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어서 그를 치자.>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8,18-20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18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19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20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예언자는 하느님 앞에서나 하소연하며 자기 신세를 한탄합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하느님 앞에서 복을 빌어 주고 하느님의 분노를 돌렸는데,
자신의 동포인 유다의 사람들과 유다의 주님들이 한다는 것이 자신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예레 18,20)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메시지가 이스라엘의 멸망이지요.
그들을 칭찬하고 업적을 열거했더라면 그들은 예언자를 우대했겠지요.
그런데 그 메시지가 그들을 향한 쓴 소리이기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명예욕 또 다르게는 출세욕이 얼마나 강한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더욱 깨닫게 해줍니다.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며
살아생전에 마지막 여행될 길에 서 계십니다.
복음은 침묵하고 있겠지만 하느님 이시면서도 또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얼마나 착잡하시겠어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마태 20.18-19)
물론 주님께서는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당장 주님께서 제자들과 맞아야 하시는 것은
참담한 고통과 죽음이 먼저이십니다.
그 마당에 제배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예수님 앞에서 ‘좋은 자리’ 세상이 말하는 ‘출세의 한자리’를 부탁합니다.
옛날 우리가 흔히 들었던 ‘치마 바람’이 두 아들의 어머니에게 일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의 공통적인 것은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손을 걷어부치고 나서는 것이지요.
이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공통적인 것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야고보와
요한을 위해서 주님께서 잘 되시면 높은 한 자리를 부탁하는데 제자들의 심기가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표현은 안 했지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마태오 복음 저자는 한 줄이지만
제자들의 이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24절)
문득 중국의 고전 채근담(菜根譚) 후집 18장에 나오는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명리名利의
다툼질은 남들에게 모두 맡기어그들 모두가 취하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고요하고
담박함은 내가 즐거워하되 홀로 깨어 있음은 자랑하지 말지니라.”
예수님 수난 전에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욕심 없이 사는 것을 자랑 할 것이 아니라 그 욕심 속에서도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중시해 하겠지요.
채근담의 가르침대로 명리, 다시 말해서 명예욕에 휩싸인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자기 수양을 쌓으며 거기에서 자유롭도록 노력하는 것 겸손한 모습이 아니겠어요?
스스로가 완전하고 자신은 고고한 척 한다면 그것이 교만한 것이지요.
예레미야도 모함에 싸이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명에 충실합니다.
주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예언자들이 갔던 그 고통길을 스스로 가시고 당신 생명을 바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한편 주님을 따르면서도 그 수난과 죽음의 길을 모른 채 명예욕에 휩싸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자신도 자신을 둘러 보는 사순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교만과 욕심을 털어버리는 회개와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의 복된 수요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교만과 욕심을 털어버리는 회개와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