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방직 외관>
강화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그대로 직진을 하면 오래지 않아 읍내가 나온다.
작은 마을인 듯 도로는 좁고 높이는 낮은데, 세련된 카페와 음식점이 적지 않게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세련됨 사이의 시간과 전통을 풍부하게 간직한 곳이 바로 강화읍내임을 잠시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읍내 중간에서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고려궁지부터 성공회 한옥성당 등 고려와 조선 그리고 개항기의 풍경이 촘촘하게 그곳에 몰려 있다.
맞은편은 근대 이후 산업의 공간이다. 방직공장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전국으로 풀려나갔던 곳으로, 강화도 최초의 근대식 공장이었던 조양방직과 소창기념관과 소창거리 등 작고, 독특한 건물과 공장 등이 이어지는 곳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강화도 갑부였던 홍재용, 재묵 형제가 세운 조양방직은 1958년까지 강화의 직물산업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공장이었다.
다리도 없던 외딴 섬에 공장이 문을 열면서 강화도에 전기와 전화 시설이 들어왔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된다. 다만 조양방직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설립 10여 년 만에 경영권이 넘어갔고, 그마저도 1958년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로 단무지 공장과 젓갈 공장 등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1980년 이후에는 사용하는 이가 없어 거의 폐허가 되었던 곳이다.
그렇게 터와 골격만 남아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하던 조양방직의 인생유전은 2018년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로 재탄생하면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조양방직 카페 내부에서 본 외부 공터>
읍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끝이 가까워질 즈음 왼쪽으로 작은 도로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바로 골목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그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옛 공장의 철문과 담벼락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낡은 버스의 지붕과 여기가 공장이었음을 보여주는 녹슨 기자재 등이 얼핏 나타났다 사라진다.
공장의 뒤편은 주차장이고, 담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에 '신문리 미술관, 조양방직'이라고 쓰인 철제 간판과 대문이 있다.
입구에 서서 보니 오른편으로 작은 건물이, 왼편으로 커다란 공장의 본관인 듯한 건물이 보이고 그 사이로 좁지도 넓지도 않은, 다양한 소품으로 채워진 광장이 보인다.
길을 안내하는 듯한 여러 안내판을 보면서 먼저 옆 건물에 들어서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US ARMY'라고 쓰인 번호판을 단 낡은 버스, 부서져 가는 타자기와 아코디언, 오래된 목마와 낡은 재봉틀, 빛바랜 영화 포스터와 흑백사진 등 다양한 소품들이 옛 건물의 낡은 벽과 창문과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건물은 공터로 다시 통 빈 작업장과 같은 건물로 이어진다.
그 건물을 나서면 다시 처음 입구에서 봤던 광장과 본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페가 나오고, 주문을 하고 바로 이어진 예전의 공장 건물로 드디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감동한다. 그 광활함이라니.
<조양방직 작은 전시장>
방직기가 가득했을 공장은 텅 비었고, 나무기둥과 지붕만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예전에 썼을 법한 재봉틀은 그대로 탁자가 되었고, 어디선가 수집되어 온 나무와 여공들의 작업대는 길고 긴 탁자가 되어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면장갑을 비롯한 각종 소품과 그림은 화려한 조명 아래 새로운 모습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이어지는 통로에는 당시를 보여주는 흑백사진이 이 공간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듯 전시되어 있다.
실용적이고 단순한 건축은 시간의 보살핌에 따라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되었고, 다양한 노동을 위한 시설은 소통과 문화를 위한 소품이 되었다.
그 사이로 기발한 예술품과 장식이 이어지니 그 모습을 보고, 상상하고, 나누다보면 공장을 거니는 것 자체가 역사와 창작의 산책로가 되는 듯하다
<조양방직 작은전시장 옛기계실.>
길은 다시 밖으로 이어진다. 다리미의 손잡이를 활용한 작은 문을 나서니 또 다른 건물이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에는 추억의 소품들이 가득한데, 구석의 방에는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신발과 함께 거대한 남근상이 옛 보일러실의 둔탁한 기계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온 아이가 오래된 장난감과 구슬이 쌓인 통 앞에서 문득 물어본다.
“아빠, 언제 가?” 아빠의 세대에게는 이 모든 게 기억을 재생시키는 소품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예술품의 전시장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든 든다.
아이들과 이 추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요즘 유행하는 <오징어게임>처럼 당시의 놀이와 시간을 체험해보는 게 하나의 방법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다시 공터로 나온다.
<조양방직 카페내부>
이제 조양방직은 주말이면 3천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강화도의 명소가 됐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잊힌 강화의 직물 산업 역사를 재조명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면서 그와 비슷한 산업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조양방직 옆 골목 역시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예전 60여 곳에 달했던 강화의 직물산업과 공장이 빼곡했을 골목은 이제 한가로워졌다.
1970년 중·후반부터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대구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강화의 직물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규모 공장 10여 곳만이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는데, 강화는 당시의 흔적을 모아 소창거리라는 이름으로 꾸며놓았다.
소창이란 줄무늬 또는 바둑무늬를 나타내거나 흰색으로 된 거친 면직물로 예전에는 기저귀, 침구 등으로 정말 많이 쓰였던 것이다.
소창거리는 당시의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를 키웠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추억할 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조양방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시의 기계와 풍경을 모아 소창박물관으로 꾸며 놓았으니, 함께 둘러봄이 아이들과 추억을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하다.
출처 : 문롸유산채널
첫댓글 숨은 역사 에 대한 기행문 이군요
방직공장이 그 옛날 그 섬에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소창- 아가들과 큰애기들과 아낙들이 없어서는 안되었던 필수품
글 감사합니다
하늘호수님
강화도 방직공장까페
다녀왔군요
나도 지난가을에
후배들과 다녀 왔죠
강화도 관광상품
이곳저곳 감회가
새로워요 아우님
수고했어요
강화도에
소창거리
첨 들어보네
와^~ 여긴 역사관 이네요...
나도 가봐야겠어요...
말리지 마이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