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지가 없는 정보, 인터넷 미디어를 예견하다
매클루언은 이렇게 데이터가 하나의 감각에 고밀도로 집중된 상태에서 정보는 발신자에 의해서 수신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될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인쇄매체는 정보의 일방적인 전달 과정이며 수신자는 고밀도로 압축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해독할 뿐이다. 이는 근대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근대사회에서 판사는 치밀하게 짜인 법전을 읽고 사건을 그것에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고 인식되었다. 말하자면 판결은 소통의 행위가 아니라 미리 주어진 법조항을 해독하는 행위일 뿐이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공론화 과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매클루언의 미디어 이론은 사회정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는 뉴미디어가 인쇄매체와 달리 쿨미디어적인 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쿨미디어란 한마디로 ‘쿨’한 특성을 지닌 미디어를 의미하는데 이때 쿨하다는 것은 과도하지 않음과 관련이 있다. 인쇄매체는 지나치게 의미를 치밀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쿨미디어는 어떤 하나의 감각에 치우쳐서 정보를 과밀하게 구성하려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소설과 달리 문자라는 단일한 요소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설명적이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얻는 정보는 극히 주관적이며 관객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말하자면 뉴미디어에 의해서 전달되는 정보 자체가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개방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때 개방적이라 함은 그 의미가 독자의 해석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뜻이다. 매클루언이 보기에 정보의 이러한 개방성으로 인해 정보의 과정은 일방적인 전달의 과정이 아닌 직접적인 만남이나 참여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가 뉴미디어를 통해서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인쇄매체에 대한 매클루언의 분석과 뉴미디어에 대한 해석은 디지털 혹은 인터넷 미디어의 시대의 특징에 잘 적용된다. 그는 인쇄매체의 외파적인 특성과 대비하여 뉴미디어의 특성을 ‘내파(implosion)’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내파란 진원지가 분명하며 선형적으로 그 힘이 전달되는 기계적인 인쇄매체와 달리 진원지 없이 동시적으로 폭발하는 전기적인 매체를 나타내는 은유이다. 여기서 내파적 특성으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진원지의 부재와 동시성이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는 이러한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소셜 네트워크가 발전한 인터넷 미디어 시대의 정보는 인쇄매체 시대와 달리 그 진원지가 불확실하다. 가령 과거의 주요한 정보는 기자들의 취재나 언론사의 데스크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주요 정보는 이와 달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통해서 나오거나 위키리크스와 같이 해커들로부터 나온다. 오히려 취재기자는 이 익명의 정보를 흥미롭게 가공하는 엔터테이너가 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보를 소개하는 기사의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은 더 이상 정보를 세계에 대한 진실한 재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정보를 정정하기도 하고 변형하며 평가한다. 정보의 진원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또한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약받지 않고 동시에 폭발한다. 이러한 동시적인 막강한 폭발 현상에 대해서 외파라는 용어를 갖다 대는 것은 매우 어색하며, 내파라는 용어 외에는 별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텔레비전이 일반화되던 1964년의 시대를 분석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는 그 시대적 한계를 오늘날 인터넷 미디어의 근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도 유효한 분석 틀을 제시하는 고전의 면모를 보여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원지가 없는 정보, 인터넷 미디어를 예견하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