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트라우마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사람이 성인이 되어 만났지만, 우발적 사건으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27년 째 홀로 농사를 지어 온 노인 구순태와 함께하는 농경의 시간. 이 시간은 인간의 땀과 노동 그리고 땅의 순리와 자연의 섭리가 합해진 축적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회복 불가능해 보였던 삶이 비로소 감각을 되찾고 다시 추슬러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구원의 약속 아래 폭력과 맹종과 맹신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평범해서 살 만한 그래서 삶의 의미가 세계로의 이행은 벼락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의 비의를 통찰한 작가는 그들의 ’농경사회‘를 낭만적 이상 공간으로 도식화하지 않는다. 상처를 안은 인물들은 날 것의 거친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마주하기도 한다. 씨를 뿌리고 돌보고 기다리고 거두고 다시 뿌릴 준비를 하는 인간의 고단한 노동과 인내가 자연의 이치와 결합하는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에 ’닭이 알을 품는‘ 12월 소한에서 부터 ’범이 교미를 시작‘하는 이듬해 11월 대설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되찾아 가는 회복의 서사를 겹쳐 놓는다.
펴낸곳: 민음사. 2026. 4. 27 발행. 양천도서관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