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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 페이지에 제 연대기만 다섯개째군요...
음... 이제 페이스를 좀 내려야 할까요....;;;
지난 화는 프랑스에게 프랑스 침략을 선언하며 종료되었었지요.
전쟁을 걸어놓고 확인해 봤는데, 프랑스가 동원 할 수 있는 현재 병력은 6,010명 정도 밖에 안되는군요.
그에 반해 잉글랜드 군은 상비군과 징집병을 합쳐서 25,722명 입니다. 병력차가 4배가 넘네요.
손쉽게 이길 수 있겠네요.
가톨릭 기사단이 4개나 등장하였으므로 프랑스도 적극적으로 기사단을 고용하고 있습니다만, 기사단이 중기병 비율이 높다고 해도, 잉글랜드 상비군 역시 중기병 비율이 높으며, 병력 또한 많기 때문에 전투를 손쉽게 진행해 나갑니다.
프랑스 침략 도중에 아들이 태어났네요.
사이이드 말고 다른 트레잇은 없는 평범한 아이군요.
하지만, 아이는 열명가지 낳을 수 있고, 8자리나 비어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아니 뭐...
프랑스 침공을 시작한지 8개월 만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딱히 위기 다운 위기도 없었네요.
부르군디는 내전중이고, 로타링기아는 왕위가 작살난 뒤로 지난화에 대부분을 잉글랜드가 점령하였으며, 이탈리아도 왕위가 부숴진 상태고....
... 아스투리아스는 아마도 우마미야 때문에 참전을 안했을까요??
이슬람의 왕국령 단위 침략은 침략 성공시 해당 지역의 봉신들이 그대로 유지되어 봉신으로 넘어오게 때문에 기존 프랑스의 봉신들의 작위를 모두 회수해 줍니다.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보통 왕권하에서 아무런 패널티 없이 작위를 회수 할 수 있지요.
다만, 블루아에 있는 카페 가문 방계나 샤르트르에 있는 카페 가문 본가(?)는 회수를 하지 않고, 종교 개종을 요구합니다.
프랑스지역이므로 이번만 프랑크문화를 가진 영주중 관계도가 종교 개종을 요구할 만큼 좋은 영주들은 종교 개종을 요구해서 작위를 유지하게끔 해줍니다.
작위 회수 하지 않고, 백작에게 종교개종을 요구하여, 시아파를 받아들인 백작들이 휘하 남작들의 작위를 회수하여 남작들의 종교를 시아파로 변경시키고 있네요.
2차 잉글랜드 가톨릭 반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아직 퇴폐도가 많이 오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잠시 전쟁을 치루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반란을 빠르게 진압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복형인 주르댕이 다시 하렘에 빠져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번에 하렘에 빠져드는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 했던가요......
가문 수장의 형제라 혼자서 다른 일족들의 세배는 해먹는데.. 쩝...
아무래도 잉글랜드 왕의 궁정을 자기들 안방으로 여기는가 봐요??
휘하 봉신 백작의 봉신이었던 남작이 백작에게 처형당하자 그의 딸과 아내가 자기 마음대로 질베르의 궁정에 찾아왔습니다...
궁정에 인원 많으면 여러모로 번거롭기 때문에 궁정 인원수를 최대학 적게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찾아오는걸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톨릭 반란군이 사실상 전멸당해 반란은 진압된것이나 마찬가지 인데, 반란의 주동자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전투 승리인지 주모자를 포로로 잡아서인지 모루겠지만, 2차 잉글랜드 가톨릭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브르타뉴 공작령이 현재 공작파 3개 백작령, 반란군 2개 박작령. 독립 백작 한명으로 나뉘어져 있군요.
반란군에게 성전을 걸면 보통 무조건 평화로 종결되고, 다시 본국에게 성전을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브르타뉴 공작에게 브르타뉴 성전을 선포합니다.
상비군만이 동원엔 이번 전쟁은 3개월만에 잉글랜드의 승리로 종결됩니다.
브르타뉴에 대한 성전을 진행하였는데, 반느 백작령의 본성은 브르타뉴 공작에게 남아버렸군요.
푸아투 공작이 브르타뉴 공작에게 낭크 클레임 전쟁을 걸면서 반느의 본성을 함락시켰었고, 그 상태로 브르타뉴 공작이 잉글랜드에 항복하면서 푸아투에게 점령당한 반느 본성은 브르타뉴에 남고 나머지 지역만 잉글랜드에 귀속된 모양입니다.
거기에 푸아투 공작이 걸었던 클레임 전쟁의 당사자가 브르타뉴 공작에게 잉글랜드 왕으로 바뀌었네요.
푸아투의 낭트 클레임 전쟁은 방어전이기 때문에 푸아투의 병력을 전멸시키더라도 다소 오래 진행될것이기 때문에 브르타뉴 공작에게 반란을 일으킨 기레크에게 브르타뉴 성전을 선포합니다.
반란군 세력에게 성전을 선포하면 본래 군주와 무조건 평화를 맺어서 침공 받은 전쟁을 유효하지 않은 명분으로 종결내는 경우가 많은데, 브르타뉴 저항세력의 기레크는 꿋꿋하게 잉글랜드에게 얻어맞다가 3개월만에 정복됩니다.
잉글랜드 영토가 확장되는 속도가 본인이 원하는것보다 느리다고 생각하는지 질베르는 인내심을 상실합니다.
브르타뉴 공작과 2년, 잉글랜드 국왕과는 5개월간 진행된 푸아투의 낭트 클레임 전쟁은 78%의 승점에서 푸아투 공작 람놀프 3세가 잉글랜드 국왕 질베르에게 항복하면서 종료됩니다.
펜스브레의 백작 제노베브스가 브르타뉴 공작에게 전쟁을 걸었군요.
펜스브레 백작이 승리할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의 성전으로 두개의 백작령을 모두 차지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성전을 한번 승리할때마다 퇴폐도 -10이 있으니 직베르는 10년 후에 반느 백작령도 직접 점령하는것으로 하기 위하여 펜스브레 백작과 브르타뉴 공작의 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개입합니다.
수석 카디가 아직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데, 매번 봉신들이 와서 투덜거리네요.
...난 모르겠으니 님 마음대로 하세요...
2차 가톨릭 반란을 진압한지 얼마 안지난거 같은데..
3차 가톨릭 반란이 발생하였습니다만, 상비군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 빠르게 진압할 수 있겠네요.
가톨릭 반란을 진압하고 계속 동쪽으로 이동한 상비군을 이용하여 슬레스비크 소왕에게 홀슈타인 성전을 걸어줍니다.
백작령 하나를 원했을 뿐인데, 슬레스비크 소왕이 쉽게 항복하지 않아서, 결국 윌란드 백작령과 슬레스비크 백작령까지 점령하고 나서야 시그프리드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 셀란에게도 성전을 선포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셀란을 요구하는 성전을 걸어 셀란까지 점령하고 돌아갑니다.
10년뒤에 슬레스비크에게는 슬레스비크 공작령을, 셀란에게는 스코네 공작령을 요구하는 성전을 실시하여 스칸디나비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도록 하지요
티론 백작이 50이 넘어 시집을 보낼 수 없어 질베르의 궁정에서 놀고 먹을 아내 둘과 아직 미혼인 딸 다섯을 질베르의 궁정에 투하하고 사망하였습니다.
.. 나름 백작위까지 주었던 잉글랜드 왕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요?
궁정에 사람 적게 유지하고 싶은데...
오보트릿스 대족장은 아직 휴전기한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전쟁을 치를 수 없는데, 인접한 디민 추장에게는 성전을 걸 수 있군요.
디민 추장에게 메클렌부르크 성전을 걸어줍니다.
사실 생각해보니 질베르는 칼리프라 시아파를 믿는 세력에게도 10년 단위로 지배 명분 전쟁을 걸 수 있었지요.
지난 화에 성전을 맞고 나서 시아파로 개종하였던 작센 공작 브르게티슬라프 2세에게 지배명문 전쟁을 걸어줍니다만, 이번 한글패치 버전에서는 토벌이라고 나오는군요.
작센 토벌 이후에는 브리타니아 북방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오크니 공작령을 점령하겠습니다.
세명의 백작이 각기 땅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셋 모두에게 성전을 걸고 징집병을 동원하여 정복해줍니다.
941년 10월 8일 주변에서는 23세의 칼리프 질베르를 위대한 자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현명한 자였는데, 질베르는 둘과 다른 호칭을 얻었네요.
징집병을 동원하고, 배를 통해 수송을 하다 보니 오크니 공작령의 백작 3명을 상대로한 성전은 9개월간 진행되었습니다.
오크니 정복도중 로타링기아 지역으로 돌아온 상비군은 이제 알자스 공작령을 침공합니다.
하여간 천재 트레잇 없는 아내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질베르는 아이 하나 낳지 못했으면서 본부인을 암살하려고 했던 후실 아델라이드를 처형해버립니다.
자꾸 유전 트레잇이 없는 아내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질베르는 이번엔 굳이 천재 트레잇이 있는 여인과 혼인하는 것을 고집하였습니다.
다만, 성인이 된 천재 여인이 없기 때문에 14세 소녀와 약혼을 해 두겠습니다.
부르군디를 휩쓸던 내전이 반란군의 승리로 종결되어 부르군디 왕국이 존재함에도 부르군디 지역에 다수의 독립 세력이 난립하고 있습니다.
우선 고 부르군트 공작 에델리히에게 고 부르군트 성전을 걸어줍니다.
오세르 백작이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 세명이 모두 질베르의 궁정으로 왔습니다만, 세명 모두 나이가 많지 않아, 다행히도 모두 외부로 시집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궁정 인원이 늘지 않았네요.
많은 수의 봉신들이 독립해버려서 세력이 크게 위축된 부르군디에게 사보이 성전을 걸어줍니다.
어느새 우마이야는 도로 툴르즈 공작령을 차지하였군요.
이전에 툴루즈 공작령을 점령하여 가톨릭 십자군을 발동시킨 후, 1차 십자군을 얻어 맞아서 툴루즈를 도로 상실했었는데, 그새 되찾았군요.
사실 우마미야가 툴르즈를 점령하지 않았었다면, 조금전의 프랑스 침략의 결과로 십자군이 발동되었겠지요.
고작 몇십년 차이려나요?
.. 게다가 우마미야가 십자군을 발동시키면서 프랑스 침략 이후에 십자군을 막을 일이 없었군요.. 우마미야에게 고마워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부르군디는 그래도 왕국이기에 상당수의 병력을 동원하고, 주위 가톨릭 국가에서도 지원을 왔지만, 1만이 넘는 잉글랜드의 상비군을 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1:10에 가까운 교전비를 보여주며 주력군을 상실하였네요.
결국 8개월간 진행된 사보이 성전은 99%에서 부르군디 왕이 항복하면서 종료됩니다.
이후에 고 부르군트나 사보이 공작령의 독립 백작중 몇몇을 정리해줍니다.
압바스의 퇴폐도가 99%까지 올랐군요.
조만간 아라비아 제국의 주인이 바뀌겠네요..
질베르는 퇴폐도 관리를 철저히하여 퇴폐도 반란군이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리라 마음먹어 봅니다.
수석 재판관인가 수석 카디인가 누가 맡던 큰 차이는 없을거 같은데, 자꾸 봉신들이 바꿔달라네요.
재판관에 누굴 임명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므로 그냥 봉신이 하자는대로 따릅니다.
그리송 백작은 동프랑크와 부르군디에 막혀 성전을 선포 할 수 없고, 아키텐은 어느새 부르군디와 합처져 버렸으므로 그리송 백작과 아키텐은 일단 놔두고 프로방스 공작 라울에게 프로방스 성전을 선포합니다.
잉글랜드의 목표가 부른군디 지역 다음엔 이탈리아 지역이라는걸 이탈리아의 영주들도 눈치를 챘는지, 프로방스 성전에 이탈리아 영주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기사단이 포함된 상비군 앞에 모두 무너집니다.
항상 노력하는 질베르는 언제나 퇴폐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이벤트로 퇴폐도는 8%에서 6%로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큰형이 퇴폐도를 발생시키고 있지만, 어찌되었거나 가문 플레이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조카들에게 프로방스 백작령을 나눠줍니다.
프로방스 지역의 마지막 백작령인 브내생도 정복한 다음
수사의 공작 에라르에게 수사 성전을 선포하면서 잉글랜드는 이제 이탈리아 진출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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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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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친절하며 자비롭고 공정한 칼리프들이 통치하는 잉글랜드예요
해치지 않아요( --)
아아 결국 대륙 북쪽과 남쪽이 이어지고 말았다. 이제 상인공화국들 굶어죽겠네요ㅜㅜㅜ
새로 이슬람의 공화국을 세워줘야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마 가톨릭 국가들이 너무 털려서 십자군 발동을 못할겝니다..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