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2-29)> 스승의 날, 권이혁 선생님 추모
“망엄부 안동후인 권이혁 영가 행효권윤택복위” 서울 성북동 소재 길상사(吉祥寺)에 모신 故 권이혁(權彝赫) 선생님 위패(位牌)의 글귀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Graduate School of Public Health) 동창회 임원들이 지난 5월 13일(금요일) 오전 11시 길상사를 방문하여 권이혁 선생님의 위패에 예를 올리고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의 큰 스승이신 우강(又岡) 권이혁 박사님은 지난 2020년 7월 12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취침 중에 편안히 영면(永眠)하셨다. 선생님께서 생존해 계셨을 때는 ‘스승의 날’ 사은행사를 매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동창회관 2층 함춘회관에서 개최했으며, 선생님께서는 참석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권이혁 선생님과 ‘스승의 날’기념 사은(謝恩) 오찬모임은 마지막으로 2020년 5월 8일에 열렸다.
권이혁 선생님은 1923년 7월 13일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하셨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국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보건대학원,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영득하였다. 1956년 서울대 의대 조교수·부교수·교수를 거쳐 서울대 의과대학장, 보건대학원장, 서울대병원장, 서울대학교 총장(1980.6-1983.10) 등을 역임하였다.
1983년 문교부 장관, 1988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1년 환경처 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총재, 대한보건협회 회장과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권이혁 선생님은 한국형 보건학을 정립하고 국민보건체계를 확립한 공적으로 국민훈장 동백장(1970년), 청조근정훈장(1985), 국민훈장 무궁화장(1998)을 수훈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되었으며, 서재필 의학상(2006년), 대한보건협회 보건대상(2007), 서울대총동창회 관악대상(2014) 등을 수상했다.
보건대학원동창회 임원들은 길상사 방문을 마치고, 삼선교 인근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필자는 권이혁 선생님께서 1959년 보건대학원 설립에 크게 기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권이혁 박사 기념관’을 보건대학원 내에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권이혁 박사님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제10대 원장으로 1976년 4월부터 1978년 4월까지 재임하셨다.
필자는 1976년 2월에 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므로 권이혁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수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권이혁 박사님이 1975년 대한보건협회(Korea Public Health Association) 초대회장으로 활동하실 때 필자(당시 UNICEF 기획관리관)가 협회 사업부장으로 권 회장님을 보필했다. 그 후 권이혁 선생님은 명예회장으로 필자는 자문위원으로 협회 행사에 자주 뵙게 되었다.
삼각산 길상사(三角山吉祥寺)엔 특별한 내력이 있다. 길상사의 전신은 대원각(大苑閣)으로 제3공화국 시절 삼청각, 선운각과 더불어 서울의 3대 요정(料亭)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다. 빼어난 예기(藝妓)로 이름난 김진향(본명 金英韓, 1916-1999)은 자신이 소유했던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시가 1천억 원대)을 ‘무소유’의 대명사 법정(法頂, 속명: 朴在喆, 1932-2010)스님께 헌납하여 세간의 화제가 됐다. 대원각은 1997년 법정스님에 의해 사찰로 탈바꿈하였다. 길상사 진영각(眞影閣)에는 법정스님의 진영(초상화)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극락전(極樂殿)에 길상화(김영한) 보살의 영정(影幀)사진이 있다.
세속에서 불린 본명(本名) ‘김영한’은 이름이 여럿 있다. 기명(妓名)은 ‘진향(眞香)’이며 연인 백석과 두 사람만이 공유했던 아명(雅名)은 ‘자야(子夜)’이다. 그리고 법정스님이 지어준 법명(法名)은 ‘길상화(吉祥華)’이다.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성북동 길상사엔 길상화 보살을 기리는 사당(祠堂)과 공덕비(功德碑)가 있다. 사당 앞에 세워진 공덕주(功德主) 길상화 보살에 관한 안내판에 시인 백석(白石, 본명: 白夔行, 1912-1996)의 詩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적혀 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는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웅앙웅앙 울을 것이다.”
<사진> (1)삼각산 길상사, (2)권이혁 선생님 위패, (3)보건대학원동창회 임원들.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15 Ma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