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부와 청년부가 이제 막 시작되는 공동체에서 <일과 영성>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다. 작은 공동체였지만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너무 열심히 드는 귀한 공동체였고, 오랜만에 대부도까지 운전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누리고 돌아왔다.
세상은 일과 직업을 동일시하고, 연봉과 성공을 동일시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직업과 일을 통해 자아를 성취해야 한다는 문화내러티브의 이면에는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한다.
2.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바벨탑 사건을 보면 신기술을 통해 서로 연합해서 스스로 이름을 내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관계적 존재로 나와 다르지만 같은 하나됨과 연합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문화명령은 함께 연합하여 일하고 싶어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3.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관계',와 '영광'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죄로 물든 마음에서 비롯된 욕망은 노동의 동기, 일의 의미를 뒤바꾸어 버렸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교만이 경쟁과 분열,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고, 그런 마음 가짐은 스스로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우상으로 삼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인류가 그토록 애타게 구하는 영광과 관계는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공존할 수 있다." 결국 일과 직업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순서가 바뀐 잘못된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나 보다 더 큰 대의' 즉 하나님을 만날 때 생기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비전과 사명을 만날 때 그 소명의식이 일의 의미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 일 자체에서 의미가 오는 것은 아니다.
4.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계속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면 2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고 싶어질 것이다. 크리스챤에게 일이란, 자아실현도, 돈을 버는 수단도 성공의 도구도 아니다. 요즘은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이것을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딤전 6:9) 라고 말하면서 '부하려 하는 것' 즉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올무에 빠트린다고 말한다.
웨인그루뎀은 "우리가 숨쉬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지만, 그러나 숨 쉬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돈도 마찬가지다. 이윤과 돈이 벌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렇다고 돈 벌기 위해 사는 것은 숨쉬기 위해 사는 삶이랑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숨쉬기 위해 이 땅에 온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구원받은 백성으로 이 땅의 소명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5.
팀 켈러는 <일과 영성>에서 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라는 말이다...하나님이 불러서 과업을 맡기셨다는 사실 자체가 힘을 주므로 자아를 실현하고 권력을 얻을 속셈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일을 대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일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보아야 한다." (P92)
이렇게 의미를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사명에서 찾게 될 때 우리의 직업과 일은 나 자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가 된다. 그런 성경적 일의 의미를 회복할 때, 비로소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세상을 섬기는 과정임을 이해하게 된다.
6.
직업의 귀천이 없고,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손과 발을 대신하는 존엄성을 가지게 될 때, 내가 가지는 일 자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연결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그 일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하는 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루 벌어먹고 살 벽돌을 나르는 사람과 몇 개월뒤에 성당이라는 건물을 짓는다는 사람과,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오늘 내가 나르는 벽돌 한장을 얼마나 멀리까지 보느냐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하느냐의 차이이다.
7.
직업과 일을 문화내러티브에서 말하는 자아실현과 인생의 비전으로 두게 되면 거의 90% 이상의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직업과 원하는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늘 열등감과 우울을 벗어날 수가 없다. 또 상위 10%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직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인생의 의미는 직업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은 도구이다. 하나님과 관계성을 통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연합을 통해 땅을 정복해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일이 없으면 삶의 존엄성은 떨어진다. FIRE족이 되어서 돈 많이 벌고 빨리 은퇴를 꿈꾸는 분위기도 있지만, 은퇴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인간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8.
자신의 결핍과 부족에 매몰되면 늘 직업과 일은 자기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준다. 삶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직업을 통해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순서를 바꾸어야 한다. 죄는 순서가 바뀐 사랑이다. 하나님 안에서 복음의 만족을 통해 일은 나중심에서 이웃사랑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일과 직업을 좀 더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한다. 일은 힘겹다. 매일 출근하면서 기쁨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목회자도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이지만 매 주 설교는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다. 그렇게 힘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9.
복음은 그런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넘게 해준다. 은혜는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힘든 직장 생활을 연속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와 연결하며 소명과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에 모여서 함께 동일한 비전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격려와 위로를 경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홀로 떨어져 있다면 세상 속에서 직업이 주는 삶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기가 어렵다.
하나님, 사명, 공동체라는 뿌리를 통해 우리의 직장과 가정은 새로워지고 지속적인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할 때 점점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소명, 공동체와 동떨어진 직업의 비전과 자아실현이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 것이다. "왜 일하는가?"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라는 궁극적인 질문은 직업 안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이고, 그때 직업은 소명과 이웃사랑의 귀한 도구가 된다.
첫댓글 세상을 섬기는 과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