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D 돈틀리스(Dauntless) 폭격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더글라스(Douglas)에서 개발하여 미국 해군 항공대에서 운용하였던 급강하폭격기. 항공모함 함재기로도 운용되었고, 해병대가 지상기지에서 운용하기도 하였다. 별명인 Dauntless의 뜻은 기종의 생애에 걸맞는 "불굴". 발음하는 사람에 따라 돈트리스, 돈틀레스 등으로 읽기도 한다. 형식명에서 따서 파일럿들이 붙여준 별명은 "Slow, But Deadly"라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더글라스에서 개발했던 기체는 아니다. 원래 1930년대 중반에 미 해군이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급강하폭격기를 발주하였을 때 노스롭에서 BT 급강하폭격기를 제작하여 XBT-1을 납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노스롭의 BT는 정식으로 채택되지 못하였고 이후 노스롭은 더글라스의 자회사로 흡수되었다.
이에 더글라스에서는 기존 노스롭에서 개발한 XBT-1에 자신들이 지닌 노하우 등을 접목시킨 새로운 급강하폭격기를 개발하였다. 초창기에는 XBT-1에서 발전시킨 형이기 때문에 XBT-2란 코드를 사용했지만, 이후 SBD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미 기본적인 틀이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개발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미 해군에서도 몇 차례 시험비행을 해본 결과 아주 우수한 항공기란 평을 내리고 주력 급강하 폭격기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돈틀리스(Dauntless)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육군에서도 약간의 개량을 거쳐 A-24 밴쉬라는 이름으로 채용했다.
속도는 좀 느리지만, 급강하시 안정성이 높고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한 폭격이 가능하여 파괴력을 인정받았다. 날개에 난 저 '치즈 플랩'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구조 덕분이었다. 저 플랩의 성능은 굉장히 우수해서 이후 커티스의 헬다이버도 동일한 방식의 에어브레이크를 채용한다.
후방석에 기관총좌를 장착하여 방어를 하도록 함으로써 생존성까지 높일 수 있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이 후방기총에 격추당한 일본기들이 최소 1~2기 이상은 있다고 한다.
태생이 급강하폭격기라 기본적으로 12G에 달하는 중력압박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설계와 의외로 뛰어난 조종성능을 갖고 있어서 종종 일본군의 항공기들과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식으로 돈틀리스가 전투를 했던 가장 유명한 해전 두가지로는 산호해 해전 당시 부족한 전투기 숫자를 메우기 위해 뇌격기 요격에 동원된 것과 로호 작전(라바울 항공전) 때 다른 미군 항공기들과 같이 신나게 일본기 사냥에 끼어든 것이 있다.
이처럼 튼튼한 기체와 '폭격기'라고 우습게 여기기에는 범상치 않은 기동성 등의 요인으로, 돈틀리스는 태평양 전쟁동안 활동한 미 해군의 전투용 항공기 중 가장 적은 손실비율을 기록한 기종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공격기나 폭격기의 손실율이 전투기 등에 비해 높으며, 특히 태평양 전쟁의 전반기에서 중반기 동안 미 해군이 겪은 어뢰 스캔들 덕분에 돈틀리스의 급강하 폭격이 미 해군 항모기동부대의 주된 타격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생각해 본다면 꽤 놀라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진주만 공습 이후 육군의 A-24 밴쉬가 먼저 일본군과 상대를 하였을 때 "속도가 너무 느리고, 항속거리가 짧고, 무장이 빈약하다"는 디스질이 계속돼서 해군에서도 이게 구식이라서 답이 안나오는 거 아닌가는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해군에서는 속도가 느린 점이 흠으로 지적되긴 하였지만 전반적인 성능에 대한 불평은 크지 않았고, 미 해군에서는 태평양 전쟁 내내 사용되었다.
해군의 돈틀리스
돈틀리스의 우수한 성능과 조종성은 미군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는데, 같은 시기 돈틀리스와 같이 적함을 격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TBD 데버스테이터는 구닥다리 성능과 쓸모없는 어뢰의 조합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에서 올린 전과가 다른 함재기들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그렇지만 돈틀리스가 그 빈곳을 메꿀 수 있었기에 미 해군이 첫 2년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돈틀리스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일본의 항모들은 미드웨이 기지에 공격을 마치고 돌아와 항모 갑판에 온갖 폭탄이나 함재기가 가득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돈틀리스 폭격기들이 도착한 것이다. 결국 돈틀리스들의 폭격에 의해 일본은 정예 항공모함 3척을 날려버리면서 아예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뒤엎는 요소로 작용하였고 최후의 한척 히류마저 돈틀리스들의 손에 가라앉아버려 일본은 정규 항공모함 6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즈이카쿠, 쇼카쿠) 중 네척을 잃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이후,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에게 넘어온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캑터스 항공대 소속 돈틀리스들이 항공모함 함재기와 합작으로 일본군의 상륙과 보급을 저지하는 등 맹활약을 했고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비록 적함을 격침시키지는 못했지만 두척의 항공모함을 저승 문턱까지 밀어내면서 일본이 제해권을 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 비슷한 시기에 배치되었던 F4F 와일드캣, TBD 데버스테이터가 후계기로 교체되었음에도 계속 일선에 남아서 화끈한 손맛을 느끼고 다녔다.
트럭 섬 공습 당시 기수의 50구경 기관총을 활용해 초계정 두척을 잡아낸 엽기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1943년 말부터 커티스에서 개발한 신예 급강하폭격기 SB2C 헬다이버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필리핀 해 해전은 SBD가 해군항공대의 함재기로서 참전한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하지만 헬다이버의 경우 2류 개새끼(Son-of-a-Bitch 2nd Class)라고 불릴 정도로 조종성이 거지같은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뛰어났고 항속거리가 길었던 돈틀리스도 완전히 퇴역하지는 않고 해병항공대를 중심으로 실전부대에 남아 계속 운용이 되었다. 결국 돈틀리스는 종전까지 미군과 함께했다.
특히 항속거리가 길다는 장점은 1944년 6월 20일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드러나는데, 귀환이 가능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일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 SB2C 51기 중 43기가 손실되었고 그 중 70% 이상이 연료 부족으로 인한 불시착으로 인한 손실이었는 데 비해 SBD는 27기 중 격추된 기체를 포함해 3기만이 손실되었다. 이 필리핀 해 해전에서 미 해군 항공대는 야간착함을 실시하게 되는데 야간이다보니 자기 모함을 찾지 못하고 뒤죽박죽 섞여서 착함하게 되었다. 그런 돈틀리스 중 일부가 돈틀리스 없이 헬다이버만 탑재했던 항모에 착함했는데 정비원들이 날개 왜 안접냐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헬다이버는 날개가 접히지만 돈틀리스는 접히지 않는다. 조종사는 그런 사실을 설명했지만 정비사는 막무가내로 접으라고 우겼다고. 헬다이버가 도입된 이후에는 돈틀리스를 보지 못하고 헬다이버만 만져본 정비원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만큼 미국이 우월한 공업력으로 빠른 시일 내에 함재기 교체를 이룰 수 있었음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미 육군 항공대에서도 해군에서 개발한 돈틀리스를 운용하였다. 당시 유럽 전선에서는 독일 국방군의 Ju87 슈투카가 맹활약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에 "저거 좀 짱인듯"이란 생각에 별도로 급강하폭격기를 개발하려 하였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자 어쩔 수 없이 SBD-3를 개랑하여 A-24 밴쉬란 이름으로 채택하였다.
전쟁기간중 A-24의 활약은 전선에 따라 엇갈린다.
유럽전선에서는 전략폭격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별로 활용가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렇다할 전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미군의 지상공격지원 임무에는 급강하폭격기보다는 쌍발 중형폭격기나 전투기가 주로 동원되었다. 기본적으로 독일군의 대공방어(대공포+전투기)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반면 태평양 전선에서는 유용한 대지 공격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태평양 전선의 특성상 섬과 섬 사이를 건너뛰면서 점령한 섬을 거점으로 상대방의 섬을 공략하거나 울창한 밀림에서 근접전을 벌이는 방식의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이 경우 유럽전선보다 훨씬 좁은 공간에서 양측이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일본군의 방어선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임무의 수요가 많았던 반면 일본군의 대공방어는 상대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이다.
대공의 사무라이를 잡다
대강 보고 넘어가면 F4F 와일드캣과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일본의 당시 전쟁 기록을 자서전으로 출판해 큰 돈과 인기를 모은 사카이 사부로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 기종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카이 사부로는 후방기총이 없는 와일드캣의 뒤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이 돈틀리스였다. 근데 돈틀리스는 후방기총이 있다. 사카이는 아차 싶었으나 곧 돈틀리스들의 뒤에 달린 후방기총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때문에 한 쪽 눈까지 잃었다. 그런데 결국 사카이 사부로는 그런 지옥도에서 살아서 귀환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굳이 사카이 사부로가 아니어도 실제로 가까이서 보기 전엔 둘의 구분이 힘들어 후방기총에 격추당한 사례가 많았다. 그 반대로 폭장한 와일드캣을 돈틀리스로 본 사례도 있다고.
전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 해군 소속의 그 어떠한 병기보다 많은 선박을 격침시켰다고 한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 손실된 돈틀리스가 약 120기였는데 돈틀리스가 격추시킨 적기는 100여기로 폭격기로썬 놀라운 교환비를 이뤄냈다. 튼튼한 기체 강도와 폭격기 편대의 비행 대형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 바짝 붙어서 비행함으로써 화망구성을 더 용이하게 하면서도 저공비행으로 적이 공격할 틈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돈틀리스는 미 해군에게는 태평양 전쟁에서 고난과 영광의 시기를 함께 지내며 다대한 전과를 올린 급강하폭격기로써 역사에 자기 이름 한 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