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공덕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부농은 아니었지만, 머슴 한 사람을 늘 데리어 농사를 지었다. 머슴에게 주는 급료를 세경이라 하여, 가을걷이를 마친 후에 벼로 지급하였다. 벼 열말을 한 포라 하였는데, 우리 집 머슴에게는 열 포 가량을 준 것으로 기억된다.
머슴은 잠도 우리 집 초당 방에서 자고, 크고 작은 집안일을 함께 걱정하면서 치렀기 때문에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머슴을 대하는 하나의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무슨 음식을 하던 머슴에게 제일 먼저 대접한 후에 우리 식구들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머슴이 볼일로 먼 곳에 가서 며칠씩을 집을 비우는 일이 생길 때에는, 마련한 음식을 그릇에 먼저 담아 머슴 것으로 보관한 후에 식구들이 먹었다.
이러한 우리 집 특유의 법률은 할아버지께서 만든 것인데,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엄한 규칙을 만드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대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되신 증조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할아버지께서는, 일찍부터 남의집살이를 많이 하셨다.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나무를 해서 한 짐 지고 주인집에 들어가니, 주인집 식구들이 황급히 먹던 음식을 감추었는데, 알고 보니 닭을 잡아 나누어 먹던 중, 할아버지가 들어오니 이것을 주지 않고 자기네 식구들끼리만 먹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없는 사람이 부끄럼 잘 탄다는 말처럼, 할아버지께서는 가난의 설움이 북받쳐 뒷간에 가서 남몰래 한없이 울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남의집살이에서 얻은 이러한 설움과 한(恨) 때문에,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 집 머슴에게는 그러한 상대접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 집을 거쳐 간 머슴들은 모두가 우리 집의 이러한 대접에 고마워하였고, 할아버지를 존경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는데, 그 중에서 일 년에 한차례 동네 사람들에게 대추를 나누어 주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기억이 새롭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우리 집은 시골이었지만 마을 앞에는 아주 넓은 돌자갈밭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추나무가 심어져 큰 대추 과수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의 대추나무는 지금의 개량된 대추나무처럼 키가 나지막한 나무가 아니고, 높이가 느티나무처럼 크고, 굵기도 아름드리가 되는 재래종 나무였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긴 장대를 들고 나무에 올라가, 대추를 털어 수확하였는데 그 양이 엄청났었다. 대추 터는 날이면, 그 넓은 자갈밭이 온통 익은 대추로 벌겋게 변하였다. 그런데 대추 값이 지금처럼 비쌌는지 헐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할아버지께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 대추를 가지고 가고 싶은 대로 털어 가게 하시었다.
여기에도 한 가지 규정이 있었는데, 자기가 가져가는 대추는 반드시 자기가 털고 주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지에서 온 어느 나무꾼이, 우리가 주워서 모아 놓은 대추를 가져가다가, 할아버지께 들켜 큰 꾸지람을 받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어떻든, 대추 터는 날은 온 동네가 축제날이었다. 잘 익은 대추는 단맛에다 특유의 새콤한 맛이 겹쳐져 참 맛이 좋았다. 지금 개량종은 속살이 약간 푸른빛이 나는데, 그때의 대추는 과육이 희기가 눈 같았다. 이렇게 맛좋은 대추를 나누어 가진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할아버지를 칭송하였고, 이에 답하듯이 자기 집에 별식이라도 할라치면, 꼭 우리 집에 가져와 할아버지께 대접하곤 하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꼭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 마을에 살다가 한센씨병(나병)에 결려 마을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볼일이 있어서인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쉬쉬하면서 이 사람을 피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이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밥을 주고 잠을 재워 보냈다. 그것도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잤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든 사람을 박대할 수 없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환자를 돌보던 어느 목사가, 자기도 그 병에 걸려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할아버지 생각을 줄곧 하였다. 할아버지가 한없이 존경스럽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사람을 선행으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 낸 종교적인 용어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세상사를 둘러보니, 이 말이 참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가 베풀어야 남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고, 베푼 것은 당대가 아니면 다음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이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남 부러워하지 않고 자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와 같은 할아버지의 공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달리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아들딸 낳고 살아가면서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또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자식들이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잘 따르고 대접해 주니, 이것이 다 할아버지께서 베푸신 공덕을 내가 돌려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부끄러운 것은 나는 할아버지처럼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죄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