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지---이진표 본명은 ---이운필 李雲弼(?~?)
본관 경주 자는 진표, 익재공 후 판윤공 지대의 후손으로 25세 世榮의 4남인 勉이 청송 입향조이며, 청송 부남면 오산으로 이거하였다.
운필은 세수가 90세를 넘겨 수직으로 가선대부의 품계를 받았고, 그 공으로 부친이 증직으로 통정의 품계를 받았고, 자는 이견이며, 휘는 용채이다. 후손이 경북 성주에 우거 하고 있다고 한다.
청송 주산지에는 그를 기리는 송덕비가 있으며 그에 대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주산지는 천석군 부자 이운필 선생이 주도하여 재산을 내어 일군을 모아 주산골 입구를 막아 저수지를 완공하였고, 주산천변을 정비하였다. 그리하여 송덕비를 세운 것이다. 「청송문화」 제 9호에서 발췌하였다. 78p~88p
“주산지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는 1771년(영조 47년)에 주산지 입구에 건립된 조선시대 송덕비(頌德碑)이다. 주산지 송덕비라고도 한다.
주산지는 1720년(조선 경종 원년) 8월에 착공되어 이듬해인 1721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주위의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주산 저수지에 고이면서 아랫마을인 주산지里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1720~1721년 주산지 축조에 공이 컸던 이진표(李震杓)와 임지훤(林枝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이진표의 후손 월성이씨, 임지훤의 후손 및 조세만(趙世萬)이 1771년에 건립하였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전면:
乾隆 「청송문화」 제9」에서 발췌하였다. 78p~88p
三十六年 辛卯 十月 日 立
李公堤堰成功頌德碑(이공제언성공송덕비)
一障貯水 하나의 경계를 만들어 물은 가두니
不忘千秋 영원히 잊지 못함이로다
流惠萬人 만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니
唯一片碣 돌을 세워 기리노라
뒷면:
處士月城 李震杓 子 錫玹 錫瓘 孫 聖培 瓘培 義培
처사월성 이진표 자 석현 석관 손 성배 관배 의배
首折衝將軍 林枝萱
수절충장군 임지훤
倡 典涓寺 궁중의 수리와 청소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394년(태조3)에 두었던 경복궁 제거사(慶福宮提擧司)를 1466년(세조12)에 고쳐서 전연사로 하였다가 뒤에 선공감(繕工監)에 통합하였다.
參奉 林枝英
창 전연시 참봉 임지영
內資寺直長 林次明 林萬輝
내자시직장 임차명 임만휘
通政大夫 趙世萬 外
통정대부 조세만 외
康熙 五十九年 庚子 八月 日 始役 辛丑 十月日 畢役作者 六十六名
강희 오십구년 경자 팔월 일 시역 신축 시월일 필역작자 육십육명
우측면
立石監考 林時化 임석감고 임시화
좌측면
此堤堰 林枝萱所刱李震杓之所築也
而年久堆圮幾至廢池粤
甲辰秋金喜萬爲其全洞之生利不憚勞苦竭力
改築讓與洞 中故 永表石左
癸亥仲春
金澔奎 識 監事 林應煥 尹啓崙
풀이:
이 못 둑은 임지훤이 시작하고 이진표가 축조한 것인데 세월이 오래되고 퇴비되어, 몇 번이나 저수지가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갑진년(1904년) 가을, 김희만이 동네사람들 생활 편의를 온전히 하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고, 힘을 다하여 개축 한 뒤 동네에 양여하였다.
비석 좌측에 영구히 기록한다.
계해년 중춘(1923년) 봄
‘김호규’ 찬하고 감사 임응환 윤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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