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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2012 대교눈높이 중등리그' 경기동부리그 17라운드 광주중과의 경기에서 4-0 대승을 이끈 여주중축구부원들이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ksport
리그성적 9승 9패 예상...권역리그 4위로 왕중왕전 본선 진출 좌절
내년엔 더 좋은 성적기대...유정의 미 거둬
9월 6일, 여주중학교운동장에서 펼쳐진 ‘2012 대교눈높이 중등리그’ 경기 동부리그 여주중과 광주중의 경기는 여주중이 경기 내내 공격권을 장악한 가운데 4-0으로 승리했다.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다. 2위까지 주어지는 왕중왕전 본선 진출 팀이 이미 가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4위인 여주중은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5위인 광주중은 여주중을 꺾고 순위를 뒤집어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양 팀 선수들은 주심의 휘슬소리와 함께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이날 경기에서 전반 초반 주도권을 잡은 팀은 ‘조직적 압박축구’를 구사한 여주중이었다. 여주중은 발이 빠른 조익성, 이창현, 김대균의 기동력을 앞세워 경기를 주도했다. 조익성은 최전방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좌우측에 이창현과 김대균과 호흡을 통해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광주중은 탄탄한 수비벽을 구축하며 여주중의 공격을 막아냈다. 4-2-3-1 시스템을 사용한 광주중은 수비라인 위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드를 배치해 여주중의 초반공세에 침착하게 맞섰다.
초반부터 접전 이였다. 먼저 우위를 점한 것은 여주중. 강하게 압박한 후 발 빠른 조익성과 김대균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측면을 공격했다. 측면을 빠르게 파고드는 상대를 막기 위해 광주중은 중앙에 허점을 노출했고, 이런 결과는 이른 시간 전반 7분 선취골을 허용했다. 광주중 PA안 우측에서 조익성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날려 골키퍼의 펀칭을 유도했고, 이를 양재훈이 가볍게 제차 슈팅을 연결해 기분 좋은 선취골을 낚았다.
이후 공세를 잡은 여주중는 계속해서 광주중 문전을 공략하며 추가득점에 기대치를 높인 가운데 전반 18분 스트라이커 조익성이 우측면 땅볼패스를 이어받아 그물망을 흔들었다. 스코어 2-1.
전반전을 2-0으로 뒤진 광주중는 선수교체로 분위기를 바꿨다. 정신력을 무장한 광주중은 수비에서 안정을 되찾아 여주중의 공세를 막아냈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여주중의 공격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후반 15분 오제혁에게 세 번째 골을 헌납했고, 후반 28분 김대균에게 네 번째 골마저 허용하며 4-0으로 대패했다.
이로써 여주중은 18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8승 9패로 리그 4위로 마감, 남은 여강중 전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올 시즌 리그성적 9승 9패, 5할 승률을 올렸다.
축구계 선후배 간의 의리, 도덕성 무너지는 현실 안타까워..
▲1970년생인 여주중 황중철 감독은 풍생중.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풍생고시절 고교축구 유망주로 1988년 KBS배 전국 고교축구대회 우승. 최우수 선수 및 최다득점상 수상했고, 그해 추계 전국 고교축구대회에서도 최다득점상을 받는 등 고교축구 최고의 유망주로 활약했다. 이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해 대학축구선수권대회 4회 우승과 태국퀸스컵축구대회 4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1988년 - 1989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 ksport
사실 여주중은 창단 초기부터 지금껏 힘든 여정을 헤쳐 나왔다.
"처음 창단할 때 학원축구가 아닌 클럽축구로 출발 했어요. 요즘 들어 클럽축구가 많이 부각되고 있지만 저희가 창단할 때만 해도 클럽 팀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그런 점에서 완성된 팀을 만들 수 없었어요.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점도 발생했고, 결국 포기하고 학원축구로 전환했어요." - 황중철 감독
여주중의 창단 배경은 클럽축구였다. 중-고등학교를 연계하는 순수 클럽 팀으로 취지와 발상의 출발점은 좋았다. 여주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모 유스호스텔 사업일환으로 일정한 수입금액을 축구부에 후원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 가지 못했고, 그런 결과로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결국 완성된 팀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학부모님들이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저 하나만 믿고 따라온 아이들이었는데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결국 중도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지금도 가끔 그 당시의 어려웠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제 생각이 많이 짧았던 시기였어요. 멀리를 내다보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어야했는데 당장 앞만 생각한 것 같아요." - 황중철 감독
하지만 남은 아이들을 위해 황 감독은 그냥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본인 사비를 털어 팀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동안 조금 모아두었던 돈도 바닥이 났고 빚을 얻는 등 고진감래의 마음으로 팀에 헌신을 했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팀에 대한 좋지 소문과 불화를 조성시키는 사람들이 주변에 더욱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인내하고 견딘 세월이 이제는 마음속 병까지 얻었다. 초등학교(성남한솔초)지도자 시절, 전국대회와 지역대회 등에서 50여 차례 팀을 우승을 시키는 등 각광받는 지도자 황중철 감독 아니었던가..그런 그에게 이러한 시련이 찾아 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 당시 제가 욕심있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를 도와준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저희 부장님(한재각 축구부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하며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어요. 결론은 학원축구로 다시 출발하자는 데 뜻을 모았고, 그렇게 해서 여주중축구부가 창단됐고, 지금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어요. 지나온 세월이지만 저보다는 저희 한재각 부장님이 더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가끔 술자리를 함께 할 때 그 당시의 힘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하는데 그저 추억으로 생각하면서 웃고 말아요." - 황중철 감독
▲지난 7월 김해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중학교축구대회에서 황중철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다. ⓒ ksport
황 감독은 자신의 버릇인 머리를 긁적이며 기자의 인터뷰질문에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라는 황 감독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황 감독은 이내 정색하며 '지도자생활이 참 힘들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저는 초등학교시절 참 편하게 지도자생활을 한 것 같아요. 지역적인 부분도 좋았고 무엇보다 제 고향이다 보니 도와주는 지인들도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참 행복하게 지도자생활을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비로소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여기 여주에 내려와 단 한 번이라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어요.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선수 스카우트 부분이었는데 올해 같은 경우 동계훈련 때만 해도 이제 어느 정도 정상권으로 올라갈 수 있겠구나 했어요. 선수들도 풍족했고, 기량이 좋은 선수들도 많은 이유였죠.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찢기는 시련을 또 다시 맞이하고 말았어요." - 황중철 감독
여주중은 올 초 만해도 40여 명이 넘는 선수들을 스카우트해 올 시즌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하지만 팀 내부의 적이 있다는 것을 감 잡지 못했다. 내부의 적은 가장 믿었던 코치였다. 시즌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코치가 여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에 위치한 모 중학교로 전학을 가버린 것이다. 이제 겨우 팀을 제대로 만들었는데 황 감독 입장에선 청천벽력을 맞은 셈이다.
"어이가 없엇고, 제 불찰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믿고 따라준 코치가 그런 행동을 한 점은 지위를 떠나 축구인 선후배로 관계로 도저히 용서가 안 되었고,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간 팀 학교의 감독이 제 대학교선배라는 점에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기본도, 의리도 없는 학원축구풍토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 황중철 감독
사람 좋기로 축구계에 소문난 황중철 감독, 그런 그의 착한성격이 때론 비정한 축구판에 상처만 안고 살아왔다. 힘든 생활에 내색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린 결과, 결실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 결실은 또 다시 나쁜 인간들에 의해 빼앗기고 말았다. 세상사 모든 건 인간들이 만들어 간다. 축구판 역시 축구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간다.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 그리고 선후배간의 의리 하나만큼은 지켜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된다. 최소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선생이라면...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늘 행복할 수만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저 역시 평생을 축구판에 살아왔지만 '의리와 도덕'이 무시되어가는 축구판을 바라보면서 환멸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지난 시간에 대해 마냥 아쉬워할 수만 없는 게 저희 지도자들의 처지 아닙니까. 현실이기에 또 다시 뛸 수 밖에는요."(웃음) - 황중철 감독
황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원축구계의 어려운 현실을 피부 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운동선수 출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리와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실에 우리 어린유소년축구선수들이 무얼 배울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성적도 중요하지만 프로-대표선수 배출에 힘 쏟을 터
▲2010년 학교운동장내 정규규격으로 잘 조성된 인조잔디구장 전경, 여주중은 올 시즌 주말리그 홈경기를 학교운동장을 사용하며 전교생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축구문화를 조성했다. ⓒ ksport
요즘 들어 황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일까?
"사실 축구변방이라고 볼 수 있는 여주에 처음 내려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최근 들어 고생한 보람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 같아 무엇보다 고무적이에요. 지난해만 해도 신입생들 스카우트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지역은 경기도이지만 강원도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학부모님들이 전학 오기를 꺼려했어요. 하지만 지난해부터 저희 축구부가 전국대회 입상과 그리고 학교운동장 내에 인조잔디구장이 조성되었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 등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도시지역보다 훨씬 좋아지면서 올해부터는 여주중축구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좋아졌어요."
여주중축구부는 지난해 청룡기대회 3위와 왕중왕전 본선 진출 등으로 우수선수들을 프로산하 고교 팀으로 진학시키는 등 유망주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올해도 두 명의 선수가 프로산하 고교 팀으로 진학하면서 우수선수 발굴에도 한 몫을 독특히 했다. 이 모든 게 오랜 지도자생활 경험에서 나오는 황중철 감독의 훈련방식 때문이다.
"학원축구부 지도자로써 성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 경우 초등학교시절 수많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맛보면서 기쁨은 잠시뿐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지도한 제자들이 연령별 대표선수와 프로선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껴죠.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박지성-박주영 못지않은 대형스타선수를 발굴하고 만들어내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지도를 하고 싶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가 황중철 감독 밑에서 배출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게 마지막 지도자로써의 욕심이라면 욕심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라는 어느 대기업총수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황중철 감독은 과거 어느 지도자 못지않은 우승과 행운을 만끽해본 지도자다. 하지만 현재의 황 감독의 모습은 예전에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련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련을 즐길 줄 아는 경험많은 지도자로 무엇이 정답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줄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의 시련이 훗날 더 큰 나무가 돼 자신이 길러 낸 제자들에게 큰 그늘이 되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ksport TVㅣ황 삼 진 기자] sj1210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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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황을 알게돼서 감사드리고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바라시는바 우수선수 배출과 더불어 조만간 감독님과 부장님,여주중에 더 큰 영광과 좋은성적 확신합니다
여주중학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