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블로흐,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치시는 그리스도〉, 1883, oil on canvas, 101x126inches. Brigham Young University Museum of Art.
빨간 두건을 쓴 남자가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오른 종아리를 싸맨 것으로 보아 온천물이 다시 솟을 때 가장 먼저 들어가려는 환자다. 흰옷을 입은 예수를 곁눈질하며 본다. 간헐천이 다시 솟을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천만 보던 눈을 돌려 예수를 보는데 사뭇 불량스럽다. 누구보다 먼저 간헐천에 들어가려고 온천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는데, 예수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수께서 여기 베데스다에 오셨다. 베데스다는 이름대로 모두를 위한 치료가 베풀어지는 ‘자비의 집’이다. 온천이 솟을 때 단 한 사람만 치료받다 보니 경쟁의 집이 되어 버렸다. 예수께서 베데스다로 오신 이유는 경쟁의 집을 다시 자비의 집으로 바꾸려는 것일 터다. 그렇게 된다면 경쟁에 가장 유리한 자리를 선점한 빨간 두건이 전체 1등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38년 동안 경쟁에서 낙오되어 널브러진 환자 곁으로 오신 예수 때문에 경쟁 구도가 흐트러질 참이다.
빨간 두건이 불량하게 치뜬 눈 따위 의식하지 않고 예수께서는 베데스다에 오신 목적을 이행하신다.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칼 블로흐(Carl Bloch, 1834-1890)는 예수를 하얀 빛으로, 38년 동안 누워 있는 병자를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어둠으로 표현했다. 덮개로 얼굴까지 가린 채 동굴을 파고 들어간 듯 누워 숨어 있는 병자에게 예수께서 덮개를 들추시고 빛을 보게 하신다. 태초에 있었던, “빛이 있으라”라는 말씀이 어둠 속에 널브러진 병자에게 다시 울린 것이다. 병자는 거적때기 요를 말뚝으로 고정시킨 채 누워 도와주는 사람만을 기다렸다. 38년 동안 ‘물이 움직일 때에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을 기다렸다. 흑암 속에 누워만 있는 병자에게 빛이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바라는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신다. 스스로.
명목상 ‘자비의 집’, 실제론 무기력과 경쟁의 집인 베데스다에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은혜다. 오늘도 오셔서 말씀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아가라”(요 5:6, 8). 오늘도 오셔서 경쟁이 아니라 자비를 말씀하신다. 자비의 집 베데스다에 있는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자기 상처만 중요한 줄 알아, 상처 싸맨 종아리를 앙가슴에 붙이고, 두 손으론 다리를 묶은 채 온천이 솟을 때 전체 1등으로 일어나려는 빨간 두건에게는 예수의 말이 고깝다. 전체 1등을 할 만한 열정과 집중력을 갖추어야 베데스다에서 나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빨간 두건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예수는 억울한 듯 고까운 눈으로 쳐다 보는 빨간 두건에게도 찾아가실 것이다. 그래서다. 빨간 두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눈, 깔아.
첫댓글 ㅋㅋㅋ 너 진짜 눈 깔아..!!
무기력과 경쟁의 집인 베데스다에 자비로 찾아오신 예수님. 무기력한 38년 병자에게도, 전체 1등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빨간두건에게도..!!
경쟁이 아니라 자비를 말씀하시는 주님~♡
사진을 키워보니 빨간두건 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