 푸른 생선처럼 비린내가 나는 나무들/ 산은 살아 있는 활어들의 천국이다>. 건강을 위한 산행을 자주 하며 자연의 혜택을 만끽하면서 무병장수하시기를 기원한다.
장안사 범종 소리
회룡포를 적시고
법당 안 볼 고운 방년
눈물 속의 독경 소리
사랑을
못 태운 마음
솔향에 젖어 흐른다
-「미완」全文
이 시집 속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실려 있는 시조 작품이다. 시조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문학 장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의도적이었든, 무의도적이었든 간에 시조 형식을 빌어 탄생한 이 작품이야말로 이러한 민족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우리의 언어, 습속, 정신, 위의威儀를 그 안에 자연스레 내장하고 있는 시조는, 그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시대의 풍속과 이념 그리고 보편적 정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표상해온 우리 문학의 정수精髓이다. 시조는 의미 중심의 내재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독특한 형식적 제약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그 내용이 아무리 시적詩的이라 해도 기본 형식에서 너무 멀어져 있으면 시조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3장 6구라는 기본 틀이 공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시조의 존재 이유는 형식에 있고 그 가치는 심오한 내용을 머금고 있을 때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하이꾸가 국민 문학이 된 것처럼 우리도 국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시조 작품을 흥얼거리며 써 보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Ⅲ.
감상을 배제하고 지적인 혜안慧眼으로 관조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적 미의식을 발휘한 것이 심상 미학이라고 한다. 뜨거운 열정으로 일관되게 일궈온 시혼에 맑고 화사한 꽃바람이 스치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여운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번 시집 속의 작품들은 형식면에 있어서 문 시인의 기존의 시집들과는 달리 시형이 길어진 경향이 보인다. 시의 길이가 길고 짧은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시가 길어질 때와 시의 긴장미가 상호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독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고, 또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 시인의 작품들을 나름대로 감상하면서 감각적이거나 지성적인 체험의 한 기억으로서 정신적인 재현을 의미하는 심상에 접근하여 시적 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단지 평자의 주관적인 해석의 자의성을 극복했다고는 자부할 수 없으며 독자들의 현명한 안목에 맡겨 둘 수밖에 없음을 밝히면서 문운이 더욱 창성하시기를 기원하며 글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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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시는 곧 인간이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들어온 말이지만 이 시집의 작품들 역시 그의 인생을 반영한 것으로써 개인적인 사상과 감정은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생활 태도까지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 시인의 시세계에서는 황막荒漠하거나 답답하고 어두운 구석은 그리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언뜻 눈에 드는 것은 밝음 지향의 세계, 청량한 것, 따뜻하되 서늘함의 조화로움 등, 세상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보일 뿐 우울한 세상은 자리할 틈이 없어 보인다.
그는 생활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듯한 소재라 할지라도 이를 감성으로 다듬고 투철하면서도 신명나는 작가 의식으로 갈무려서 보석처럼 영롱한 수작秀作으로 뽑아 올리고 있다
― 조근호 시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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