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광각렌즈
양종윤
ㄱ
고요하다
좌표처럼 찍힌 속도감이 정적이다
두 차 사이 등속 여부는 무관하다
찍히는 건 단 한 순간이다
정지된 걸로 지각되는 게 옳다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경험적 사고가 간섭해서다
언젠가 너의 말과 행동이 액면 그대로 전달되는 일은 이 세상엔 없을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ㄴ
적막해졌다
찍차의 속력이 대단했는지 나뭇잎이며 콘크리트 바닥이며 밤바다가 다 일그러졌다
움직이는 찍차에서 가까울수록 대상은 더욱 흐트러졌다
관습이 되어버린 선입견에 얽히지 않으면 대상 그 자체에서 운동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너를 바라보면 너는 늘 정지해 있었다
ㄷ
마주보고 있는 데칼코마니가 쌍쌍이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저 너머 청춘은 연신 폭죽을 터뜨리며 왁자지껄 소란스럽고 야경은 눈이 부시다
격자 안엔 미풍도 없고 진실로 오르는 사다리가 없다
간택된 편집이 신음소리도 없이 무딘 소외를 낳고 있다
너는 지금 웬지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ㄹ
찍차 속도가 증폭된 건지 대상이 더 가까워진 건지 상관없다
바람이 헝클어진 건지 깃발이 구겨진 건지 너는 내쳐진 건지 홀로 걷고 있는 건지 관계없다
여태 튼튼했던 토대 위 상자속 고양이는 호불호 칸막이가 하나 추가되었다
넌 벌써 저 멀리 까맣게 변해버린 한 점이다
ㅁ
차를 멈춰 내렸다
한참을 서있다가 찍자가 되었다
떨렸다기 보다는 손놀림이 재빨랐다
틀거리가 바스라져 바닷속으로 빠진 건지 대상은 화려하게 요동치며 극도로 활성화 되었다
형체는 와해되었다
어? 언제 왔어? 몰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