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지 않고 성장해온 분은 없을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지나 청년기에 이를때까지 어떤 이유든지간에 아버지에게 눈물이 핑돌정도로 따끔한 회초리를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명"사랑의매" 라고 일컬어지는 "아버지의 회초리" . 특히 회초리의 강도가 심할때는 " 정말 내가 아버지의 친자식이 맞을까? 나 주워온 자식은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또한 그랬으니까. 내 진짜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왜 나를 버려서 이렇게 의붓아버지 한테 혼나야하는걸까? 라는 엉뚱한 상상에 빠져 혼자 방에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눈이 퉁퉁 붓도록 서럽게 울어댔던 때가 생각난다.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의 아버지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주의 를 평생동안 신앙처럼 믿고 실천해오신 분이셨다. 리니지로 말하면 한서버에서 전성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반왕들이 커나가지 못하게 싹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한번 찍힌 사람들은 게임을 접고 서버를 떠나야할정도로 무한필드 + 척살을 자행하고 던젼통제까지 대수롭지 않게 일삼는 " 천상천하 유아독존 " 스타일의 절대군주 라고나 할까...
유년 시절을 거쳐 청소년 기를 거쳐 청년기에 접어들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 독재자 " 라는 이미지였다. 우리 집에는 반왕 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우리 가족들을 이끌어갔고 오직 " 순종 과 복종 " 만이 있을 뿐이었다.
크고 작은 실수들로 아버지에게 참 많이 혼나고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성장시키는데 있어 무척이나 엄하고 매정했다. 직업이 경찰공무원을 거쳐 세무공무원으로 이어지다보니 직업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매사에 빈틈없고 완벽하지 않으면 만족하시지 못하는 성격이시라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부응하려고 했지만 그게 마음먹은대로 일사천리처럼 되어가는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래저래 많이 혼날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로서는 그런 아버지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일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대하지도 못했고 아버지 앞에만 서면 나도모르게 주눅이 들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중학교때 나는 검도부에 들었다. 선생님이 죽도를 하나 사서 가지고 오라고했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근처 상점에 가서 죽도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1개가 아닌 2개를 사가지고 오셨다. 그래서 " 아버지 왜 죽도가 2개에요? 1개만 있으면 되는데요 " 라고 여쭈어봤더니 " 1개는 니가 학교에서 쓸거고 다른 1개는 니들 회초리 대용으로 쓸려고 사온거야 " 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나와 우리 형제들은 회초리 대신 죽도로 얻어맞기 시작했다. 대나무4개를 엮어서 만든 죽도이다보니 맞다보면 그 나무 틈 사이로 맨살이 집게처럼 물리는 바람에 살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검도부에 든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맞고나면 엉덩이와 종아리는 시퍼렇게 멍들고 죽도에 물려 찢어진 부위에서는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으니... 공포 그 자체였다.
사춘기 시절에 들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항상 아버지 시키는대로 순종과 복종만 해오던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고1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는데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마치 걍 +0일도 하나들고 +9싸울 든 기사에게 덤벼드는 꼴이었으니...
그러던 어느날.. 그렇게 강해보이고 우러러보이던 아버지가 병환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시게 되었고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너무나 건장한 체격에 멋진 호남형으로 생기셨던 아버지는 어느날부터인가 누워계시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때 속이없었던 나는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본격적인 반항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게 일순간에 폭발하면서 청개구리처럼 아버지의 말은 일절 듣지않고 오히려 싫어하는 일들만 계속해서 저질러나갔다.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리고 철이 없었기에.. 어느날 부터인가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화를 내시거나 매를 들거나 손을 대지 않았다. 말수가 점점 적어지셨다. 하지만 기존에 해오신것처럼 가부장적 권위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고 가정의 모든 권한은 여전히 아버지 손에 쥐어져있었다. 나는 그런모습이 너무나 싫었기에 나의 반항은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갔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나는 아버지에게는 일체 무관심으로 상대했다. 이제는 나도 아버지에 맞서서 싸울수 있을 정도로 나이도 먹고 힘도 키웠다는 사실에 아버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경쓰는것조차 싫었다. 이제는 나도 내 마음대로 내 갈길을 간다~
라는 식으로 자유와 방종을 구분못하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살아갔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서 퇴소식날이 되었다. 퇴소식을 마치고 가족과 상봉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건강이 너무 안좋으시기 때문에 오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에 별로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에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힘든 걸음걸음으로 다가오시더니 내 손을 꼭 잡고 "니 에미가 음식 차려놓고 기다린다. 어서 가자" 라며 어디론가로 발길을 돌리셨다. 그때 나는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아버지의 눈물을... 그리고 아버지의 울음섞인 떨리던 목소리를... 내 손을 부여 잡은 아버지의 손도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던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건.. 처음으로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낀건.. 내가 다시 훈련소로 돌아가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때 아버지는 내 눈을 차마 쳐다보지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먼산만 바라보셨다.
저녁 노을처럼 붉게 물든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가슴한켠이 무너져 내렸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인가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목욕을 하시는 중이셨는데 와서 등을 좀 밀어달라고 하셨다. 아무생각없이 투덜투덜 거리며 목욕탕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네는 목욕 타월을 받아들고 아버지의 등을 밀기위해 쭈그려앉았다.
무심결에 아버지의 등을 밀려고 손을 가져다대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넓고 건장하게 보였던 아버지의 몸이 이렇게 초라하고 왜소하게 변했다는 사실에... 병환때문에 앙상하게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수척해진 몸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드리는데 손바닥에 느껴지는 아버지의 뼈마디 마디들... 소말리아 난민을 연상케 하는 너무나도 초라한 뒷모습...
처음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진정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보인건...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입술을 곱씹으며 울고 또 울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가 이상하다 싶으셨는지 뒤를 돌아보셨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보시고 아무말 없이 수건으로 내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시며 어깨를 다독거려주셨다. 우린 둘다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느낄수 있었으므로.
아버지도 어느새 눈망울에 이슬이 말없이 맺히고 있었다.
그 시간이후 나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높이 쌓아놓았던 대화의 단절이라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인생에 대해서 , 가정에 대해서, 아버지와 나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모든걸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었다. 자두의 노래처럼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단지 아버지를 대화의 상대에서 제외시켜놓은채 성장해온 나였기에 서로의 깊은 골을 메꾸어 나가지 못했을뿐... 단 한번이라도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실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렇게 뛰어넘기 힘든 벽은 아니었을텐데....
그걸 알았을때 아버지는 이미 옛날에 내가알던 강인하고 위풍당당한 아버지가 아닌 세월의 풍파속에 깊은 주름살만이 훈장처럼 쓸쓸히 남아있는 70대 중반의 노신사가 되어계셨다.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이전처럼 아버지에게 회초리와 죽도로 실컷 두들겨맞던 시절이 그리워지는건 왜일까.. 다시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건 왜일까...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항상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정말 그때 그시절의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걸어왔던 그 길을 따라 또다른 아버지의 길을 걸어간다.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똑같은 인생의 과정을 거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먼훗날이 되면 내아들도 내가 걸어온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할것이다.
이런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이해할수 있을때까지 제 곁을 떠나지않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제가 아버지를 겨우 이해할수 있게되었는데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이미 떠나신 후였다면 얼마나 큰 한이 되었을까요. 영원히 씻지못할 큰 상처로 남았을겁니다. 저에게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기회를 주신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이말을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남은 여생은 제가 아버지 곁을 떠나지않고 아버지가 저를 지금까지 지켜주셨듯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놓지않겠습니다. "
나는 지금 현재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른집과 다른점이 한가지가 있었던것 같다. 다른 집은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서 챙겨주시는데 내 어릴적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서 챙겨주시던 적이 더 많았던것 같다. 어머니가 만류를 하셔도 한사코 뿌리치시고 아들을 위해서 손수 도시락 반찬을 챙겨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 아버지는 정말 행복해보이셨다. 왜 이제서야 기억이 나는 걸까.... 바보처럼....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첫댓글 에.. 무슨말인지 모를말이 몇군데 있는것을 제외하곤 멋진글이네요.. 이분 글 잘쓰신다.. 흐음..... 그래도 난 맞는거 싫어 -_-.. 지금까지는.. at least !!
음..저두 지독하게 가부장적인 아버지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네요..그치만 아직 철이 덜들어서 그런지 아직은 아버질 좋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저두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꺼라구 생각해요..후회하지전이었으면 좋겠지만..
반왕..-_-; 저희는 아버지가 저와 친구처럼 해 주셔서.. 권위적 이시지 않으셔서 .. 매도 들지 않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