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1월12일(일요일) 도봉산 [에덴동산 & 신선대 & Y계곡 & 송추폭포] 산행일정
산 : 도봉산 [ 에덴동산 & 신선대 & Y계곡 & 송추폭포 ]
산행코스: [ 도봉산역 1번 출구 ~ 광륜사 ~ 천축사 ~ 뜀바위 앞 전망바위(에덴 동산) ~ 신선대 ~ Y 계곡 ~ 송추폭포 ~ 북한산국립공원송추계곡 버스 정류장 ]
일시 : 2023년 11월 12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도봉구 도봉동 최저기온 영하 2도C, 최고기온 5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6시간40분 소요)
08:30~08:50 서울 도봉구 도봉동 298-4 번지에 있는 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광륜사로 이동
08:50~09:50 천축사로 이동
[천축사(天竺寺)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1동 29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 곳이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
4면이 모두 벽인 방에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최소 3개월부터 3년 내지 6년 동안 면벽참선하는 것을 ‘무문관(無門關) 수행’이라 한다. 무문관(無門關)은 말 그대로 ‘문 없는 선방’을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은 있으나 스님이 수행하는 동안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무문관에서 바깥세상과 통하는 문은 밥그릇을 넣고 빼는 공양구가 유일하다. 스스로 약속한 수행기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모든 일상생활을 선방 안에서 해결한다.
불가의 전통인 무문관 수행은 생사를 넘나드는 혹독함이 특징이다. 독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면벽참선을 계속한다. 묵언은 필수로, 꼭 필요한 의사소통은 하루 한번 공양이 들어올 때 필담으로 한다.
무문관 수행은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과 함께 불가에서 가장 어려운 수행법으로 꼽힌다.
‘무문관’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5년 도봉산 천축사(天竺寺)에 무문관 선원이 개설되면서부터다. 1964년 제선(濟禪, 1912~?) 스님은 그의 도반이자 사제인 정영(瀞暎, 1923~2007) 스님과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서 정진하다가 무문관 설립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은 정영 스님은 ‘바로 이것이다’며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그로부터 주선은 오히려 정영 스님이 천축사 주지가 돼 추진을 하고, 1965년 하안거부터 부처님 설산고행을 따라서 제선 스님 혼자 6년 무문관 결사에 들어가자, 정영 스님도 동참했다. 따라서 제선, 정영, 이 두 분이 우리나라 무문관 수행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불교사 아니 세계 불교사에 일찍이 유래를 찾기 힘든 대역사였다.
1960년대 하루 한 끼 해결하기도 힘든 어려운 사찰 형편이었지만 이후 여러 스님들이 들어와서 불퇴전의 각오로 정진했다. 세간의 이목이 모두 천축사 무문관에 집중됐다. 종단도 어려움이 많고 정화 후 원성의 목소리도 높아갈 때였지만 무문관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환희에 찼다. 그만큼 무문관은 모두의 희망이고 기쁨이었다. 그 중심인물이 제선 스님이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받아 6년 결제 2회 차를 마친 후 79년까지 100여명의 수좌들이 참여했지만 기한을 제대로 채운 스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나 규칙이 엄했기 때문에, 당대의 선지식들만이 이름을 남겼을 정도다.
당시 수행 참가자 가운데 알려진 스님은 관응(직지사 조실), 도천(태고사 주석), 구암(하남 광덕사 주석), 원공(천축사 주석), 범어사 금오선원과 강원에 주석했던 대강백 지효 스님 등이다.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인 관응(觀應, 1910~2004) 스님은 천축사 6년 면벽수행을 마친 후 당대 최고의 강백이자 선승으로서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로 후학들을 제접했다.
역시 조계종 원로의원인 도천(道川, 1910~2011) 스님은 대둔산 태고사에서 40년간 두문불출하며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청규를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남 광덕사의 구암(九巖) 스님은 66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제방 선원에서 참선만 한 절구통 수좌로서, 모든 소임을 마다하고 작은 절에서 수행에만 매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축사 무문관 마지막 수행자인 원공(圓空, 1945~) 스님은 23년간 1년의 절반 이상을 꼬박 만행(기별도 전하지 않은 채)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차를 타지 않고, 갈아입을 옷 두벌만을 지닌 채 끝없는 만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산에 도라지를 심는 사람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했고, 북한동포 돕기 운동도 벌여왔다. 스님은 2002년 2월 28일부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출발해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20곳을 걸어서 순례하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평화도보 대장정’을 회향했다.
무문관을 건립하여 6년 폐관 정진했던 제선 스님은 천축사를 내려간 뒤 부산에 들렀다가 종적을 감춰 지금껏 전설처럼 떠돈다.
부산 범어사의 지효(智曉, 1909~1989) 스님이 1960년대 후반 천축사에 들어와 당신이 직접 무문관에 입방하고 이를 운영했다.
지금 천축사에서는 일반인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24시간 무문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무문관’이란 중국 남송 중기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쓴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책이름에서 비롯됐다.
천축사의 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는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9년 지정)・비로자나삼신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9년 지정)・목조석가삼존불(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13년 지정)・목조불단(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14년 지정) 등이 있고, 그외 2016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마애사리탑(磨崖舍利塔)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석간수(石澗水)가 좋다.
참고문헌
・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12:15~12:25 휴식
12:25~12:50 뜀바위 앞 전망바위(에덴 동산)으로 이동
12:15~12:25 사진촬영
12:15~12:25 신선대로 이동
12:50~14:30 간식 후 휴식
14:30~15:15 Y계곡 입구로 이동
15:15~15:25 Y계곡을 통과하여 송추폭포 삼거리로 이동
15:25~15:10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북한산국립공원송추계곡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도봉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