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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다니엘서에 계시된 하나님 다니엘서 1:2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믿으면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는 다니엘서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절망이 없으신 하나님
사람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요즘 제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바다에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만난 첫 번째 장애물이 홍해 바다였습니다. 그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대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앞은 바다로 막혔고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사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고, 바다를 건널만한 능력도 도구도 없었습니다.
절망의 상황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바람이 불게 하셨습니다. 그 바람이 홍해를 갈라서 바다에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사이에 난 길로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애굽군대는 그 바다에서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다에도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절망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유다는 망했습니다.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10대 소년이었던 다니엘은 부모와 헤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자기 나라에 살수 없었습니다. 낯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완전한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 다니엘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왕 앞에 서게 하시고 결국은 한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영적인 은혜도 주셔서 깊은 영적인 진리를 보게 하시고 말세에 될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로도 사용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절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어떤 절망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지만, 우리는 가진 것이 없고, 일어설 힘이 없어도 하나님이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2. 경건한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용하신 이유가 많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장점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데 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니엘의 경건을 보여주는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구별됨입니다.
느붓갓네살 왕은 포로 중에서 외모가 받쳐주는 똘똘한 귀족이나 왕족 소년들을 선택하여 3년간 훈련시켰습니다. 그 내용이 다니엘서 1장에 나옵니다.
단 1:8에 보면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아마도 왕의 진미는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들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시대는 율법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구합니다. 환관장은 왕을 두려워했습니다.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초췌하여 다른 소년들만 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하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열흘 동안 시험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환관장이 다니엘의 말대로 열흘간 시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가 채식을 한지 열흘 후에 보니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음 우상의 상에 올라갔던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며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시켰습니다.
이런 일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다니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느냐 어기지 않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과 구별된 경건한 다니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명견을 훈련하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키는데 훈련의 마지막 코스는 개가 배고프게 만듭니다. 개가 허기진 상태에 있을 때 맛있는 먹이를 개에게 줍니다. 이 때 허기진 개가 그것을 바로 받아먹으면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개의 목을 쳐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가 먹이를 먹지 않고 주인을 바라보면 그때야 비로소 명견으로 인정을 받았답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개, 주인이 주는 음식만 먹겠다고 결단하는 개만 명견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유혹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것도, 아무리 편리한 것도, 아무리 유익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거절할 수 있는 절제력이 경건생활의 열쇠입니다. 다니엘의 영성에서 중요한 것은 구별됨입니다.
2) 흠이 없는 생활입니다.
다니엘은 신앙뿐만 아니라 생활에도 흠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이 120명의 고관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그들 중에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넘어뜨리려고 다니엘의 흠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 6:4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었고, 직무적으로도 흠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흠이 없는 것은 흠 없고 점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지만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장에 있는 한 가게에서 주인과 손님이 물건 흥정을 하다가 싸움이 붙었습니다. 주인은 시장에서 장사를 오랫동안 하신분이라 보통 사나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손님에게 상스러운 욕을 해가면서 밀어붙였습니다. 손님 역시 만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손님 역시 가게 주인에게 조금도 지지 않고 욕을 해가며 버텼습니다. 두 사람이 시장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싸우니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싸우는데 어느 분이 싸움을 말리면서 가게 주인에게 “권사님, 왜 그러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상스러운 욕을 하며 손님에게 덤비던 분이 교회 권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는 어떤 분이 주인에게 조금도 지지 않았던 손님에게 “집사님이 참아”라고 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 다 교인이었습니다. 싸움 구경하던 사람들은 기가 막혀하며 “예수 믿는 것들이 저래”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날 욕을 먹은 것은 그 두 사람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흠이 주님의 흠이 되었습니다. 그날 그들과 함께 주님도 욕을 먹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자기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흠을 잡을 만큼 대충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기본적인 성품은 충성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의 다른 측면은 성실입니다. 공부도 성실하게 해야 하고, 직장생활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하고 자신의 생활과 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3) 기도생활입니다.
다니엘의 절제의 힘은 기도 생활을 통해서 공급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하도 탁월하니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사람이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법을 어기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법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단 6:10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잠시 피해보려고 숨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문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영성의 비결인 것입니다.
4) 감사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잘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감사를 잘해야 하고 하나님께도 감사를 잘해야 합니다.
단 6:10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목이 비틀어졌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부자는 돈 많은 것도 병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을 잘 놓는다는 침술사가 찾아 왔습니다. “내 침 한번만 맞으면 목이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목만 제대로 돌아오게 고쳐 주시면 5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침술사가 침을 한 방 놓자 목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목을 고치고 난 부자는 500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밑천이 하나도 안 들고 고쳤습니다. 수고도 하지 않고 침 한방 놓고 500만원은 너무 많지 않습니까? 50만원도 비싼 것 같습니다.” 침술사가 말했습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한 방 더 맞으면 완전하게 고쳐질 것입니다. 자! 몸을 돌려 앉으십시오.” 부자는 몸을 돌려 앉았습니다. 다시 침 한방을 놓자 목이 다시 비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침술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제물로 받으십니다. 감사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진짜 은혜 받은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3.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3년간의 훈련기간을 마쳤습니다. 그 후에 환관장이 소년들을 왕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왕이 그들과 말해보니 무리 중에서 이 소년들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지혜를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단 1:17입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잠 3:18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손에는 부귀가 있습니다. 지혜로 살면 즐거운 길을 가고 평강의 길을 가게 됩니다. 지혜는 얻는 자에게 생명 나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성공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잠 9:10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살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4.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개인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미국에 계실 때 같은 교단 같은 노회에 아주 늦도록 공부를 하신 목사님이 계셨답니다. 나이가 50이 넘도록 학문에 정열을 기울여서 마침내 그가 연구한 모든 학문을 끝내고 박사 학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위식 날 네 식구가 차를 타고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에 탔던 몇 사람이 다 다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놀랐고 또 그 사건이 신앙적 갈등을 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민 와서 어려운 이민목회를 열심히 하셨고 또 사모님도 개척교회를 하시면서 나가서 일을 하시느라 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려운 중에도 학문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서 이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날에 그 목사님 사모님이 교통사고로 현장 사망을 하니까 친구 목사들은 “이런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그런 갈등을 좀 겪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이 죽었으니까 장례식을 해야 되잖아요. 모두 모여서 할 말을 잊은 채 슬픔에 잠겨 장례 예배를 드리는데, 좀 이상한 일은 그 집의 대학생 아들이 슬픈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마치 무슨 집안에 잔치라도 생긴 것처럼 신바람이 난 표정이더랍니다. 그 아들이 조문객들을 안내하고 마이크를 잡고 방송 안내를 하면서 얼굴에 기쁨이 충만해서 돌아다니는 겁니다. 보기에 모양새가 안 되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두가 슬픔에 잠겼는데 저 놈이 뭐가 저렇게 신이 난 듯이 마이크를 잡고 어쩌고저쩌고… 저 놈은 미국에서 자라서 버릇이 없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 끝나고 그 아들 얼굴에 슬픔이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아들이 항상 집안 조용한 장소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그날 아침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응답을 어머니에게 전했습니다. “엄마! 오늘 하나님이 엄마를 하늘나라로 데려 가신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식구들이 “야! 그럼, 엄마가 오늘 죽는단 말이냐?”, “맞아요. 내가 지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 몰라. 아무튼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들려주셨어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그 사모님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겠니?” 그런데 두 시간이 있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주관하십니다.
다니엘을 바벨론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를 입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을 총리의 자리에 앉히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국가의 역사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본문에 보면 유다를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단 2:21에 보면 기도응답을 받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런 말합니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성경공동번역개정판은 이 부분을 “시대를 마음대로 바꾸어 왕조를 바꾸시는 분이시요”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알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잠 21:1을 보겠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인간세상에서 왕권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고, 무엇이든지 왕이 하고자 하면 하는 것이고 왕이 안 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마치 봇물과 같이 하나님께서 임의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라는 말입니다.
단 9:2을 보겠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된지 70년 만에 회복 될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예레미야가 쓴 예언서를 읽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계시하셨고 다니엘로 하여금 알게 하셨고, 때가 되매 그 말씀대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고토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왕이 한 큰 신상을 봤습니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습니다.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렸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시대부터 주님의 재림시 까지 있게 될 제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꿈이었습니다. 결국 이 꿈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부터 보면 4짐승의 환상, 숫염소의 환상, 그리고 다니엘 이후에 진행될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70이레 등이 나옵니다. 이런 것들은 한 주제를 가지고 전개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행 17:26을 보겠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하나님은 인류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맞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다니엘서에는 몇 가지 굵직한 사건들이 나옵니다. 그 사건들을 보면 하나님은 롬 8:28을 이루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꿈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왕은 자기의 꿈을 알아내지 못하면 나라의 지혜자들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니엘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친구들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을 알려주시고 해석까지 주셨습니다. 그 일로 왕은 다니엘에게 절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죽을 위기에서 왕에게 절까지 받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다니엘을 모든 지혜자들의 어른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큰 금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낙성식을 했습니다. 그 낙성식에서는 음악소리가 나면 모든 사람들이 금신상에게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3친구는 우상 앞에 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하는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의 3친구를 지켜주셨습니다. 왕이 보니 풀무불 속에 들어간 사람은 셋이었는데 4명이 있었고 한 명은 하나님의 아들 같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들을 더욱 높였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이 두 사건 외에도 다니엘서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곤란하고 어렵고 고난을 당하는 처지로 몰렸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6.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
느부갓네살이 꿈속에서 본 신상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왕이 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신상은 크고 광채가 찬란하고 모양은 심히 두렵게 생겼습니다.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또 보니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립니다. 그 때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은 다 부서져 바람에 불려간 것처럼 없어지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여기서 금, 은, 동, 철은 역사적으로 나타날 제국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한 돌이 그 우상을 부수고 세계를 지배하는데 그 돌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상의 나라는 일시적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강한 제국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나라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살았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인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이라는 지상 나라들이 생겨나 무너졌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단 2:44을 보십시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국권은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를 치고 영원히 설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 세상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에 끊임없이 도전했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우선 금 머리에 해당되는 바벨론부터 얼마나 하나님께 대항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기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로마 시대의 박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어서 기독교인들은 땅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 살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기독교인 사냥에 열을 올렸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40여 개국에서 2억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차별 대우와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난 2000년 동안 7천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중 3분의 2가 지난 100년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기독교는 그렇게 핍박을 받았으나 놀랍게 성장하여 복음이 온 세상에 편만해 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시진핑이 장기 집권에 들어가면서 기독교를 심각하게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폭파시켜버리고 십자가를 때버리고 있습니다. 중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법을 바꿔가며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NAP라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통해서 기독교를 코너로 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코너로 몰리는 것 같아도 결국은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나라는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나라, 망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다니엘서에 계시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어던 분이신가를 나눴습니다.
1. 절망이 없으신 하나님
2. 경건한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
3.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4.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6.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