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말-중세 초 특징 모두 반영된 가장 오래된 성인 이미지
성 암브로시오성당에 있는 5세기 제작 모자이크 작품
얼굴·발 아래 그림자는 사실주의 … ‘고대 로마 회화 양식’
단순화된 옷주름·인체 평면화 … ‘중세 로마 회화 특징’
▲ 작품 해설 : 〈성 암브로시오〉, 5세기, 모자이크, 성 암브로시오성당 내부의 성 빅토레 인 치엘 도로 경당, 밀라노.
밀라노에서 브레라 다음으로 규모가 큰 미술관의 이름은 암브로시안미술관이다. 또한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중요한 성당으로는 단연 암브로시오성당이 꼽힌다. 두 곳 다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339~397)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밀라노는 수도 로마보다 인구가 많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지만 시내 곳곳에서 이처럼 암브로시오 성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밀라노의 첫 주교이자 수호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밀라노 칙령(313년)을 꼽을 수 있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것이 바로 밀라노 칙령이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수천명의 신들이 있었고, 율리우스 시저 이후 많은 황제들이 신격화될 정도로 로마제국은 다신교 국가이자 신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유독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숨어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이유는 그리스도 교인들이 유일신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신격화된 황제를 비롯하여 로마제국에서 인정한 다른 우상 신들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그리스도 교인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게다가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믿어도 좋은 종교가 아니라 믿지 않으면 안되는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교회 건축물이 정식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전례 의식도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바로 암브로시오 성인이 밀라노에서 주교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밀라노는 로마제국의 두 번째 수도이기도 했으니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성 암브로시오는 성 아고스티노, 성 예로니모,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과 함께 4대 교부학자 중의 한 분이다. 성인이 쓴 많은 저서와 설교집은 그리스도교의 교리 정립에 뿌리가 되었으며, 당시에는 교리가 아직 성립 단계였기 때문에 성인은 이단교리로부터 정통교리를 지켜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라노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당은 단연 성 암브로시오성당이다. 이 성당은 초기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었던 성 비토레 순교자 무덤 위에 암브로시오 성인이 379년부터 386년에 걸쳐 건립한 곳이다. 바로 이 성당 안에 가장 오래된 성인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5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로 인물의 머리 위쪽에 ‘AMBROSIUS’라는 성인의 이름을 써 놓았다. 성인이 선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작한 작품이기에 그의 실제 이미지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기울여진 듯 얼굴 표현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짧은 머리에 짧은 수염을 하고 있으며 주교 복장을 하고 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이미지는 암브로시오 성인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그림으로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된 시기에 제작된 귀한 작품으로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된 성인의 얼굴과 발 아래의 그림자 표현은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었던 고대 로마 회화 양식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단순화된 옷주름과 인체를 평면화한 모습은 중세 회화 양식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