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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강해 일부 보라 이 사람을
요한복음 19장 1-9
요절 요한복음 19장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에케 호모(Ecce Homo)'는 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이며,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당한 예수를 군중 앞에 끌고 나와 외친 말입니다. 미술사美術史에서는 많은 화가가 이 결정적인 고난의 순간을 그렸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붉은 망토를 걸친 채, 온갖 조롱과 상처를 입은 인간 예수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낮아진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빌라도는 재판장에 모여든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보라’고 반복하여 외칩니다. 채찍에 맞고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불쌍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그들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말씀에는 저자 요한의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요한은 아무 죄없는 예수님이 왜 고난을 받았는지 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먼저 우리가 은혜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을 보고 자연을 보고 스마트폰을 봅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그 뒤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받는 은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채찍에 맞고 가시관 쓰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역자로 고소하였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인 것을 아셨습니다. 빌라도 아무 죄없는 예수님에게 39대의 채찍을 때렸습니다. 채찍은 3,4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끝에는 뼈나 납이나 쇠조각이 박혀 있어서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었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가시나무로 왕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가지가 유연하여 둥글게 엮기 좋지만, 바늘처럼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가 촘촘하게 나 있어 머리에 씌울 경우 깊은 상처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합니다.
예수님에게 왕이 입는 자색옷을 입혔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뺨을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가시관을 쓴 머리를 갈대로 때렸습니다.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에 깊이 박혔습니다. 이마에 피가 흘렀습니다.
빌라도는 피로 물든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과 무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 반역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나오니 빌라도는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 다시 외쳤습니다. ‘이 정도 고통을 주었으면 됐지 않느냐?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되지 않는냐?’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여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유월절 특사로 놓아주고자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저자 요한은 빌라도의 말을 통하여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어서 이 고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죄없는 예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자원하여 받았습니다. 요한은 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왜 예수님이 고난을 받았는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묵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조롱받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이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를 치료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으로 병이 걸립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 암과 심혈관 질환 환자가 많습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증의 정신 질환자도 많습니다. 무의미, 허무, 절망의 영적인 병을 앓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수님은 이런 죄를 치료하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이미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보고 혹시 죄가 있다면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병치료를 위해서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많은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나병 열병 중풍병 수종병 혈루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많은 장애인도 고치셨습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지체장애인을 고치셨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좇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 하여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를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책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믿고 ‘나는 이미 나았다’ 나는 이미 건강하다고 선포해야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치료하신 예수님을 보고 건강하게 된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땅이 저주를 받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은 저주의 가시관을 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인간의 저주를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저주의 왕관을 쓰시고 저주 받은 자의 왕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장 13)고 하였습니다.
이윤호 목사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1999)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상의 저주 영향력 아래 우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모가 가진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부모가 가진 유전자나 안 좋은 습관을 물려받기 쉽습니다. 부모가 싸우거나 이혼했으면 그럴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부모가 폭력적이거나 알콜 도박 중독자이면 자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조상의 영향력 아래, 질병의 저주, 가난의 저주, 관계성 파괴의 저주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게 저주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저주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윤호 목사는 부모의 죄를 내가 회개해야 저주를 끊을 수 있다는 저주 끊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어 비판을 받습니다. 저주를 끊는 방법은 부모의 죄를 내가 회개함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끝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는 건강하게 살고 부유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조상의 저주를 끊고 그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조상이나 부모와 달리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고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우리는 복을 계속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나가도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복을 받습니다.
나는 11년 만성 질병을 앓으면서 저주아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대신 저주 받으신 것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병을 치료하였을 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난 말씀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나에게 분에 넘치는 너무나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왕으로 멸시를 받음으로 우리는 왕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왕이 아니라고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멸시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왕과 같이 존귀한 존재로 자유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하나님 안에서 다스리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너’라면 우리는 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 피조물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탐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상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고 사람의 노예가 되고 중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니코틴이나 알콜의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님이 무시를 받음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왕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에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지금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계시록 20장 6) 우리는 종노릇하는 데서 자유를 얻고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전에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입니다. 아사셀 염소가 죄를 지고가서 광야에서 죽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 죄를 멀리 옮기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구약의 민수기 21장 사건을 인용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죄를 지어 불뱀에 물려 독이 퍼져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독이 퍼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치료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장대 위의 놋뱀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독이 퍼져 죽어가던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치유되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장대에 들린 놋뱀처럼 자신도 십자가에 높이 들려 못 박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뱀에 물려 죄의 독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우리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2)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대제사장들과 예수님의 피를 보고 피를 본 이리처럼 소리질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빌라도가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이 마땅히 사형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성을 모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인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일곱 가지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였고 공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려주어도 빌라도는 알아듣지 못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자 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름수양회에서 영화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의 유능한 기자 리 스트로벨은 눈에 보이는 증거만 믿는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어느 날 딸이 목에 구슬사탕이 걸려 위험에 처하였을 때 예수님을 믿는 한 간호사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내 레슬리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고 침례를 받습니다.
리는 아내가 사기꾼 같은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강한 거부감과 갈등을 느낍니다. 아내를 구하고 기독교의 허구를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 리는 의학, 고고학, 철학 전문가, 사본 연구자들을 찾아가 예수의 부활과 죽음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하는 탐사 보도를 시작합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등 각 분야 최고 권위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만, 오히려 그들이 제시하는 압도적이고 논리적인 역사적 증거들 앞에 자신의 생각들이 반박당합니다. 2년에 걸친 치열한 조사 끝에 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단순한 신화나 거짓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예수님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서재에서 자신이 모아둔 증거 서류들을 보며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이후 그는 신문사를 떠나 목회자이자 기독교 변증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신 최영기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결교 최석모 목사의 손자로, 본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전자과를 졸업한 엘리트 공학도였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유학 시절, 길거리에서 전도대원이 나눠준 신약성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그 신약성경을 펼쳐 읽기 시작하다가 예수님은 정신병자이거나 하나님의 아들 둘 중에 하나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라는 즈거들을 마주하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됩니다. 최영기 목사는 위대한 성인이나 현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죽어 무덤에 갇혔다면 그들이 말하는 사후세계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라는 분이 정말 죽었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면 그분이야말로 죽음 이후의 하나님 나라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활의 역사성을 이성적으로 인정한 최목사는 서른 살(30세)이 되던 해에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회심 직후 대학원 내에서 기도 모임과 성경 공부를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연구소(배리언 중앙연구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청소년 성경 공부 모임을 조직하는 등 철저한 '평신도 사역자'로 살았습니다. 평신도로서 교회를 섬기며 큰 사역의 열매를 보던 중, 41세의 나이에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침례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휴스턴 서울교회에 부임하여 성경적인 신약 교회를 재현하는 '가정교회' 시스템을 정착시켰습니다. 단 30년 목회를 하였지만 세계에 아주 영향력 있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항상 기쁨을 누렸습니다. 시편 16편 8-11절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죽음과의 거리가 한 걸음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를 항상 그 앞에 모시고 사니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니 마음이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체도 부활시키실 것을 믿었으므로 충만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소망이 생기고 희망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로마 시대 십자가 형벌을 받은 사람은 최소 30만에서 최대 200만까지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누구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위해서 죽은 것이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증거하셨습니다. 죄없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영원하 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오셔서 죄사함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우리가 자신을 보면 절망하고 다른 사람을 보면 원망이 세깁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유혹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보아야 하지만 이런 것 뒤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모세만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없어지자 하나님이 없어졌다고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40년 광야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추위와 더위에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가서 다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를 봅니다, 예배당을 올 때 차를 타고 오셨고 들어오는 길을 보셨고 건물을 보셨고 지금은 예배당 안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모든 것을 보면서 그곳을 만드신 하나님을 봅니다. 그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보고 부활의 능력을 봅니다. 그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볼 때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을 보시고 은혜를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9장 강해 일부 보라 이 사람을
요한복음 19장 1-9
요절 요한복음 19장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요한복음 19장 강해 일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