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홍신선
그 시절 왕십리 전차종점 매표소 옆 노점에서
중고 드럼통 번철에다 호떡을 구워 팔며 그녀는 견뎠다.
이따금 등에 업힌 젖먹이를 추스르며
세상을 뒤엎겠다고 그 주인을 하겠다고
형무소 1.5평 독방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애아범 잠적한 서쪽 까마득한 하늘에는 아예 등 돌린 채
그녀는 삭신이 아플수록 더 뜨겁게 몸 지지듯
뭇 호떡들 누르개로 꾹꾹 눌렀다 다시 끊임없이 뒤집곤 했다
성동소방서 망루 뒤쪽
터진 호떡에선 끈적이는 붉은 하늘이 흘러나오고
통금(通禁)의 자정 때까지
간드레 불빛에 찬 얼굴을 아프지 않게 묻곤 했다.
그냥 먹고 사는 셋집일 뿐인 세상이라서
팔다 남은 파치들처럼 등 따순 자리로 자리로 골라 눕히던
그 네 남매도 언제부터인가 모두 떠났다
시간이 관통해간 텅 빈 통로인 그녀가 끝까지
데인 손으로 시간의 큰 봉지들을 벌려가며
달아오른 번철 위에서 묵묵히 일생 뒤집고 구운 것은
결국 이 세상이었음을 자기가 그 주인이었음을
나는 이제 그녀의 쇠락한 눈가에서 읽을 뿐
그리고 안다, 처형된 사내가 가 있을
하늘의 어느 부분 근처를 지나가는
혁명의 실낱구름이 그 눈 속에 잠겨 있을 뿐임을.
—《시와 정신》2012년 봄호
-----------------
홍신선 / 1944년 경기도 화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1965년 시전문지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서벽당집』『겨울섬』『우리 이웃 사람들』『다시 고향에서』『황사바람 속에서』『자화상을 위하여』『홍신선 시전집』『우연을 점 찍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