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 민간군사기업의 글로벌 동향과 시사점
바그너그룹 프리고진 사망 계기 주목
냉전 종식 후 일자리 잃은 군인들 흡수
미, 해외 군사원정 늘자 많은 임무 위임
오바마 정부 들어서 수요 현격히 감소
최근엔 석유회사 등 민간기업과 계약도
지난 8월 23일, 러시아의 대표적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인 바그너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PMC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군대의 일을 대행하는 민간기업’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근대 이전의 시대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근대 이전의 시기, 특히 중세는 용병의 시대였고 국가에 병력 전체를 임대한 기업화된 용병단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발렌슈타인 용병단이 있다. 근세 들어 상비군이 국방의 주축이 되자 용병단은 역사에서 한동안 잊혀졌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기업화된 용병단은 PMC라는 형태로 재등장해 전장에 투입되고 있다.
왜 PMC가 문제가 되는가
PMC란 ‘국가(정부)와의 계약에 의해 군사 임무를 대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PMC는 현대판 용병(Mercenary)이라고도 불리나 엄밀한 의미에서 용병과는 다르다. 해당 연구의 선구자이자 미래전 연구자인 피터 싱어는 PMC에 대해 파편적 개인으로 활동하면서 불법 행위를 자행하는 용병과 달리 합법적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합법적 사업에 전투 임무가 포함되는지는 논란이 있다. 국제법상 교전은 군복을 입은 정규군만이 할 수 있다. 의용군 등 교전 주체에 관한 예외는 있지만 금전적 대가를 받는 전투 임무 수행은 용병 행위로 전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PMC는 사실상 용병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러시아의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정규군의 전투 임무를 대행했다.
PMC의 부흥: 1990년대~이라크전
PMC는 199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EO(Executive Outcomes)로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PMC가 앙골라 및 시에라리온 정부에 고용돼 반란군을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 PMC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을 계기로 폭발적인 활용과 시장 성장을 경험했다. 이 시기 PMC의 부흥은 냉전 종식이 가져온 역설적 상황에 기인한다.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는 대규모 병력 감축을 단행했다. 미국만 해도 1990~1993년의 기간 동안 65만 명의 병력을 감축했다. 피터 싱어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약 400만 명의 퇴역 군인이 ‘잉여 군사노동인력’으로 PMC의 중요한 인력 공급원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정규군의 축소 경향과 대비되게 군사 임무 수는 늘어났다. 냉전 종식 이후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동구권과 아프리카 국가에서 내전 및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을 위시한 주요 국가의 인도주의적 지원 및 평화유지활동 등으로 해외 군사원정 임무 수가 급증했다. 1990~1993년 사이 미군의 해외 군사원정 임무는 냉전 대비 280% 증가했다고 한다. 병력 공급과 수요 간의 괴리는 잉여 군사노동인력이 창설한 PMC의 활용으로 해결됐다. 다시 말하면 군을 떠난 퇴역 군인들이 PMC의 직원으로 국가에 재활용된 것이다. 미국은 병참, 공병, 수송, 훈련, 교육, 군사고문단 파견 등 다양한 임무를 PMC에 위임했는데 이라크·아프간전 시기에는 정규군(16만 명)보다 많은 18만 명의 PMC 직원을 전장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라크전 이후 최근 동향
이라크전은 그 어느 때보다 PMC와 민간군사산업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PMC의 활용은 이라크 전쟁비용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됐고, 2008년 미국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는 무분별한 PMC 활용을 줄이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PMC 활용의 재검토 및 이라크·아프간에서의 철수가 이어지면서 PMC 수요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수요 감소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라크전에서 미국 정부에 고용된 서방의 PMC에도 타격을 줬다.
이후 민간군사산업은 구조조정을 겪었다. PMC 일부는 기존 군수업체에 합병되기도 했다. 기존에 국가를 상대로 사업을 진행했던 일부 기업은 수익 창출을 위해 민간기업에 고용됐다. 일례로 루코일 같은 러시아 석유회사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자신의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오룔이라는 PMC 무장요원을 상선에 탑승시키기도 했다.
또한 PMC의 인력 공급원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에는 대규모 병력 감축으로 인해 등장한 비자발적 퇴역 군인들이 PMC의 주요 인력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발적 퇴역 군인들이 PMC의 주요 인력 공급원이 되고 있다. 정규군에 복무하면서 군사기술을 습득한 뒤 급여가 많은 PMC에 취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정규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숙련된 군인의 조기 퇴역이 급증하면서 군 내부적으로 숙련된 병사가 부족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국방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저출산 및 인구 감소로 미래 병역자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병역자원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PMC를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PMC는 병역자원 부족에 대한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PMC 활용을 위해선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PMC의 인력 공급원과 관련해 잉여 군사노동인력을 생각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병역자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다른 대안과의 비교 및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하다. PMC 활용 외에도 병역 문호 개방, 예비군 활용 확대, 전장 무인화 등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PMC의 활용 수준 및 활용 분야를 설정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PMC 활용이 자칫 정규군의 약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특히 높은 보수를 받고자 숙련된 부사관이 PMC로 이직하는 것을 막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PMC 활용만큼이나 중요한 게 계약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과 감시다. 미국이 PMC를 활용하면서 겪게 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계약의 불성실한 이행 및 과도한 비용 청구로 인한 국방예산 낭비였다. 우리 군이 PMC 활용을 고려할 경우 계약의 성실한 이행을 보장할 제도적 방안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