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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년 1월 22일 안식일
예수, 우리의 신실하신 형제
예수님께서 아담이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구속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온전한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연구 범위: 레 25:25~27, 히 2:14~16, 히 11:24~26, 고전 15:50, 히 5:8, 9, 히 12:1~4
기억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 2:14).
히브리서 1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천사들을 다스리는 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으로 설명한다. 히브리서 2장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포함한 연약한 사람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천사들보다 못하신 인자로 나타난다(히 2:7).
히브리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관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히 1:5)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 자녀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히 2:12)이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장에서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신성한 통치권을 선언하신다(히 1:8~12). 히브리서 2장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충성을 확증하신다(히 2:13).
히브리서 1장에서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주, 붙드시는 분 그리고 통치자이시다. 히브리서 2장에서 예수님은 자비롭고 신실하신 인간 대제사장이시다.
요약하자면, 아들을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궁극적인 현현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서 예수님은 신실하고 자비로운 형제로 제시되고 있다(히 1:1~4).
TMI Time
*학습 목표
- 깨닫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희생과 온전한 순종의 모본을 이해한다.
- 느끼기
우리의 형제라고 불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한다.
- 행하기
우리의 형제요 모본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이어 간다.
TMI 안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 헌금을 걷습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1. 어떤 때 형제나 자매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나요?
2.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2:14~18)
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선택이 모세가 했던 선택보다 더 큰 희생인 이유가 무엇입니까?(히 11:24~26)
4.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히 2:17, 4:15)
5.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히 5:8, 9)
6. 하늘을 향한 믿음의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히 12:1~4)
7.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형제가 되기로 선택하신 예수님께 어떤 삶의 모습으로 반응하시겠습니까?
결론
예수님께서 아담이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구속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온전한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TMI 밖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함
1. ‘내가 실천한 TMI 활동 : ( )’을 적고 함께 나눕니다.
2. 각자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나눕니다.
3. 우리가 오늘 오후에 실천할 TMI 활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구속자로서의 형제
죄에 빠져 죽게 된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이 되심으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레위기 25:25~27, 47~49을 읽어 보라.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소유나 자유를 잃은 사람을 누가 구해 줄 수 있었는가?
모세의 법은 어떤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소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팔아야 했다면 그 소유나 자유를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돌려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희년은 빚이 탕감되고, 소유를 되찾으며, 포로들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큰’ 안식년이었다.
하지만 50년은 기다리기에 긴 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법은 가장 가까운 친척이 남아 있는 빚을 대신 갚고 빚진 친척을 더 일찍 구해 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은 살인 사건에서 정의가 구현되도록 보장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가까운 친척을 살해한 사람을 추적하고 처벌해, 흘린 피에 대해 원수를 갚아 주는 사람이었다(민 35:9~15).
히브리서 2:14~16을 읽어 보라. 예수님 그리고 우리는 이 본문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이 본문은 우리를 마귀의 노예들로,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자로 묘사하고 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롬 7:14~24).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죄가 요구하는 죽음의 형벌이 있다는 사실이다(롬 6:23). 그러므로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
<묵상>
빌립보서 2:5~8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셔야 했나요?
(이어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 보이셨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참된 구속자, 그들의 가장 가까운 혈육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시 19:14, 사 41:14, 사 43:14, 사 44:22, 렘 31:11, 호 13:14).
<교훈>
죄에 빠져 죽게 된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이 되심으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적용>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대에게 얼마나 가까운 존재가 되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그대의 믿음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우리의 친족이 되신 예수님 - “가난으로 인하여 한 히브리 사람이 부득불 자기의 기업을 내놓고 자신을 몸종으로 팔게 될 때에 그와 그의 기업을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로 돌아갔다(레 25:25, 47-49; 룻 2:20 참조). 그와 같이 우리를 속량하는 사업과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우리의 유업은 우리의 친족이 되신 예수께 돌아갔다. 예수께서 우리의 친족이 되신 것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시대의 소망, 327).
<기도>
죄의 결과가 가져온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취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도록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17일 월요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
거센 핍박으로 인해 믿음을 버릴 위기에 처해 있던 독자들에게 바울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의 형제가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라고 권면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말한다(히 2:11).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이와 같은 결속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경험했던 공개적인 수치와 대조를 이룬다(히 10:33).
히브리서 11:24~26을 읽어 보라. 모세의 결정이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예증하는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불리는 것이 모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세는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제국의 유력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양과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모두가 주목할 만한 사람이 되었다. 스데반은 모세의 “말과 하는 일이 능하더라”(행 7:22)라고 설명했고, 엘렌 G. 화잇 역시 모세가 “애굽 군대의 총애를 받았으며” 바로가 “그의 양손(養孫)을 자기의 보좌의 후계자로 삼기로”했다고 이야기한다(부조, 245). 하지만 모세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아무 힘도 없는 노예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로 선택했을 때, 그는 이 모든 특권을 버린 것이었다.
마태복음 10:32, 33, 디모데후서 1:8, 12, 히브리서 13:12~15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이것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겪고 있던 문제 중 하나였다. 핍박과 고난을 경험한 후에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히 6:6).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굳게 잡으라”라고 권면한다(히 4:14, 10:23).
<묵상>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제들’로 받아들이시기 위해 하셔야 했던 결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모세가 했던 일보다 훨씬 더 자신을 낮추는 일이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이 사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요 형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빚을 대신 지불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형제로서 우리에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기 위해”(롬 8:29)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교훈>
거센 핍박으로 인해 믿음을 버릴 위기에 처해 있던 독자들에게 바울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의 형제가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라고 권면한다.
<적용>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로 받아 주시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셔야 했습니다. 그대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한 아버지 안에서 형제가 됨 - “예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치신다. 그분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히 2:11). 구주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하고 간절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사용해야 하는 첫 번째 말로 거룩한 관계를 보증하는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게 하신다”(산상보훈, 103).
<기도>
너무나 자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저 같은 사람을 형제라고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위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18일 화요일
우리와 같은 혈과 육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혈과 육을 취하셨지만 죄는 없으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실 수 있으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표해 돌아가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셨다고 이야기한다(히 2:9, 14~16, 10:5~10). 바로 이곳에 구원의 계획을 위한 기초가 있으며 영생을 향한 유일한 희망이 있다.
마태복음 16:17, 갈 1:16, 고린도전서 15:50, 에베소서 6:12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이 인성의 어떤 결점들을 “혈과 육”에 연결시키고 있는가?
“혈과 육”이라는 표현은 인간 상태의 약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연약함(엡 6:12), 이해의 부족(마 16:17, 갈 1:16), 그리고 죽음에 매인 상태(고전 15:50)가 바로 그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범사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이야기한다(히 2:17).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겉모습만 사람들과 같아 보이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에 관해서는 우리와 다르셨다고 히브리서는 이야기한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으셨다(히 4:15). 둘째,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는(히 7:26)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죄에 얽매인 우리의 상태는 우리 본성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롬 7:14, 참조, 7:15~20) 자들이다. 자만심과 같은 죄 된 동기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들마저 더럽힌다. 하지만 예수님의 본성은 죄에 의해 손상되지 않으셨다. 그래야만 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리셨다면, 그분 또한 구원자를 필요로 하셨을 것이다. 대신 예수님께서는 구원자로 오셨으며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셨다(히 7:26~28, 히 9:14).
<묵상>
예수님을 통한 승리가 약속되어 있음에도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여전히 죄로 인해 힘겨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높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죄 없는 제물로 죽으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화해가 가능해졌다(히 2:14~17).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기록하시겠다는 새 언약의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다(히 8:10).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심으로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히 9:14) 있게 하셨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혈과 육을 취하셨지만 죄는 없으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실 수 있으셨다.
<적용>
그대를 끊임없이 정죄하며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사탄에게 오늘 교과를 바탕으로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예수님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으로는 인성과 접촉하시고 당신의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굳게 붙드셨다. 그는 인자로서 우리에게 순종의 모본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호렙산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출 3:14)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보증이었다”(시대의 소망, 24).
<기도>
우리의 죄를 위한 흠 없는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 때문에 오늘도 저 같은 죄인이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죄를 미워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됨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셨고 순종을 배우셨으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다.
히브리서 2:10, 17, 18과 히 5:8, 9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삶 가운데 고난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사도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표현은 놀라운 것이다. 저자는 앞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히 1:3) 이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죄 없으시고 흠 없으시며 더러움이 없고 거룩하시다고 이야기했다(히 4:15, 히 7:26~28, 히 9:14, 히 10:5~10).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도덕적 또는 윤리적 결함도 극복할 필요가 없으셨다. 그분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완벽한 분이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셨다고 이야기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셨다는 의미에서 온전하게 되신 것이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 되시기 위해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히 2:10). 유일하고 온전한 희생 제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이신 분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으시다.
2.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히 5:8). 순종은 두 가지를 위해 꼭 필요했다. 첫째, 순종은 그분의 희생을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게 했다(히 9:14, 10:5~10). 둘째, 예수님의 고난은 그분을 우리의 모본이 되게 했다(히 5:9). 예수님께서는 전에 한 번도 순종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순종을 “배우셨다.” 자신이 하나님이신데 누구에게 순종해야 했겠는가? 예수님은 영원한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하나 된 분으로서, 온 우주의 통치자로서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순종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불순종에서 순종으로가 아니라 주권과 지배에서 복종과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높임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순종하는 인자가 되신 것이다.
<묵상>
만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면, 죄 많은 우리들도 분명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를 향한 엄청난 사랑을 보여 주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확신 가운데서 인생의 고난을 견뎌 낼 수 있을까요?
(이어서) 3. 고난의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신 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게 하였다(히 2:17, 18). 예수님께서 더 자비로워지기 위해 고난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의 자비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다(히 10:5~10, 비교, 롬 5:7, 8).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실체가 더 분명히 표현되고 드러난 것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셨고 순종을 배우셨으며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다.
<적용>
예수님의 경험을 통해 그대가 경험하는 고난의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십니까?
<영감의 교훈>
고난을 통해 구원하심 - “구원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제한된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중보의 위대한 사업을 과소평가한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영광스런 계획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이 거룩한 계획 속에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게 나타나 있다”(교회증언 2권, 200).
<기도>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믿음 위에 굳게 서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0일 목요일
우리의 모본으로서의 형제
예수님께서는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 믿음의 본보기가 되셨다.
예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 가운데 사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함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실 수 있다.
히브리서 12:1~4을 읽어 보라. 사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 삶의 경주를 해야 하는가?
이 본문에서 사도가 믿음의 모본으로 제시하는 인물들의 긴 목록의 정점은 예수님이다. 이 본문은 예수님을 가리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부른다. “믿음의 주”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르케고스(archegos)는 ‘개척자’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앞에서 달리신다는 의미에서 경주의 개척자이다. 히브리서 6:20은 예수님을 “앞서가신” 분이라고 부른다. “온전케 하시는 이”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가장 순결한 모습의 믿음을 하나님께 드러내 보이셨음을 깨닫게 한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야 말로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이 경주를 마치셨으며, 그분이야말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 주신 분이란 사실을 가르쳐 준다.
히브리서 2:13은 이렇게 기록한다.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이사야 8:17, 18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는 북방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두려운 침입의 위협 앞에서 이 말을 했다(사 7:1, 2). 그의 믿음은 당시 왕이었던 아하스의 믿음과 대조된다(왕하 16:5~18).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실 것이라는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사 7:1~11).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의 자손인 아하스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조를 통해 그 약속을 확인하라고 제안하셨다.
<묵상>
인간의 도움을 의지했던 아하스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비교하여 묵상해 보십시오.
(이어서) 하지만 아하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징조를 구하는 대신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왕하 16:7)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하스는 하나님의 아들이기보다는 디글랏 빌레셀의 아들이 되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원수들을 자신의 발아래 두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셨다(히 1:13, 10:12, 13).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우리에게도 주셨으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그분을 믿어야 한다(롬 16:20).
<교훈>
예수님께서는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 믿음의 본보기가 되셨다.
<적용>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대 앞에 놓인 중요한 선택은 무엇이며 그 선택 가운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예수님을 바라보라 - “우리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하신 모본이시다. 주님의 품성은 우리들의 품성이 되어야 한다. 모든 탁월한 진리들이 주님 안에 있다. 인간이나 다른 모든 모본에서 눈을 돌려 정직한 얼굴로 당신의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62).
<기도>
우리 믿음의 본보기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심에 감사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저의 마음을 흔들고 뒤로 물러서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붙잡고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재림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의 마지막에 다른 어떤 선지자보다 뛰어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됩니다.
히브리서 2:13에는 그분의 형제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히 2:13). 신학자 패트릭 그레이(Patrick Gray)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형제들의 후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로마의 후견인 제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큰 형이 어린 형제가 성년이 될 때까지 미성년인 형제와 그 형제의 유산을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어린 형제들을 돌보아야 하는 형의 자연스러운 책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Godly Fear: The Epistle to the Hebrews and Greco-Roman Critiques of Superstition, 126). 이 같은 이해는 히브리서가 왜 우리를 예수님의 형제일 뿐 아니라 그분의 자녀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 준다. 우리의 큰형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 교사이고, 후견인이며, 보호자가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교훈으로 하나님 안에 그 기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신다.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그분은 계속하여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하나님께서는 이 봉사의 이상을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을 통하여 봉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선두에 서도록 보내심을 받았다”(시대의 소망, 6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형제가 되셨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그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이와 같은 놀라운 현실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왜 그렇게도 비참한 실수가 되겠는가?
2.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죄 아래에 팔린”(롬 7:14) 자로 태어나지 않으신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라. 모세가 자신들처럼 노예가 아니었던 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모세의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아기 두유 선교 사업으로 3040과 어린이, 쌍끌이 선교
요즘 교회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겨 가고 있다. 출산 연령대의 신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도 출산율은 급격히 저하하고 미혼이나 비혼의 비율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이러다 자칫 교회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중에 3년 전 연합회에서 삼육 식품과 손잡고 아기 두유 선교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헌신하는 신자들을 모집하여 재정을 헌금하게 하여 펀드를 조성하고 그 재정으로 교회 밖 젊은 이웃의 16여 명의 아기들에게 아기 두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어머니들의 최고의 관심사 중의 하나는 아기를 위한 안전한 먹거리이다. 반응은 너무 좋았다. 몇 개월 후 여세를 몰아 월 1회 장검현 소아과 홀(hall)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여집사회에서 음식을 풍성히 준비하고, 청년반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순서를 준비하여 아기들의 부모들과 함께 축제의 시간을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두유를 공급받는 아기들뿐만 아니라 그 아기의 누나, 오빠, 언니, 형 등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었다. 온 가족이 총출동하는 날인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시샘하는 것인지 1년이 못 되어 모임의 열기가 달아오를 때쯤, 코로나가 엄습했다. 사람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혔고 아이들에 대한 보호 본능이 강한 어머니들이 극도로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모임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두유를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