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해전 판도 뒤집는 해상 자폭 드론
“드론으로 미래, 아니 현대 해전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답변은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이다. 해상 자폭 드론은 작은 선체에 강력한 엔진을 결합해 속도가 빠르고 크기가 작아 식별·탐지가 어려우며 강력한 탄두를 장착해 일격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사전에 입력된 항로를 따라 순찰을 돌거나 작전지역까지 자율적으로 이동한 뒤 표적이 발견되면 카메라 등으로 사람이 정밀 조종하는 방식으로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워터제트 방식의 엔진과 스마트기기, 가전제품 등으로 자체 생산한 해상 자폭 드론을 활용해 주요 군사목표에 대한 기습 공격을 이미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 CNN을 통해 비밀리에 개발 중인 5m 크기의 무인수상정(Unmanned Surface Vehicle·USV)을 공개했다. 해상 자폭 드론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해군과 우크라이나 국방정보부(GUR)의 파괴 공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침묵하자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해상 자폭 드론의 존재를 공개하며 심리전을 펼친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가 지난달 24일 독립기념일 행사 도중 우수부대 표창을 통해 우크라이나 해군 385독립여단의 존재와 활약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385독립여단은 해상 자폭 드론을 포함한 다양한 특수목적 해군 무인 무기체계(Special-Purpose Naval Unmanned Systems)를 운용하는 세계 최초의 해상드론 전투부대다.
물론 우크라이나군의 놀라운 전과는 흑해라는 전장환경과 압도적 열세인 우크라이나 해군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보편적 사례로 보기 힘들다는 비판도 일부 있다. 하지만 2인승 카누 크기의 해상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군과의 압도적인 군사력 격차를 극복하고, 오히려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은 우크라이나군의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의 싸움에 비교해도 큰 문제가 없다.
다윗의 조약돌
지난 7월부터 해상 자폭 드론을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더욱 빈번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미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정에서 우크라이나 해군은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해군 기지 6곳과 주요 함대를 잃었기 때문이다. 3000톤급 호위함 1척과 고속정 20여 척만 남은 우크라이나 해군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직전까지도 강한 해군력을 복원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전통적인 해군력 건설 방법, 즉 전투함 건조를 최소화하는 대신 무인수상정 개발에 전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해상 자폭 드론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러시아 해군의 활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8대 이상의 해상 자폭 드론이 세바스토폴 항구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해군 함대를 공격해 최소 한 척 이상의 군함이 피해를 봤다. 약 2주 후 노보로시스크 항구의 러시아 석유 터미널에서는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군사전문가들과 서방세계 언론은 여러 정황증거를 바탕으로 해상 자폭 드론을 동원한 우크라이나 정보부의 특수작전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 4월 4일부터 7월 25일까지 러시아 해군의 정보수집함, 초계함, 유조선 등이 최소 4회 이상, 흑해 곳곳에서 우크라이나군 해상 자폭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4일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자폭 드론은 노보로시스크 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해군의 대형 상륙함 올레네고르스키 고르냐크(Olengorsky Gornyak) 함에 치명타를 가하는 데 성공했다.
발 빠른 세대교체의 비밀
우크라이나군 해상 자폭 드론 운용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빠른 세대교체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단계적 진화가 아닌 동시다발적 개발의 결과로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자폭 드론의 빠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해상 자폭 드론 초기형과 같은 해 9월부터 실전 배치가 시작된 1세대 해상 자폭 드론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제트스키와 카누를 결합한 기본 형태는 비슷하지만, 1세대 해상 자폭 드론은 각종 광학장비와 통신장비, 탄두 등이 새로 설치되거나 강화되는 등 보다 실전적으로 개량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편 지난 3월 존재가 확인된 2세대 해상 자폭 드론은 크기와 외형 자체가 1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는 매끈한 선체와 우수한 성능의 광학장비가 장착된 3세대 해상 자폭 드론이 실전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식적으로 존재가 확인된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자폭 드론은 국영 기업 스펫테크노익스포트(Spets Techno Export)가 홍보하고 있는 마구라(Magura)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에서 공개한 시베이비(Sea Baby)가 있다. 최고 속도 42노트에 항속거리 833㎞, 320㎏의 탄두 혹은 각종 감시장비 탑재가 가능한 마구라는 해상자율경비무인로봇장치(Maritime Autonomous Guard Unmanned Robotic Apparatus)의 약자다.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해상 자폭 드론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특별한 구분 없이 해상 (자폭) 드론으로 명칭을 통일하고 있다.
2022년 여름 그 존재가 확인된 해상 자폭 드론 초기형과 제1세대 개량형 그리고 2023년 3월 확인된 제2세대 해상 자폭 드론의 비교 그림. 지속적인 개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Hi Ssutton 홈페이지
재평가되는 해상 자폭 드론
자폭 공격이라는 개념 자체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화약 무기가 등장하기 전에도 인화성 물질을 가득 채운 선박에 불을 붙여 적을 공격하는 방법이 널리 활용됐고 그 기원은 기원전 그리스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무인 무기체계가 널리 활용되고 우크라이나에 의해 해상 자폭 드론이 큰 활약을 펼치기 전까지 자폭 공격은 성공률이 높지 않았다.
거친 바다에서 크기가 작고 속도도 느린 소형 단정으로 적함을 공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드론을 활용한 무인 자폭 공격이 가능한 시대가 활짝 열렸고 가장 적극적으로 해상 자폭 드론을 활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해군력의 균형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명 손실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우리 돈 3억 원 안팎에 불과한 대당 획득 비용으로 최소한 적의 해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은 해상 자폭 드론의 가치를 배가하고 있다. 문제는 적도 우리와 같은 혹은 우리보다 더 우수한 성능의 해상 자폭 드론을 실전 배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