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 ‘맹탕’ 연금개혁안 국회로 던진 정부, 개혁 의지는 있나
입력 2023-10-28 00:00업데이트 2023-10-28 00:00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보건복지부는 어제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확정했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얼마를 내고(보험료율), 몇 세부터(수급개시연령), 얼마를 받을지(소득대체율) 결정하는 것인데 계획안에는 이 숫자가 모두 빠져 있다. 세대에 따라 의견이 다양한 만큼 국회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연금개혁의 부담을 국회에 떠넘긴 것이다. 지난 정부 때는 4개 시나리오를 담은 계획안을 제출했다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받았는데 이번 정부안은 아예 맹탕 수준이다.
연금개혁은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가 단일안 도출에 실패하면서 이미 동력을 잃은 상태다. 재정계산위는 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을 해야 한다면서도 스무 가지가 넘는 개혁 시나리오를 정부에 떠넘기고 활동을 종료했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이 중 최선의 안을 선택해 국민을 설득하고 개혁 작업에 속도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선택지를 좁히기는커녕 사실상 백지안으로 연금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다른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되는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연령별 인상 속도 차등화 추진’이라는 벙벙한 방향만 제시했을 뿐이다.
소득의 9%를 내고 노후에 40%를 받는 현행 연금제도는 해외 평가기관도 ‘제도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진단한 바 있다. 연금 내는 사람은 급감하고 받는 사람은 급증하면서 2041년부터는 연금기금이 적자로 돌아서 2055년에는 바닥난다. 이후로는 부과식으로 바뀌어 2060년이면 일하는 세대가 100만 원을 벌면 34만 원을 고령자 연금으로 내야 한다. 이마저도 출산율 1%대의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추산 결과에 따르면 지금 세대가 연금을 받기 위해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미적립 부채가 1735조 원으로 가입자 1인당 8000만 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2030세대 중 나중에 연금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비율이 30%도 안 된다. 이런 제도가 얼마나 가겠나.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 대통령 승인을 받아 31일까지 최종 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대통령이 승인한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취임 직후 연금개혁을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하고, “인기 없는 일이지만 해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 놓고 맹탕 안에 서명했나. 왜 개혁의 골든타임을 무책임하게 흘려보내는지 국회에 넘기기 전에 해명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