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3·1운동 100주년기념행사 개최의 해
-교계차원의 준비위 및 사업 확정 있어야-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 전도사 재조명기대-
2월 27일(수) 오후 7시, 여수백병원 10층 세미나실에서 3·1혁명과 임시정부수립-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여수지역 항일운동독립운동가-박종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연구이사가 기념강연을 펼쳤다. 3월 1일(금) 오전 11시, 30분에 화양면 창무리 윤형숙 전도사 묘소에서 기념식, 독립선언문 낭독, 윤형숙 윤자환 열사 소개 등 3·1혁명 100주년 여수지역 독립운동 기념식과 이순신공원 내 항일독립운동기념탑과 여수청년회관, 등대산(오동도 입구), 김홍식 아뜰리에(만성리) 등 여수지역 3·1혁명 역사답사를 갖는다.
3월 1일(금) 오후 2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여기총 참여단체와 시민단체와 여수시주관으로 기념행사 및 3·1절 100주년 기념 퍼포먼스를 가지며, 3월 3일(주일) 오후 2시, 3·1만세운동에 참가한 역사가 있는 서촌교회(장혁종 목사)에서 통합여수노회(노회장 김인호 목사, 광성교회) 역사위원회 주관으로 삼일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3·1운동 100주년의 해를 맞아 여수교계 안에도 기념행사에 관련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수도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범 교단차원의 준비위를 꾸리고 사업을 확정짓는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기념행사를 개최할 것으로 본다.
특히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이들이 소속한 교회나 지역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남도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윤형숙 전도사의 경우 안정교회와 여수제일교회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 전도사는 3·1운동 때 왼팔이 잘리고 눈까지 잃으면서 만세운동을 부르다가 1950년 9월 28일에 인민군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고향 창무리 마을 뒷산에 가매장되었다가 10년 후인 1960년 3월 23일에 창무리 마을 입구로 이장했다고 한다. 이후 독립유공자발굴전문위원이었던 윤치홍 씨(윤형숙 전도사의 조카)의 노력으로 2013년 9월 28일에 무덤 앞에 독립유공자 윤형숙 전도사라는 묘비 석과 안내판을 세우는 등 정비를 했다고 한다.
윤형숙 전도사는 어렸을 때는 안정리 마을에서 살았으며, 안정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수피아여고시절에는 윤혈녀라고 불렸다고 한다. 1900년 9월 13일 화양면 창무리 윤치운 한학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순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집에 맡겨 초등학교를 다니게 한다. 순천 성서학원을 이수한 뒤, 18세 때인 1918년, 광주 수피아 여학교(현, 수피아여고)에 진학하게 되고 반장이 되어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던 수피아와 숭실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반일회> 일원으로 항일운동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앞장서게 된다.
영리하고 야무진 윤 전도사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박애순 선생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박애순 선생은 1919년 1월 20일 오전 6시, 학생들에게 고종황제가 승하를 알리고 3·1만세운동 전후의 국내사정과 파리 만국강화회의의 사정 <매일신보>에 실린 독립운동에 관해 알리면서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해야하는 당위성을 이해시켜 나갔다고 한다. 박애순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윤형숙 전도사와 수피아여학교, 숭실학교생, 기독교인, 농민, 시민 등 1천여 명이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 광주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일제는 기마헌병을 투입, 시위자에게 위해를 가하며 체포에 열을 올렸다.
이 자리에서 윤형숙 전도사는 태극기를 든 왼손이 잘리고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부상을 입고 주동자로 잡혀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수피아 여학교는 그 외에도 교사와 학생 26명이 구속되는 왼쪽 눈마저 실명상태에 이르고 독신으로 원산의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뒤 전주로 내려가 기독교학교의 사감과 고창의 유치원 등지에서 어린이교육에 힘썼다. 윤 전도사에게 비극은 끊이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6.25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50년 9월 28일 밤, 서울이 수복되자 퇴각에 나선 인민군은 윤형숙 전도사를 비롯한 손양원 목사 등 기독교인을 포함한 양민 200여 명을 여수시 둔덕동으로 끌고 가 학살했던 것이다.
윤 전도사 그 때 나이 50, 63년이 지난 후 평가를 받아 200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2017년 9월 24일(주일) 오후 2시 30분, 동광교회에서 예장 통합 여수노회 순교자기념위원회주관으로 순교자 10명의 순교 67주기 합동추모예배에서 손양원(애양원교회) 조상학 목사(덕양교회) 지한영 강도사(율촌장천교회) 윤형숙 전도사(여수제일교회) 허상용(돌산읍교회) 황도백(우학리교회) 곽은진 집사(우학리교회), 안경수 집사, 백인수, 지순절(지한영 강도사 아들) 성도 등 10명이다. 3·1운동 100주년 위원회 출범과 함께 3·1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통합하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기념대회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공동예배, 창작오페라, 설교문, 기도문, 기념심포지엄과 세미나 등으로 채우면 될 것이다. 사진은 지난 7월 17일(화) 오후 7시, 제헌국회(1948년) 70주년을 맞이해 은현교회에서 가진 여수기독교총연합회(이하 여기총, 회장 우종칠 목사)주관, 17개 단체들과 6,13지방선거에서 선출된 권오봉 여수시장과 여수시의회 서완석 의장과 도ㆍ시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구국기도회 후 기념사진이다. 당일 기도회는 1부 석찬, 2부 시장 시의장과 다과, 3부 예배, 4부 특별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