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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소중한 나의 딸에게
요즘 전세계적으로 많은 너의 또래들이 이성간의 동거를 하고 싶어하고 또한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단다. 그런 흐름에 따라서 너도 동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나는 이제 너가 너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너의 의견을 가급적 존중하려 한다. 너가 알지 모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많이 안 좋단다. 어른인 나와 내 친구들도 넉넉히 살 형편이 아닌데 너와 너의 남자친구는 아직 어리고 학업도 다 마치지 않았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재 취업여건의 상태도 매우 안 좋단다. 서울대를 나온 학생이 청소부에 겨우 뽑히는 상황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대학교는 청소년들이 반드시 다니고 절업해야 한단다. 그런데 너희가 동거를 하면서 대학을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다. 너와 너의 남자친구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과 남자친구의 가족은 어느 쪽도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같은 어른들이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결국 너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지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단다. 물론 너희 둘은 열심히 일한다고 할 것이고 열심히 하겠지만 너희 둘의 몸이 힘든 사회 생활을 잘 견뎌낼지 의문이다.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고, 그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다. 아직 정리된 이야기거리들과 지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소년의 주거권과 관련하여 딱히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더라도 주거권 문제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의식주 중에서도 ‘결식아동’이나 ‘급식’을 비롯하여 아동·청소년의 먹거리에 대해 사람들이 쏟는 지대한 관심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주거권 문제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놓고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가출”과 “독립” 사이 - 청소년의 주거권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것은 주거의 문제를 가족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며, 청소년들은 그 가족-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주거권의 주체로 고려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주거권의 주체는 일단 비청소년들(‘어른들’)이며, 청소년의 주거권 또한 어른들의 주거권에 종속되어 있다. ‘거소결정권’이 친권의 일부로 당연하다는 듯 명시되어 있는 민법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권은 단순히 누구나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주거의 최소한일 뿐이다. 주거권은 안정적인 집, 안전한 집, 가능한 한 좀 더 편안한 집, 내가 원하는 생활방식, 집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생활을 옮기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주거권이라면, 청소년들의 주거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가출”과 “독립”의 문제이다. 우리는 “독립”이라는 말과 “가출”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독립과 가출은 분명히 다르긴 하다. 지금까지 살던 집/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같으나, 독립은 어느 정도 지속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가출은 일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보통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판단적 부분도 있어서, 독립은 보통 정당한 것,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지칭하는 데 반해 가출은 일탈적인 것, 잘못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가출이란 말에는 집요하게 청소년이 따라다닌다. 국어사전 예문에도 “가출 청소년”, “집안 형편이 어렵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그는 가출을 감행하였다.”, “어머니는 가출한 아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런 것들만 나와 있으며, 정부에서는 청소년 가출에 대한 통계를 따로 낼 정도이다. 비록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의 가출”이나 “어머니의 가출” 같은 말이 사용되긴 하지만, 가출은 여전히 주로 청소년의 것이다. 가출이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부정적 가치판단까지 포함해서.
이런 말 쓰임의 배경에는 청소년은 가정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청소년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성년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의 ‘미성숙’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현실적 제약이다. 앞서 내가 “가출”은 보통 일시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상, 가출로 명명되는 청소년들의 가정 탈출(다른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저항)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우며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주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국가가 제공하는 ‘쉼터’(6개월~1년 머무르는)는 청소년들에게 당장 먹고 잘 곳을 주긴 하지만 지속적인 주거일 수 없으며, 현재의 ‘그룹홈’은 그 수가 매우 적고 지원도 열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쉼터 등은 아무래도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의 성격이 강하니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치고, 청소년들의 ‘독립’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뭐 집 문제라는 게 항상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일 것이다. 눈 깜빡할 새 몇 백, 몇 억씩 오르는 집값이나 전세값, 보증금과 임대료 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민사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맺기가 어렵다. 청소년 알바라는 게 대부분 저임금이라서 돈 벌기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주택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책, 『88만원세대』에서는 첫 챕터에서부터 ‘독립’이 20대 후반까지도 지연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독립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이겠는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88만원세대』의 첫 챕터는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조건과 주거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읽다보면 역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만다.
결국 이 사회에 살아가는 다수 ‘정상적인’ 사람들의 주거 사이클은, 청소년기에는 어떤 불만이나 독립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가정에 종속되어 살다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경제적/주거적으로 독립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간혹 이 사이에 학교 진학 등을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가정에 종속되어 있지만 집을 떠나서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런 주거 사이클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를 사회는 거의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가출과 같은 형태의 주거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 의해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대로 꺼내지지도 않은 채, 침묵 속에 묻히고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신화 밑에서.
세상에는 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고 또한 사랑도 있다. 그 사랑들은 불변의 사랑도 있지만 한순간적인 사랑도 있단다. 너희 둘은 불변의 사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너희가 너희의 사랑이 한순간적인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동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엄청 높단다. 심지어는 결혼한 지 한달도 안 되어서 이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란다. 그런데 너희는 아직 결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2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이 둘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겠니? 너희야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는 할지 몰라도 너를 미혼모로 만들고 남자친구가 너의 곁을 떠난다면 너의 충격은 말도 못할 정도로 클 것이다. 난 16년동안 키운 내 딸이 한 순간의 실수로 미혼모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단다. TV를 보면 가끔 미혼모들의 삶을 보는다 난 그것에 대해서 거지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단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나와 너의 엄마가 언제까지 너의 곁에서 있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둘의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나의 딸은 현명해서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70년대 '이효리' 권귀옥, 아기 포기 못한 "미혼모 삶" 10년
'웃으면 복이 와요' 땅딸이 이기동과 환상 콤비를 자랑했던, 배상룜 구봉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70년대의 '이효리' 권귀옥.
권귀옥은 1970년 공채 2기 탤런트로 MBC에 입사했지만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당시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땅딸이 이기동'과 '늘씬 미녀 미스 권'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다.
그렇게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권귀옥은 인기 절정이었던 80년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브라운관에서 멀리 떨어져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권귀옥을 MBC '네버엔딩스토리' 김완태 아나운서가 만났다.
코미디언은 못생기고 뚱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던 늘씬 미녀 미스 권귀옥은 당시 코미디언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코미디 무대를 떠난지 28년. 권귀옥은 만나는 사람마다 "늙어서 죄송합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그리고 조막만하던 계란형의 얼굴이 '계란 후라이 형'이 됐다고 속상해 하는 그녀는 "그동안 카메라 마사지를 받지 못해서 그렇다"며 여전한 유머 감각을 드러냈다.
권귀옥은 1980년 결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결혼은 뱃속의 아이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버렸고 뱃속의 생명을 지울 수 없었던 권귀옥은 이국땅에서 홀로 아이를 낳아 길렀다. 미혼모로서의 삶, 그 외로움과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흙장난. 1997년 미국에서 영구 귀국 한 그녀는 본격적으로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흙을 만지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계속해온 도예공부가 벌써 10년재다. 얼마 전에는 개인작품전을 열기도 했고 또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 '권기옥의 흙장난'을 오픈했다.
하지만 한사코 작가라 불리는 꺼려하는 그녀는 자신을 '흙장난쟁이'라고 소개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사람이라 사랑할수밖에 없다는 그녀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미혼모와 아이들의 후원자로 활동하며 사랑도 빚어내고 있다.
한편 얼마 전 MBC신인 개그맨 천수정이 '네버엔딩스토리' 공식 홈페이지 '추천 이사람' 코너에 "70년대 늘씬 미녀 미스 권, 코미디언 권귀옥 선생님 만나고 싶어요"라는 글을 남겨 김완태 아나운서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MBC 일산 드림센터 개그야 녹화장을 찾은 권귀옥은 후배 개그맨들을 만나 왕년의 끼를 십분 발휘했다. 30년만에 코미디 셋트장 냄새를 맡았다는 그녀는 고향에 온 듯 편안하다며 자신을 불러준 천수정과 개그야 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의 독립에 대한 인식을 다른 나라와는 많이 다르게 갖고 있다.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 옆에는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청소년들의 독립에 대해서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단다. 그 나라는 20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부모님 집에서 산다면 부모님께 자신이 벌어오는 돈의 일부를 드리면서 얹혀 살 정도로 청소년들의 독립을 권장하는 제도를 갖췄었단다. 또한 나도 너의 할머니께서 내가 20세가 되면 집을 마련해줄테니 독립하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그렇게 했었고. 따라서 난 너의 독립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단다. 너희 커플은 잘 살 것이라고 믿으니깐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독립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
: http://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1&code_M=2&mode=view&uid=4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