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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_ 그리스도 군사의 병기 (I)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고후 6:7).
그리스도의 군사는 승리하는 군사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의 명예는 곧 주님의 명예이며, 그들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은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싸움에서 이기는 전략과 전술을 가르치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병서이자 군사교과서로 알려진 손자병법은 전쟁의 전략뿐만이 아니라 경영학이나 일반인들의 처세학으로도 회자되고 있는데, 그 전략 중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먼저 이길 수 있는 준비를 다 해 놓은 다음에 적과 싸워 이길 기회를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다. 사탄과 싸우는 선과 악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비무환만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병법처럼 우리는 싸워야 할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우리의 적은 가족이나 이웃이나 혈과 육의 인간이 아니라 악의 권세와 초자연적 하늘의 영들이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존재이지만, 그는 아직도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여러 전술을 동원하고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병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고 있다. 다음의 성경 절에 명시된 병기들을 살펴보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1-17).
1) 하나님의 “전신 갑주”
우리 각자가 선과 악의 대쟁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 영적인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 사탄에게는 그리스도의 군사를 패배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규모의 기만적인 계략이 있다. 성경은 그것을 “마귀의 궤계”라고 부른다. 성경은 사탄의 기만과 계략과 간계에 대처하고 그 공격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승리가 보장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최첨단 방탄 군복을 만들어 무장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꿈의 슈트'라고 불리는 이 새 전투복은 방탄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병사의 힘을 몇 배 증강시켜 빨리 달리게도 해준다고 한다. 이 군복은 헬멧에 달린 접안경에 GPS를 장착, 전장 상황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받으며, 자동온도조절 시스템을 갖춰 극지방에서도 체온이 정상 유지되고, 무선 컴퓨터, 비디오카메라, 통신장비 등도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최첨단 전투복으로도 사탄의 공격은 막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만이 우리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
군인들은 만일에 대비하여 항상 개인 장비를 점검한다. 그리고 전투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심지어 잘 때도 전투화를 벗지 않고 병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적의 공격을 살펴야 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누구나 전투에 임하라는 부르심을 받지만, 준비는 개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열 처녀의 비유에서 부족한 기름을 남이 채워줄 수 없었듯이, 영적인 상태와 준비에 서도 아무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없다. 자신의 준비와 점검은 스스로 해야 한다. 사령관이신 주님께서도 가르쳐주시고 힘을 주시지만 싸워야 할 사람은 군인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도 자신이고 이를 준비하는 것도 각 개인 스스로 할 일이다.
이제부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진리의 허리띠 – 곧바른 진리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 6:14).
허리띠는 의복이나 갑옷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리띠가 없으면 옷이 흘러내리고, 옷이 흘러내리면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것조차 할 수 없다. 허리띠는 허리의 부상을 방지하고 칼이나 탄창, 수통을 달아주고, 행동을 자유스럽게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씨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씨름은 상대의 중심을 뺏는 경기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허리띠는 중심을 잡아주는 의미가 있다.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할 때 허리띠를 풀어버리면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허리띠는 기본적인 무장의 첫걸음이자, 갑옷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허리띠를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병기로 추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허리띠가 아닌 “진리”의 허리띠이다.
왜 진리의 허리띠인가? 신앙생활에서 진리가 빠진 것은 헛된 신앙생활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오류가 섞인 복음, 반쪽 복음 위에 기초를 둔 신앙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론이나 교리가 신앙 전부이거나 그것이 영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바른 진리의 올바른 기초 위에 신앙을 쌓을 때에야 영적인 경험이 바르게 따라오게 되고 그렇게 될 때에 그 진리는 영혼을 영생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르친다고 다 진리가 아니다. 성경에 기초한 변질하지 않은 진리, 현시대에 올바른 양식이 되는 현대진리, 참된 증인의 증언처럼 영혼의 영적인 상태를 날카롭게 깨워 그 영혼으로 살게 하는 곧바른 진리가 진리이다. 신앙생활과 영적 삶을 싸움이라고 생각할 때에, 곧바른 진리를 모르고 헛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바울은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고전 9:26). 진리가 빠진 신앙생활은 허공을 치는 싸움과 같다. 이와 같이 진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허리띠와 같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진리의 띠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사탄이 좋아하는 거짓, 위선, 부정, 나태하고 게으르고 무질서한 삶을 떠나서 정직과 진실, 열심과 성실, 경건과 거룩함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곧 진리이신 주님과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삶은 영적 긴장이 풀리지 않게 날마다 진리로 마음의 허리(벧전1:13)를 바짝 졸라매야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진리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의의 갑옷을 입혀주시는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보장하는 전투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의의 갑옷이 벗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매주는 진리의 허리띠를 단단히 매어야 한다. 진리의 영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도록 자아를 굴복시켜야 하며, 우리 생활에 진리가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3) 의의 호심경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엡 6:14).
바울은 진리의 허리띠에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호심경은 흉배로도 번역되어 있는데, 호심경이란 갑옷의 가슴 쪽에 호신용으로 붙이는 구리 조각이다. 갑옷을 입을 때 가슴 부분, 특히 심장 부분을 추가로 보호하기 위해 왼쪽 가슴, 즉 심장 주위 부분에 덧대는 얇은 쇠판을 말하는 것이다. 호심경이 없으면 비록 갑옷을 잘 입었더라도 화살이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 심장이 꽤 뚫려 죽임을 당할 수가 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진리와 의의 개념을 연결시켰다. 그 의미는 진리가 우리 속에 역사하여 의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실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가 변화되며,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즉 바울은 이것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믿음의 의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에게 의가 된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사상과 정신과 마음이 예수님과 합쳐져 하나가 되고 우리 마음 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의로운 생애를 살게 된다.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가 되는 것, 이것이 의의 흉배를 붙이는 것이다.
흉배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처럼, 옳은 일을 행하고 의를 실천하며 “진리”대로 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옳은 일을 게을리하고 진리로 알고 있는 것에 등을 돌릴 때에 쉽게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갑옷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도록 사랑과 헌신과 희생과 의의 선한 행실의 표를 새기라는 뜻이다. 주님의 모습과 성품이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세상과 사탄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게 만들 뿐이다. 또한, 우리는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진리와 의는 사탄의 공격에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무기이다. 우리의 의와 구원이 예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전쟁에 임하도록 하자.
4) 복음의 신 – 영원한 복음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5).
군인에게 전투화 신발은 매우 중요하다. 병사의 신발이 편안해야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다. 구두가 편하지 않으면 오래 보행을 하거나 뛸 수 없다. 당시 로마 군인의 신발은 보통 신발과 달라서, 놋 재질로 되어 있었으며, 모양은 발을 덮은 부분과 정강이 받이가 있어서 부츠 같았다. 신발 윗부분 끝은 놋과 가죽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바닥에는 7.5cm 정도의 송곳 같은 쇠못(Spikes)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만일 이 신발에 차이거나 밟히면 날카로운 못에 찍히는 것 같은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안전용이자 방어용, 공격용으로 만들었다. 그 전투화는 병사들이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바울은 영적인 전투에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복음의 신이 아니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권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복음, “영원한 복음”(계 14:6)은 평안의 복음이다. 이 복음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구원과 구속의 계획과 방법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복음으로서, 이 복음을 믿고 따르고 복음의 지시와 명령을 지키기만 하면 영원한 구원과 영생이 보장되는, 영혼에게 평안을 주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온전한 복음으로, 이 복음 속에는 용서의 교훈이 포함되어 있고, 칭의와 성화의 진리, 곧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이 들어 있으며, 복음이 주는 능력 곧 영혼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에 관한 좋은 소식과 이 능력을 믿을 때에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 곧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의 소식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완전한 평안의 소식이다.
바울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라는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여 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복음은 삶에서 나타난다. 복음의 능력은 그 사람의 발자취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복음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지 않으며, 그 사람이 경험한 것이 되지 않으면 그 복음은 소용이 없다. 복음을 스스로 경험해야만 그 복음은 영혼에게 평안을 주는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발이 닿는 곳마다 평안의 복음이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평안한 복음의 신을 신어야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흔들림 없이 피곤함 없이 꾸준하게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다. 곧바른 진리를 아는 것과 의를 이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합력하여 나에게 진정한 복음이 되는 경험, 곧 그 복음이 나를 구원한 평안한 복음이 되어야, 그리고 그 복음이 나를 후원해주어야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거짓 평안이 아닌 진정한 복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면 마귀의 공격에 넘어가기가 쉽다. 이 평안한 복음이야말로 영적 투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을 마련하는 병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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