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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벽에 비가 엄청나게 내리더라고요. 오늘 주일날 어떡하지? 이렇게 비 많이 오면 흔들리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녁에 그렇게 마음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화창한 날씨를 주셨어요. 얼마나 더운지 몰라요.
아시죠?
날씨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환경을 보면서 주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보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혹시 갑자기 전기가 나가 어두움을 경험한 때를 우리가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집이 캄캄해지면 여러분은 가장 무엇을 먼저 찾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잡을 거예요. 거기 핸드폰의 플래시를 통해서 빛을 밝히겠죠.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방이 이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구도 보이기 시작하고 문도 보이고 걸어갈 길이 보이게 되는 것이죠. 빛 하나로 인해서 결국에는 두려움이라는 마음이 안신으로 바뀌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빛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면 이 빛은 어둠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빛이 어둠에게 물러가라 외치지도 않아요. 그냥 빛을 비출 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자연스럽게 물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어둠이 아무리 짙게 깔려 있어도 그 어둠이 깊이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빛 하나를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등대에 있는 항구를 찾게 되는 것이고, 밤에 차 타고 갈 때 전조등을 쓰게 되는 것이고 그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활주로 가운데도 불빛을 따라 착륙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빛은 길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도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빛이시니까 내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당연한데 거기에 더불어서 우리를 향해서 너희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에게는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태양이 되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을 비추고 직장을 비추고 학교를 비추고 이웃들을 비춰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오늘날 세상은 어두운 이야기가 참 많은 시대입니다. 그리고 빛을 비추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지고 있죠. 그래서 주변에 들어보면 원망은 많지만 소망은 적고 비난은 많지만 사랑은 적고 불평은 많지만 감사는 적은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 가운데 빛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분 우리가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그래 착하게 살아야지 그러면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보다 좀 좋은 사람 돼야지 라고 마음을 먹는다면 빛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빛이라 했으니까 그래 내가 세상에 빛이 되어야지라고 마음먹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에 빛이 되는 것을 말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여러분 절대 우리 결심만으로는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빛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죠.
여러분 달이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하죠. 태양의 빛을 받아서 이 세상 가운데 달의 빛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빛 대신 예수님을 가까이할 때 그분의 빛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억지로 빛을 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빛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말이 조금씩 바뀌게 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게 되고 또 선택이 달라지는 이 과정들을 통해서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자연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비춰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사람 왜 빛이 나는지, 그리고 그 빛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에 흘러가는지 함께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요. 성령의 사람은 빚 대신 예수님을 가까이 한다는 거예요. 14절에 이렇게 말하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여러분 감사하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에 빛이 되어라. 우리가 어떤 애쓰고 노력함을 통해서 나타나는 어떤 모습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이죠.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언하신 정체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빛은 여러분 생명을 의미하죠. 또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빛이 있으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빛이 비추자 어떻게 되었어요?
혼돈과 어둠이 사라지고 질서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빛이 임한 자리에 나타난 모습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요한복음 8장 12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요한복음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시작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도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 어둠에 다니지 아니할 것이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까?
무슨 특별한 빛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인가요?
그것이 아니라 빛 되신 예수님 안에 우리가 속했기 때문에 빛이 있는 것이죠. 앞서서 이야기했지만 달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달은 스스로 빛을 밝히지 않습니다. 달이 밤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태양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다른 태양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할 뿐이라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스스로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빛을 밝혀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빛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그 빛이 내 가운데 비춰져서 세상 가운데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내가 더 빛나야 한다는 어떤 열심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빚 대신 예수님을 더 바라보고 더 가까이 가는 사람 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요?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내가 예배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질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빛은 더 밝게 빛나게 되겠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빛 대신 예수님의 그 빛을 세상 가운데 비춰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 더 잘 묻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같이 있어서 그래요. 옛날 바라보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뒹굴고 같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니까 닮아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 이것은 어디에서 가능한 것입니까?
예수님께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그의 생활이 예수님과 함께 계속 진행될 때에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고 주님의 빛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통해서 밝혀지게 되는 것이죠.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오랜 시간 그곳에 있다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러니까 주님과 교통하는 시간 40일이라는 시간을 하나님과 보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그때에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왜요?
모세 얼굴에 광채가 있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산 위에서 내가 내려가서 빛을 바래야지 그러면서 내려왔으니까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시간 그 자체 그 모습 그대로 내려왔을 뿐인데 사람들에게는 빛의 광채가 보였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예수님과 함께 있다 보면 여러분 우리의 말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전에는 미웠던 사람도 조금씩 품게 되는 것.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주님과 함께하여 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래 그 말씀대로 살아야겠다. 마음속에 말씀을 품을 때 일어나는 것이죠. 예수님과 함께 있었더니 전에는 내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손을 내밀게 되고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빛을 내려고 애를 쓴 것이 아니지만 주님과 함께 있었더니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부어지더라는 것이죠.
우리는 때로 신앙생활하면서 그런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 내가 예수 믿는데 더 착하게 살아야지 충분히 그런 마음을 먹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저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여줘야지 이런 마음도 갖게 되죠.
성도라고 하는데 성도 구별된 사람인데 그래 성도답게 살아야지 이건 뭐예요?
내가 마음먹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마음먹는 대로 그게 되던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여러분 물론 거룩하게 사랑하는 건 중요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도록 지음 받은 자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함을 추구해야 돼요.
그러나 그 시작은 나의 결심이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이 되는 거죠. 내가 아무리 결심을 해도 주님과의 관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삶을 살아낼 수가 없다는 그러나 내가 결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시간, 주님과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세상 가운데 나의 삶이 표현되어지게 되는 것이지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등불은 자기 자신을 위해 켜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키를 비추기 위해 켜진다.
맞는 말이죠. 불이 켜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긴 게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세상을 밝히는 것이죠. 그래서 빛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빛은 조용히 다른 사람에게 빛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면 좋겠다는 마음을 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고 말합니다.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되어지는 세상, 미움이 사랑보다 커지는 세상, 절망이 소망을 덮어버리는 세상.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빛이 더욱더 필요한 것이죠.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내가 어떻게 빛으로 살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기 전에 나는 오늘 빛 대신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가 이것을 묻는 것이 다른 질문이라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 대신 주님과 가까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빛을 비추려는 애씀과 노력보다 우선은 내가 빚 대신 주님과 함께하리라. 그래서 예배를 가까이하시고 기도를 가까이하시고 할렐루야 아멘을 하시니 내가 거기에 동의하겠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가까이하시고 기도를 가까이하시고 말씀을 가까이하시고 찬양을 가까이 하십시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세상의 것들을 추지하기보다 찬양을 먼저 틀어 놓으시면 나의 삶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래요. 아침에 내가 찬양을 듣고 시작하니까 차분해지는구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 세상 이야기도 중요해요. 그걸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첫 타임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켜고 한 구절을 읽고 시작한다는 건 다르겠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이렇게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억지로 빛을 대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예수의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은혜 그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 동행하는 시간과 더불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여러분 빛 대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함으로 자연스럽게 예수의 빛이 세상 가운데 비춰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성령의 사람은 있는 자리에서 빛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빛이 드러납니다. 14절 15절 말씀 우리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이 비치느니라.
여러분 빛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 할지라도 캄캄한 곳에서는 금방 눈에 띈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산 위에 있는 동네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많은 마을의 산 위에 이렇게 있었던 것이죠. 밤이 되면 집집마다 작은 불을 켰기 때문에 멀리서도 그 마을이 어떠한지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마을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등불을 켠 후에 말 아래에 두지 않는다.
여기서 말이라는 것은 여러분 말 한 대 두 대 이렇게 이야기해 보셨잖아요. 그 복식 담는 그릇을 이야기합니다. 등불을 켜고 그것을 이렇게 가둬놓지 않는다. 덮어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은 비추도록 공경 위에 두어야 되는 것이 옳은 것이죠. 그렇게 해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빛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도대체 뭘까?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
여기에는요. 여러분 빛이라는 것은 존재 정체성이죠. 존재 이것만으로도 끝나지 않다는 거예요.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밝혀야 된다는 것이 존재와 더불어 밝혀낼 수 있는 것 즉 빛의 역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여러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죠 교회에 와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겠어요?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여기서 다 신앙 좋은 분들이 앉아 계시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세상 속에서도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는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있는 자리에 두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겠는가 여러분 우리 가정에 내가 존재야 내가 학교에 있고 직장에 있고 또 내 주변 지역에 살게 되는지 그것은요.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의 빛을 비추게 하기 위해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 빛이 되게 하시려고 그 자리에 있게 하신 것이다. 바로 그곳이 저와 여러분들이 빛을 비춰야 할 자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빛으로 산다는 것은 꼭 거창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조금 더 정직하게 살 때 빛이 비춰지는 것이죠. 누구보다도 약속을 좀 더 잘 지키며 살아갈 때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아갈 때 그곳에 빛이 있는 것이고,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외면하지 않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빛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잘못했을 때 먼저 내가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는 것, 그 모습 자체가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몇 주간에 들었던 우리의 말씀, 성령의 사람은 말이 바뀌고 겸손해지고 섬기며 살아가고, 헌신하며 살아가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어쩌면 굉장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작은 빛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먼저 섬기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때 그것이 빛이 되어서 사람을 흔들어 깨우게 되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사랑과 절제의 삶을 살아갈 때 그때 우리의 삶을 통해서 빛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비가 되었습니다. 왕비가 될 위치가 아니었는데 왕비가 되었어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만의 계략으로 인해서 유대 민족 전체가 말살당하여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왕후의 자리에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에스더는 사실 두려웠습니다. 본인이 왕 앞에 갈 수가 없어 가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두렵죠.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리라고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마음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했어요.
죽음은 죽으리라. 내가 지금 아마 그 앞에 가서 죽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 그것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
그 마음을 가지고 영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한 민족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하셨다는 물론 우리는 에스더처럼 한 민족을 구원할 만한 그런 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내가 있는 자리에 나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나 때문에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 때문에 살 용기가 생길 수 있다면, 내 말 한마디가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고, 내 작은 친절 하나가 외로운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내 정직한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 믿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여러분 그 작은 빛도 괜찮지 않을까요?
충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작은 빛은 더 밝게 보게 되는 것이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에 삶의 자리가 어둡더라도 그 어두움에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빛이 되어서 밝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를 통해 가정에 빛이 밝혀지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통해서 직장과 학교에 빛이 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통해서 우리 교회 안이 더 밝아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를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아름다운 빛이 비춰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세 번째는요. 성령의 사람은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마지막 16절을 한번 보실까요? 16절 같이 읽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대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 보니까 이제 빛을 비추는 목적이 분명하게 기획돼 있죠. 처음에 정체성, 그리고 사명,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어떠한 목적을 갖고 빛을 비춰야 되는지 결국 빛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 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또 내 빛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영향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잘 살펴보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끼워 넣어줬다는 거예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빛을 밝혀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라.
그런데 중간에 보니까 무슨 표현이 돼 있어요?
착한 음식이라고 빛이라는 것은 결국 내 삶에 착한 행실로 드러나는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입니다. 착한 행실이라는 빛이 드러날 때 누군가가 이 착한 행실을 범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이라는 정체성을 준 것이고, 이 사명을 감당해서 누군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을 만들어내는 것 이게 이제 이 구절 안에 다 포함돼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착한 행실이라는 것을 좀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행실이라는 단어, 엘르곤이라는 헬라어는 한두 번 착한 일을 행하라 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을 통해서 나의 행동과 열매를 나타내 보여라는 것이죠. 한두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행동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리고 착한이라는 이 칼로스라는 것은요. 아름답다 선하다. 다른 사람이 보면서 본받고 싶을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빛을 비춰라는 것은 좋은 일 몇 번 해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때 한순간 좋은 일 해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복음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라는 다비다라는 사람이입니다. 물론 이제 오르가라는 이름을 같이 쓰는데 성경을 글을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합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실이 많더니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다비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명설교를 했던 절교가가 아닙니다. 다비다가 어떤 성령의 능력이 있어서 누군가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어떤 기적을 행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운 사람을 꾸준하게 섬겼던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줬습니다. 그러다가 이 다비다가 죽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이 옷들을 보여주면서 이거 내가 없는 삶 가운데 살아가는 그가 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줘서 사람들이 다 와서 자신의 옷을 내어 보이면서 다비다가 그렇게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요. 다비다는 죽었지만 그녀가 비추었던 빛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죠. 옷 한 벌이 사랑이 되어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섬김 속에서 믿음이 그들의 삶 가운데 비춰졌다는 것이죠. 다비다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대단한 사람으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줬던 사람.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따라서 여러분 빛의 마지막 목적은요. 영광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이 착한 행실을 통해서 누군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을 때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인데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라 평가받는 것 참 중요하죠. 필요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저 사람 뭔가 다른데 예수 믿는 사람이라 다르구나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표현할 줄 알아야 되고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그러한 삶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된다는 것이죠.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은 귀로 들리기 전에 먼저 삶으로 보여져야 한다 맞는 말이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먼저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먼저 보잖아요. 세상 사람은 성경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먼저 보죠.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을 먼저 본다는 거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행동을 먼저 본다는 것이죠. 즉 교회에 오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이견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는요. 세상 사람들이 읽는 성경책과도 같은 우리는 성경을 펴서 읽지만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잖아요. 주님을 알려면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먼저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이 시간 이렇게 좀 고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성경이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인데 그게 나는 살아있는 우리 서로를 위해서 이렇게 한번 이야기해 보실까요?
당신은 살아있는 성경입니다.
사실 어려운 말이기도 한데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한데 사실 그게 맞잖아요. 우리는 성경책을 보면서 주님을 알지만 예수가 알지 못하는 나의 동명이 나를 보고 지금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나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될 부분인 거죠. 내가 교회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듯이 내 삶의 자리에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착한 행실이구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곳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빛이 우리 가운데 비춰졌어요. 반사가 되어서 세상 가운데 살아야 되는데 여기에서 빛을 다 차단하고 나가시면 안 된다는 얘기죠. 그 빛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가장 어렵지 힘들지만 그래 나는 성경을 읽었으니 성경을 보여줘야겠다.
목사님 너무 심한 거 요구하는 것 아니에요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런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는 거예요. 여러분 빛은 세상을 비춰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길을 보게 하는 것이죠. 성령의 사람은 그렇습니다. 내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를 되게 버리는 것이 내 선택 하나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를 믿게 되는 거죠. 내 용서 한 번 내 감사 한 번 내 섬김 한 번 때문에 한 거 그러시기 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 가운데 새기면서 하나님 나도 성령의 사람으로 선한 응시를 통해서 누군가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한 기도의 제목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선포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이 이번 주를 더 착하게 살아가야겠다 더 열심히 빛을 비춰야겠다는 부담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남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히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것까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오늘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야겠다. 자꾸 우리는 이 행동 내가 세상에서 빛을 비춰서 누군가를 감동시켜서 예수를 믿게 해야지 이거 생각하시는데 지금 이거 생각하지 마세요.이거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쪽 편에 서 내가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야지. 이번 한 주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말씀 묵상해야지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를 시작해야지 이걸 선택하는 거예요.
오늘 말씀을 듣고 목사님이 착한 행실을 하라 하는데, 야 어떻게 하면 직장에 가서 이 사람 앞에서 내가 착하게 살까 이거 고민하면 오늘 설교 잘못 들은 거예요. 그러지 마시고 오늘 내가 하루 살 때 어떻게 하면 주님께 여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말씀을 더 취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까 그러는 가운데 삶의 자리에서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투 그게 한 번이 되고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 나의 삶이 세상의 빛으로 자리 잡고 오늘 주일날 말씀드렸는데 월요일부터 실패했어요. 세상 가운데 내가 아무것도 못했어. 그러지 마시고 월요일 아침 일어나자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단 한 구절이라도 하나님 앞에 묵상하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통해서 딱 집에 들어왔는데 야 내가 그때 예전 같았으면 화냈을 건데 내가 참았네.
그러면 성공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감사장을 펴셔서 감사를 쓰시면 오늘 하루 수고했다. 그리고 잡니다.
바라기는 그러한 신앙의 여정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흘러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