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정 연 욱
남산역, 지하철이 몰고 온 바람이 뺨을 스치던 어느 저녁. 문득 한 얼굴이 떠올랐다. 볼이 불그스름하고, 볼살이 봉긋하게 올라온 웃을 때마다 눈이 먼저 반짝이던 고등학교 친구. 남산역 근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그 친구의 집. 아파트가 들어선 그 자리에, 말 없는 아버지와 불평 많던 어머니, 남매 셋이 뒤엉켜 살던 북적이지만, 고요한 집이었다. 그는 가끔 말했다.
“나는 말 많은 사람이랑 꼭 결혼할 거야.”
그때는 웃어 넘겼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꼭 다 커버린 사람의 소망처럼 들린다. 침묵 속에서 자란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깊고도 조용한 바람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학교는 우리 집에서 가까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면, 외숙이는 늘 내 집까지 함께 걸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낙엽을 밟는 소리, 골목을 맴도는 라디오 소리, 바람에 스치는 코트 자락. 사소한 모든 것에도 우리는 웃음 잔치를 벌였다. 길가의 나뭇잎이 누군가의 얼굴 같다고, 모자 쓴 강아지를 닮은 사람이 지나간다고 까르르 웃었다. 지금도 그 낙엽의 소리,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의 공기, 그 시절의 밤길은 내 마음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리라.
‘외숙이’라는 이름은 낯설고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외할머니댁에서 태어났다고 그렇게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못마땅하다고 투정처럼 말하곤 했지만, 사실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 이름 끝 자엔 ‘욱’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사내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집안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는데, 그 바람의 잔재처럼 아버지가 지어 남겨진 이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의 실수로 ‘옥’이 되는 것을 원했다. 오히려 친구들의 킥킥거림 속에서도 ‘옥’을 은근히 붙이기까지 했다.
이름 하나에 담긴 집안의 이야기와 어른들의 바람은 우리 둘만 아는 작은 연대이기도 했다. 친구의 엄마는 외할머니와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이를 가졌고 외숙이는 막내 이모와 친구처럼 자랐다고 했다. 딸과 함께 입덧을 하고 다녔으니 외할머니는 불룩한 배를 감추느라 사위를 피해 다녔다고 한다. 친구의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딘가 미안한 표정이었으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밥을 먹자며 한 바구니의 채소를 내놓았다. 유난히 싱싱했던 상추. 보통은 상추 한 장에 조심조심 밥을 얹어 먹었지만, 그는 두세 장을 겹쳐 그 안에 밥을 푸짐하게 넣고 척척 싸서 입에 넣었다. 입이 얼마나 크던지, 대단한 식성에 웃음만 나왔다. 마치 장성한 어른처럼, 그 너른 상추처럼, 친구의 마음도 넉넉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속은 따뜻했고 다정했다. 한 번은 함께 옷을 사러 간 적이 있다. 점원이 허리 치수를 묻자, 친구는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옷 태그에 적힌 숫자 ‘30’을 훔쳐보았다. 친구는 내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어디 가서 얘기하면…. 죽는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친구는 귀까지 빨개져선 고개를 돌렸다. 넉살 좋은 말투 뒤에 숨어 있던 수줍음. 그때의 그 아이는 참 예뻤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멀어졌다. 그는 동아리 활동에 바빴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다른 친구들과 그의 집에 드나드는 일이 많아졌고 나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친구의 자리에 남은 건 또 다른 대학 친구 미숙이었다. 지금도 매주 점심을 함께 먹는다. 따뜻한 국 한 그릇 사이에 두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요양원에 계신 미숙이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나눈다. 꽃집에 들러 예쁜 화분을 고르고 작은 화병 하나에 기분을 얹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흘러간다.
고등학생 시절엔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어떤 어른이 될까, 어디서 무얼 하며 살까, 별처럼 큰 상상을 나눴다. 하지만 지금의 대화는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현실적이다.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며 오늘의 체력을 챙기고, 내일의 일을 걱정한다. 미래는 이제,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하루를 지키고, 내 삶의 작은 틈을 채우는 조용한 책임이 되었다.
세월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흐른다. 미숙이와 마주 앉아 밥을 떠먹으며 문득 서른 해 뒤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에도 누군가와 점심을 나누고 있을까. 화분 하나 들고 안부를 묻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삶은 어쩌면 큰 움직임보다, 작고 따뜻한 마음이 쌓여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첫댓글 정선생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말씀도 없어시고 맑은 글의 깊이를 느낌니다. 건승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