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선행을 상대방이 거부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 또한 매우 상대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방은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자기 나름대로 이쪽을 위한 선행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에게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살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켜 줍니다. 그래서 혹 죽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해도 다시 살려는 의지를 일으켜주려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앞이 창창한 사람을 붙잡아 그 사람의 한 평생을 불행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서로 상반된 마음을 서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고통을 임의로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그 고통이 어떠한지 당하지 않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눈앞에서 평상의 일과처럼 행한다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그렇게 알고 행합니다. 그래서 오해들이 쉽게 생기기도 합니다. 그것을 풀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일이 다 말해주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알아서 말해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강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도, 아니 서로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루 생활을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보고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기야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대단한 부잣집 청년이 어느 날 오토바이에 치입니다. 그리고 목 이하 전신마비가 됩니다. 속된 말로 인생 종친 것이지요. 그래도 그러한 장애도 이기며 평생을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비, 그래서 차라리 고통이라도 없다면 견디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다면 죽느니만 못하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툭하면 폐렴까지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매일 마음 졸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곁에 일상적 삶을 위해 도울 사람과 간병인을 두지만 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항상 대기 상태이니까요.
본인이 그러한 가족, 부모의 고통을 모를 리 없습니다. 자기도 아프지만 옆에서 고생하는 부모를 보는 것 또한 마음에 짐입니다. 이미 난치병도 아니고 치료 불가능 진단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그야말로 고행보다 더 힘듭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합의했습니다. 6개월로 한정하자고. 그 기간은 최대한 아들 ‘윌’의 삶을 보장해주려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거리낄 것 없는 부자이니 무엇인들 못해주겠습니까? 그 몇 년 지내며 윌의 성질은 아주 까다로워졌습니다. 하기야 몸도 맘도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니 자존심도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것입니다. 앞서 간병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돈이 급한 처녀가 구인광고를 보고 응합니다. 간병인, 여태 그런 경험이 없어도 무조건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자는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가릴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취업부터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그 마음을 보고 면접 당일부터 일을 합니다. 하기야 그 부모님도 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실하게 해보겠다니 맡겨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윌과 ‘루이자’가 만났습니다. 꼼짝도 하지 못하는 환자이지만 전동휠체어로 이동은 합니다. 그리고 힘든 일은 남자 트레이너가 또 있습니다. 문제는 부모가 원하는 것처럼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관리도 하지 않아 덥수룩합니다.
돈이 급해서 취업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돈 때문으로만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환자를 돌보는데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어느덧 대화도 나눕니다. 같이 정원 산책도 나갑니다. 부모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시간이 흐르며 둘 사이에 보이지 않게 마음이 흐릅니다. 무엇은 못해요? 외출도 합니다. 멀리 여행도 다녀옵니다. 윌의 애인이었던 여자와 단짝이었던 친구의 결혼식에도 루이자와 함께 참석해서 축하해줍니다. 그 때는 윌의 마음도 한결 넓어지고 부드러워진 듯합니다. 루이자 덕에.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은 흘러 정해진 때가 되었습니다. 루이자는 실망과 낙담을 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면 마음을 바꾸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주려니 기대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둘 사이에는 어느덧 사랑의 마음도 심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윌의 마음은 그들이 만나기 전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돈도 필요 없다고 뛰쳐나온 루이자는 집에 돌아와 일어난 일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동생의 말대로 다시 생각해봅니다. 윌이 아니라 자신이 이기적일 수도 있구나, 깨달은 것이지요. 그래서 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줍니다.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를 보았습니다. 2016년 개봉작입니다. 다시 보니 또 새롭군요.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