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성 인간
김 난 석
하나님은 모세에게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탈출하라 했다
이때 모세가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하나님은 “I am that I am.”이라 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다워야 나다
14살 시난은 남학생이다.
어느 날 교실 의자에 앉아 공부하려니
의자에 피가 낭자하게 흐른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소변을 보려니
오줌에서도 피가 빨갛게 흘러나온다.
남성 성기와 여성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선천성 간성(間性)으로
사춘기에 이르니 생리를 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진찰 후
부모는 의사와 상의해 남성성을 제거하고
여성으로 만든다.
허나 동료학생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이를 못 이겨 전학하게 되는데
가까스로 사귄 장 티엔이 모든 걸 이해해준다.
허나
장 티엔이 그와 가까운 다른 친구에게 발설하자
시난은 다시 따돌림 당하고
심한 갈등 속에 빠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건데
이게 대만의 릴리니 감독의 영화
<양성 인간>의 대강이다.
(원제 : 生而爲人)
인간이 남성으로 태어나느냐
아니면 여성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건
신(神)의 영역이다.
그러나 시난에 대해선 인간이 성을 규정지었다.
양성에서 여성으로 말이다.
이건 죄악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시난은 성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갈등 속에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눈썹에 마스카라를 하고 입술에 루주를 바르고
화려한 옷을 입고 몸부림인지 춤인지 모를
현란한 몸짓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간의 정체성은 무언가?
성을 규정짓는 것만이 정체성인가?
아니다.
어떤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마디마디 깊게 사색하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런 것이리라.
지난가을에 써봤던 글을 아래에 붙여본다.
이 가을 나는 누구인가
김 난 석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물어오는 이 있다면
나는 나다 라 할 건가? 아니라 할 건가
변함없는 나의 실체는
오장육부를 감싸고 있는 육신이 아니다
그건 시간에 따라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나의 실체는
보고 듣고 만진 지금의 지각도 아니다
그건 현상이 감각기관에 잠시
닿았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변함없는 나의 실체는 지금 나의 생각도 아니다
그건 수시로 변하는 마음의 반영일 뿐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변함없는 나의 실체를 알아보려면
생각이 무엇에서 일어나는지를 물으며
그걸 지워나가라
그러면 아트만의 경지에 이른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말이다
나뭇잎 하나씩 떨어내는 이 가을
스쳐간 인연들 하나씩 불러내어본다
여자, 또 남자
마주했던 인연들 하나씩 불러내어본다
남자, 또 여자
그리다 만 그림, 그리다 구겨버린 그림
다시 꺼내어 펼쳐본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가버린 밤 꿀단지 어른거리면
그걸 지우고
오는 밤 핑크빛 커튼 어른거리면
그걸 지우고
욕망과 희열, 원망과 증오가 일면
그걸 또 지우고
나는 누구인지 왜 알아야 하나?
나의 실체가 우주의 진리와 같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르느니, 그게 至福이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탈출하라 했다
이때 모세가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하나님은 “I am that I am.”이라 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다워야 나다
탐욕에 흔들리는 마음은 내가 아니다
노여움에 성난 나는 내가 아니다
어리석음에 놀아나는 몸은 내가 아니다
마음을 뛰어넘는 곳에 평온이 있고
그곳에 존재의 기쁨이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이다
자꾸만 높아가는 하늘
둥둥 떠가는 흰 구름
거기에 마음을 얹어보고 싶구나
맑은 하늘을 담아
잔잔한 파문을 내는 호수
거기에 마음을 띄워보고 싶구나. / 2022. 9.
첫댓글 '탐욕과 노여움, 그리고 어리석음에 흔들리면
내가 아니다.' 라는 말씀에 100% 동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는 수행자들은 물론
모든 인간들에게 남은 영원한 숙제이지요.
우리 스스로 던질 수 있는 의문은 두 가지 뿐..
'나는 누구인가?' 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답을 얻기는 어렵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겠죠.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그 삶이 약속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앞으로도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줄곧 이 질문을 던지면서
겸허한 자세로 마지막 날까지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나다워야 나다'라는 한 마디, 가슴 깊이 새기며
석촌님의 봉봉한 하루를 빌어봅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늘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변 상황도 늘 변하니까요.
나는 중학교 때에서 부터 대학때까지 국어시간에 나 라는재목으로
작문을 지어오라는 숙제를 여러번 받았었다
그런데 그거 하기 싫은 숙제 억지로 써서 제출했으니 잘 썼을리가 없다
그런데 내나이 만 70 살이 되어서야 여기 수필수상방 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구
글 제목은 여러가지 이지만 내 신상에 관한 , 내 자서전 식의 글을 쓰게 되었다
결국 나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여러번 글을 쓰면서도 나에 대해서 표현을 다 못한거 같아서 아쉽다
나는 누구일까?
이거는 아직도 고민 해봐야 할 주제 인거같다
이상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늘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엿보이던데
그게 잘사는 것인지는 본인이 생각해봐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다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동성 결혼도 인정하고 싶습니다.
ㅎㅎ 그러나 내 딸과 아들이 동성결혼하겠다고 하면 아직은....
그건 남들이야 언터쳐불이더라도
자신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거니까요.
한 인간이 두 가지 성을 다 가졌다면,
불구의 신체인가요.
불구의 정신일까요.
식물에는 한 몸에 암수가 함께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성을 가지면
무엇이 다른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의 성만을 택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까요.
영화는 무엇을 의미하려고 함인지
그것이 알고 싶네요.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지요.
그런데 성은 자신이 선택하는게 아니라
신의 영역이지요.
그러나 사회는 남성과 여성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받지요.
양성은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시난의 성은 자신이 선택하지못하고 부모가 선택하지요.
거기서 일차적으로 갈등이 일어나고
처음에 몰래 남성으로 지내다가 갈등과 따돌림
두번째 여성으로 지내다가 갈등과 따돌림.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가는데
우리는 성문제 말고도 무수한 선택지앞에서 갈등하고 적응해나가게 되지요.
그런 시사점이 있다고봅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노자도
그리고 많은 성현들도
나를 찾아가는 길을
궁극적으로 가르쳐 주시려 하셨구나
싶습니다.
나를 알아차리면 그곳에 평안이 있고 시간이 사라지고 괴로움도 사라지고 성도 없음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건
결국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봐요.
내 안엔 끌탕으로 가득 찼으니
그걸 버리는 수도자의 길이 그 것이겠지요.
공감합니다
선생님의 품격높은 글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이구우 선생님이라니요?
그냥 석촌이에요.
한해 마무리 잘하시기바랍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로 인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