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과 대책>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함으로 인해 기독교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오는 복합적인 움직임이 있다.
①다원주의의 명암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문제가 이성주의에 입각해 문화와 사회를 획일화하는 세계관이 삶을 억압하고 비인간화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해체 작업과 그 결과로 말미암는 다원성에 대한 강조를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결과 기독교와 줄곧 충돌해 온 인본주의의 지배력이 약화
․ 기독교를 편견과 독선으로 몰아온 계몽주의가 수그러들음
․ 독단적 합리주의가 배격되는 분위기는 기독교의 전도나 문화 활동에 도움
다원주의가 팽창하는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이성의 독단성을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나 절대적 진리를 아는 일에 이성의 역할을 도외시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②종교 다원주의
종교 다원주의 속에서는 여러 종교가 공존해야 할 당위성이 강조되고 선교는 부정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는 면에서 힌두교나 불교와 흡사하고, 인간이 신이요 창조주라는 뉴에이지의 생각과도 통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내가 원하는 것, 선택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리로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즉, 느낌과 심리적 행복감이 진리를 대신하는 풍조가 지배한다. 이러한 환경은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③상대주의
세계를 역사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보편적 원리나 통일성이 없는 파편더미로 보는 세계관은 상대주의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이런 상대주의의 특징은 절대성을 표방하는 것을 모두 배격한다. 이런 절대적 진리의 존재가 부정될 때 남는 것은 각자의 ‘의견’뿐이다. 한 사회나 문화를 지배하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면 상대주의가 활개치게 되고 완전히 규제가 풀린 세계가 된다. 거기에는 단순한 구호와 유행과 피상적 이미지가 진리와 의미를 대변하게 된다.
④디스토피아와 허무주의
․ 디스토피아 - 인간의 이성을 삶의 규범으로 삼아 신처럼 받들어 온 근대에 대한 발발의 결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였지만 이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다. 진리가 상실되고 모든 것이 같은 가치를 누린다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세계는 규범과 토대를 상실한 무질서와 허무의 폐허 즉 디스토피아다.
․ 허무주의 - 포스트모더니즘이 허무주의적인 것은 모든 진리가 권력 의지라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진리와 사실도 해석일 뿐이라는 주장도 허무주의를 내포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사상적인 노력이 비판과 수정을 거쳐 건설을 지향한다는 상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모든 것을 허물어 내는 데만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허무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허무는 데만 주력하지 대안적 체계를 제시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⑤반(反)인본주의
본능과 감성이 주가 되고 이성마저 권력 의지의 시녀가 된 인간상을 보고 있으며 이런 인간상에 의해 모든 체제와 규범에서 벗어나 감성과 본능의 세계로 일탈하려는 욕구가 폭발하는 것도 포스트모던의 일면이다. 이런 인간상으로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으며, 자연히 소비주의, 향락주의와 심미주의적 탐닉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⑥우리사회의 기형적 현실
상업 예술이나 특히 영상 매체에서 두드러지는 감각주의, 음란성, 무규범성, 성역 없는 상품화는 번져가고 있고, 성개방과 심지어 동성애까지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⑦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교회
여러 면에서 기독교가 이미 포스트모던적 정서와 문화적 분위기에 휘말리고 있다.
․ 열린예배 - 형식을 초월한 예배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신앙의 감성적 요소를 중시하고,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감정적이며 경험적 성격을 중시하며 초자연적인 체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관주의, 멋대로 신앙, 개인주의와 고립주의를 다시금 조장할 염려가 있다.
․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 - 포스트모던적 분위기에 휩싸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기보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는 교회를 찾는 경향이 있다. 인간 중심적이며, 청중의 요구에 따라 축복 위주의 설교로 일관한다. 그리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 안에 전시장, 문화 공간 서점을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향이 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종교적 테마 공원’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레슬리 뉴비긴 - 철학자들이 이성의 절대성이 허구임을 이미 밝혀 놓았으므로 과거처럼 복음이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비난에 대해서는 오히려 도대체 누구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비이성적이란 말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전략적으로 역이용하여 복음의 세계관을 자신 있게 제시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능함을 역설한다.
①객관주의의 극복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진리 주장은 권력 싸움이므로 객관적이며 중립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학문의 객관성 비판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도 이미 어거스틴이나 루터와 칼빈도 이성과 학문이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서만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오래 전부터 학문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주장해 왔다.
②상대주의의 극복
포스트모던 세계는 온갖 종류의 혼란과 분열된 ‘의견의 세계’이다. 근대시대에는 유토피아를 추구하였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 환상을 깨뜨렸는데, 그 대신 가상현실, 시뮬레이션과 해석이라는 더욱 심각한 상대주의의 환상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이다. 이때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실재 의식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 언어의 산물이요,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며 절대적 진리나 규범을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언어에 진리를 드러내는 힘이 있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 한다. 언어가 진리를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는 통찰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에 매우 중요하다.
③새로운 인간관의 회복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과 역사에 대한 지배를 추구하는 근대인을 폭력적 존재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하려 한다. 잘못된 인간관을 극복하기 위해 해석학적 관점을 참고할 수 있다. 해석학은 인간을 타자와의 관계와 주어진 상황 속에 살아가는 역동적인 존재로 본다. 그리고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갖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해석학은 남을 이해하기 위해 인내와 관용, 이해 의지가 필요함을 밝혔다. ‘남을 고유한 행위자 또는 능동적인 인격적 주체로 존중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는 성경적 진리에 근접한다.
④공동체의 회복
근대적 위기와 포스트모던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토대는 바른 사회 의식과 윤리에 입각한 건강한 공동체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란 담론에 기초한 공동체이므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참다운 신뢰와 상호 존중과 사람에 입각한 공동체의 회복이다. 만약 교회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다면 바로 이 점에서 모범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원리에 충실한 교회공동체는 유토피아를 지향하기보다 실천적인 공동체이다.
<결론 >
포스트모더니즘시대가 우리사회에 침투 할수록 삶에는 순종해야 할 창조주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그것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최고의 대안은 십자군적 자세가 아니라 순교적 선교자의 자세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시대상황 속에 정확히 신앙의 원리를 찾아내어 적용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계승한 것인지 역사 전체의 흐름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 당시 자기 시대의 어떤 사상, 조류에도 희석되거나 무너지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이러한 다양한 사조의 조류의 영향을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과 본질이 시대만 달리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신앙,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주도해 나가도록 좌표를 정확히 찍어내는 것이다.
참고문헌
신국원, 『포스트모더니즘』(IVP, 1999)
신승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살림,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