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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2월26일 지붕 및 외벽불사 천일기도를 입재하여
2023년11월22일 천일기도를 원만히 회향 하였습니다
금강경 천일기도의 가피 공덕으로 본래 부처로 돌아가자
오늘은 2021년 2월 26일 하안거해제일에 시작한 금강경 천일기도 회향하는 날입니다. 백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백일을 열 번 해야 되는 천일기도는 우리의 의지, 원력, 신심이 약하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금강경 기도에 동참해주신 공덕으로 지붕과 벽을 새로 단장을 해서 누수로 인해 불편했던 부분이 개선이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불자님이 좀 더 편안하게 신행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거라는 생각에 여러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금강경 천일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가피와 공덕을 안겨준다고 저는 철저하게 믿고 있습니다. 기도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뜻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서 온갖 번뇌 망상들이 줄어들고 없어지면 본래 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번뇌망상이 줄어든 일심에서 온갖 공덕이 나오고 가피도 입고 여러분들이 바라는 소원도 이루어지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우리의 선근공덕을 증장시키는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번뇌망상, 좋지 못한 생각으로 끌려가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기도 공덕으로 인해서 좋은 인연들을 만납니다. 선근의 씨앗이 뿌려지고 좋은 연(緣)들이 도움을 주면 좋은 결과를 안겨주는게 기도의 공덕이 아닌가, 가피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기도는 장기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가시다보면 다생의 업장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봅니다.
기도를 통해 업장도 좀 소멸시키고 기도 공덕으로 본래 부처로 깨어날 수 있는 천일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도를 오랫동안 쭉 하면 반드시 여러분들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질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여러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금강경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시고 바르게 체득하셔서 일체 모든 상을 벗어나 본래 부처로 깨어날 수 있으면 이것만한 공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기도는 하셔야한다고 보거든요.
무엇보다 여러분을 위해서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이렇게 불사라는 이름을 띈 천일기도에 많이 동참하시면 공덕이 여러분들에게 보태어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권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1차 기도에 여러분들이 많이 동참하셔서 불사가 원만히 진행되었고 오늘 회향을 합니다. 그리고 내일 입재하는 2차 기도에도 많이 동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업을 맑히는 기도, 본래 부처로 깨어나는 기도이다보니 금강경 16분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셔서 실제 생활속에서 누구나 겪는 일들을 어떻게 다스려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업을 소멸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업을 맑히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본래 부처로 깨어날 수 있는 에너지와 힘이 나온다고 보입니다.
“또한 수보리여! 이 경을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 선남자 선여인이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면 이 사람이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는 악도에 떨어져야 마땅하겠지만, 금생에 다른 사람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고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내용을 잘 보시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다 많이 겪는 상황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갖 경계를 만납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해 온갖 수모를 안겨준다든지 아니면 천대를 한다든지 무시한다든지 멸시한다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죠. 마음이 아파서 끙끙 앓기도 하고 괴롭잖아요. 이때가 가장 힘들고 괴로운 때인데 경전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전생에 악도에 떨어질 정도의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이 금강경 기도를 오래 오래 하시게 되면 전생에 지은 무거운 죄업들마저 다 소멸된다고 했거든요. 또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건 엄청난 내용입니다.
이제 금강경 천일기도의 가피의 공덕으로 본래 부처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법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금강경 기도를 하시고 금강경 내용을 제대로 잘 이해하시고 금강경의 근본 뜻을 확실하게 깨우치게 되면 무거운 업장도 소멸될 것이고 전부 본래 부처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금강경의 근본 뜻은 일체 상을 다 떠나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상적멸분에서 이일체제상 즉명제불(離一切諸相 卽名諸佛), 모든 상을 떠난 사람을 부처라고 이야기한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시 능정업장분으로 돌아가서 ‘업장을 맑힌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업장을 우리가 어떻게 소멸시킬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업장이라는 것이 본래 실체가 있느냐, 실체가 없습니다.
업성이라는 것은 본래 공한 것이며 자성이 없어 무자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얻을 것도 없고 누구나가 본래 부처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입니다.
우리가 보통 일이 잘 안될 때 업장이 두터워서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죠. 업장이 중하다는 이야기는 뭡니까? 당사자에게 업장이 있다는 말이죠. 업이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거잖아요. 정말 업장이 있다면 맑게 할 수가 있을까요?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금강경에서 이야기합니다.
상(相)이 없는 줄 알아 상을 버리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있고 즉비(卽非) 논리로 이야기 많이 하죠? 업장이 업장이 아니라 이름이 업장이라는 말입니다. 본래 죄업이 없고 이름만 업장이라고 붙였을 뿐이라는겁니다. 그런데 우리 범부 중생들은 이름에 끌려 다니고 상에 끌려 다니다보니까 실체시해서 있는 거라고 하지만 본래 없다는 말입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하셔서 그게 맞구나 하고 믿음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즉비 논리를 잘 이해하시면 본래 부처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모양을, 이름을, 생각을 따라갑니다. 그러다보면 업장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일이 잘 안풀릴 때 ‘업이 지중해서 잘 안돼’라고 하는 게 그런 경우입니다.
말을 따라가다보면 깨끗하게 한다는 것도 있고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있죠. 이렇게 있다 없다 변하는 것은 본래 부처가 아니고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변한다는 것은 분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생각을 따라간다는 것이고 이것은 본래를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래 자리를 떠나 분별의 세계에 들어가면 중생놀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둘로 나누어진 분별심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우리가 늘 너무 너무 즐겨하는 이 중생심을 보시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늘 분별하고 시비하는 거에요. 그래서 대립갈등이 끊이질 않지요. 본래 부처로 돌아가질 못하는 거에요. 하나로 돌아갔을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업장이 있으니 이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해 참회도 하고 수행도 하고 108배도 하면 없어지지 않겠나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치를 바로 아셔야 합니다. 이치를 알아야하고 수행을 해도 하는 바 없이 해야 합니다.
깨달은 사람의 입장과 중생의 차이가 여기에서 확연히 나타나죠? 그래서 내가 쓰고 있는 이 마음이 분별심의 마음인지 분별심을 떠난 마음인지 잘 챙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회와 수행은 인과에 속하는 겁니다. 인과는 본래 자리에서는 펼쳐지지 않습니다. 늘 변함없이 있는 것이 본래 자리입니다. 그 바탕이 온갖 인연들에 의해 일체 삼라만상이 펼쳐집니다. 펼쳐진 세계에 집착하다보니 본질을 못보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놀음을 계속 하고 있고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말이나 뜻을 따라가지 아니하면 같은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범하는 잘못이 말을 따라가고 생각을 따라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들이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해인사라고 했을 때 말을 따라가고 뜻을 따라가면 팔만대장경도 있고 가야산에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게 되잖아요. 통도사에 가면 적멸보궁도 있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그래서 불보종찰이다 이렇게 정의되죠. 해인사라고 하나 통도사라고 하나 같은 이치인 것을 아시겠죠? 이렇게 말 따라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면 항상 본래 부처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자리에 항상 성성하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분별하고 생각하던 버릇 때문에 쏜살같이 따라가서 놓치고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항상 필요합니다. 평소에도 계속 연습하셔야 합니다. 선방에서만 하지 마시고 앉으나 서나 깊이 새기셔야 됩니다. 놓치지 마세요.
말이나 생각이나 개념을 따라가면 범부중생의 경계가 되고 이전 자리에 늘 깨어있도록 챙기시는게 중요합니다.
본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처님 당시 이야기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깊은 산속에 두 수행자가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출타를 하셨는데 이 스님의 여동생이 수행처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수행자는 평소 오빠 스님의 도반을 흠모하던 여동생과 파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계한 수행자는 출타 후 돌아온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며 근심과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수행자가 여동생을 찾아갔더니 바위에 앉아있던 여동생이 놀래서 뒷걸음질치다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두 수행자는 기사굴산을 내려와서 지계제일인 우바리존자를 만나 상황을 말했습니다. 음행과 살생은 참회도 안되는 4바라이죄에 해당되는 것이라서 보리의 종자를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은 것처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고 하니 낙심해서 돌아가다 유마 거사를 만났습니다.
역시 안부를 묻는 유마거사의 질문에 사정을 말하니,
큰 죄를 지었긴 하였으나 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놔보라 하며 게송을 읊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의 자성 본래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 또한 사라진다.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 죄도 없어지고 마음도 없어져서 모두 공하면
시즉멸시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이름해서 진짜 참회다
인연따라 모든 것이 펼쳐지는 겁니다. 이때 펼쳐진 대상 경계를 쫓아가면 늘 분별세계속에 떨어져서 중생놀음 할 수밖에 없지만 그 대상 경계를 비추어보며 본바탕인 마음자리에 깨어나셔야 합니다. 대상을 향해있던 시각을 안으로 돌려야합니다. 자기 육신으로 돌리는게 아니라 참 자기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도 느낌도 의지도 분별도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은 파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닷물을 봐야 합니다. 파도에 집착해있는 시선을 바닷물로 돌려야 합니다. 참자기, 참나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생각에 자꾸 끌려가서 쉽지는 않습니다.
“수보리여! 나는 연등부처님을 만나기 전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팔백 사천 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음을 기억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법이 쇠퇴할 때 이 경을 잘 받고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에 비하면, 내가 여러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은 백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억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 어떤 셈이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아승기겁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공덕이랑 금강경을 수지독송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진리를 체득해서 남에게 가르쳐주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알고 자기를 다스려서 본래 부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인연을 지어주는 공덕이랑 어느 것이 더 수승하냐는 말입니다. 부처님 법을 전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은 상을 깨뜨릴 수 있게하는 공덕이 있고 본래 부처로 깨어날 수 있는 공덕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금강경은 전체적으로 상을 타파하라고 이야기 하지요? 어떻게 상을 타파할 것인가도 중요하지요? 대상을 향해가는 마음을 본래 자기로 돌리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야기 드리니 귀담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이 앞을 보세요. 부처님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도 보이죠? 그리고 뒤에 탱화도 보이죠? 탱화안에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이 보이죠? 보라고 하니 유심히 쳐다보게 되죠? 볼 때마다 모양은 다르죠? 그럼 다르지 않은 건 뭘까요? ... 본다는 사실이죠? 이것을 보나 저것을 보나 본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바로 여기에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대상에 따라 이름을 붙이며 분별하며 보죠? 그런데 보고 있는 이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죽비를 내리치며) 소리를 들으셨죠? (탁자를 치며) 들리죠? (찻잔 뚜껑을 닫으며) 들리죠? 다 다르죠? 다르지 않은 건 뭔가요? 듣는다는 사실이죠? 바로 여기로 돌리면 깨어나는 겁니다. 치구심을 가지고 바깥을 향해 내달리는 마음을 지금 여기로 돌리면 됩니다.
(죽비를 들어 보이며) 이게 보이죠? 이것과 가장 가까이 있는게 뭔가요? 허공이죠? 허공은 보이지 않죠? 안보이니 우리는 보이는 죽비라고 이름을 붙이고 모양을 따라가서 답을 하게 됩니다. 이게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거에요.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자꾸 들으셔서 내 생각에 그냥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법문을 제일 많이 들었을 때 아라한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유의깊게 음미하며 잘 살펴보시면 와닿는게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우리 시각을 조금 바꾸셔야 법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기존 공부에 묶여 버리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건 그 상에 묶여있다는 것을 아시면 됩니다. 스스로 상을 깨고 나오셔야 여러분들이 금강경 기도를 한 공덕이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게 됩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하지요? 본래 정해진 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텅 비어 있는 그 자리에 깨어나야 하는데 생각으로 굴리면 안됩니다. 보고 있음만이 진실이고 듣고있음만이 진실이고 안다 모른다는 아는 그놈이 진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분별로써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데 본래 이 자리는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죠. 아는 것도 알고 있죠? 기쁜 것도 알고 있죠? 슬픈 것도 알고 있죠? 이 자리에 가면 다 녹아버려요. 그래서 둘이 아닌 하나로 돌아가야 되는 거에요. 둘이 아닌 그 자리란 말이에요.
그런데 인연따라 새롭게 형성되어져 그 모양을 따라가면 둘로 나누어진 분별된 삶을 사는 것이 중생입니다. 앎뿐인 이 자리에 다 녹아집니다. 허공과 같은 이 마음인데 이 마음을 늘 성성하게 쓰고 있잖아요. 볼 뿐이고 들을 뿐이고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보면서 분별하고, 들으면서 좋고 나쁜 소리라고 분별하니 중생놀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저는 보면 볼수록 금강경의 깊은 맛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확신이 섭니다. 여러분들도 금강경 기도를 마음 모아 하셔서 인연과로서 가피 받으세요. 선업이 증장되면 복이 같이 쌓이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이 없으면 안됩니다. 복이 없으면 여러분들이 깨달아도 궁핍하게 살고 힘든 삶이 옵니다. 깨달았으니 어려운 일도 받을만한 힘은 되겠지만 확철대오가 안된 상태라면 다시 중생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애써서 알았더라도 다시 생각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범부중생의 삶을 못벗어납니다.
복은 인과입니다. 내가 마음을 내고 같이 노력하고 애쓰고 실천해야 와닿는 겁니다. 인연이 펼쳐진 이 세계가 우리 본래 마음바탕이라는 말입니다. 일심, 본래면목, 한바탕, 공, 무아라고 표현하지만 본래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하나에 깨어서 분별하되 분별하는 바 없이 하고 복을 짓되 짓는 바 없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이루어질 때 금생에서 본래 부처의 삶을 살아가게 될거라고 확신하시고 실천하시면 됩니다.
금강경 기도 열심히 하시고 뜻도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시고 언제든지 질문도 하셔서 진리를 체득하는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우리가 세상사 살다보면 온갖 분별심도 일어나고 시기질투심도 일어나고 별의별 일이 일어납니다. 거기에 오랫동안 집착해서 끄달려 가지말고 일어났다 하더라도 빨리 떠나보내고 잡아서 오래 머무르게 하는 삶을 살지 맙시다. 버립시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천일기도
금강경 독송 !
여여하게 진행이 되었음에 함께하여 오신 도반님들께 감사합니다.
기도를 통한 진불선원 기와 및 벽면 노후화로 인한 누수를 차단하고 도반들이 더욱 안전하게 정진하는 공간을 만들게 되어 감사합니다.
모두가 수고하신 천일의 회향을 축하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