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흔히 주위 사람들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그것은 그가 이런 시사문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고 또 동시에 fact에 대한 그의 이해도를 높여 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깊이 이해하려면 어떤 그 명제보다는 디테일한 세부사항도 알아야 유추를 할 수도 있고 이런 유추가 가능해야 전반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음으로 이런 이해도를 높여 주는 것은 필자가 비록 사이비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지식인의 책무`라는 생각에서다.
첫째, 민비가 일본 낭인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을 때 어떻게 죽었느냐?
둘째, 박 정희 전 대통령이 김 재규 당시 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의해
사망했을 당시의 의복 상태는 어떠했나?
셋째, 세월호의 운영 주 아닌, 실제의 소유주는 누구였나?
잔차를 타기에 마뜩치 않는 날, 수영장을 찾아 풀에 들어가기 전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사우나 독에 들어가면 대개 안면이 익은 동호인들인 만치 흔히 대화의 장이 열리기 마련인데 그 어느 날도 몇 사람이 들어 앉아 있는 가운데서 자칭과 타칭 태극기 부대 지지자로 알려진 두 60대 후반에게 이 상의 세 질문을 해 봤더니 예상대로
“일본도에 찔려 죽은 것 아니냐?” ,
“그저 지방 시찰을 다녀와 양복 차림..‘ ,
“뒤에 죽음으로 발견된 어떤 종교 교주가 운영하는 해운회사지 않느냐?”
는 평범한 대답 뿐 이였고 잔차를 타면서 수영장에 다니고 또 손자 손녀들을 승용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느라고 분주하다는 70대 초반은 `박대통령은 빨개 벗고 죽은 것 아니냐?`는 좀 엉뚱한 응답이다.
민비의 비참함은 일본의 한 여류작가가 오래전 죽음을 코앞에 둔 한 낭인의 참회어린 고백 사실을 일본의 한 잡지에 투고한 내용을 우리나라 오마이 뉴스가 전재함에 따라 세상에 알려 졌다. 허나 결코 이는 우리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비참한 비사라선지 일반 언론들이 묵살하고 오마이도 겨우 하루 정도만 보도하고 삭제해버려 별로 전파되지 않았다.
옛날에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 `명성황후`를 관람했고 여주의 생가까지 방문했던 필자로서는 이런 내용을 처음 알고는 피가 역류하고 분노가 용솟음치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잔차 여행 차 일본을 자주 들락거릴 때도 가끔 이 분노가 떠오르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어글리 연예인등에 심지어 어글리 전직 고위 관료까지 마약을 이용, 여럿이 마치 동물 같은 이런 짓거리를 흉내 낸 것이 들통 나고 있다.
세월호 건은 이미 박 근혜 대통령 시절 당시 이 재명 성남시장이 2년에 걸쳐 두 차례나 오마이 뉴스에 폭로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 헬스도 꾀 열심이어서 살집도 골고루 잘 발달해 보기가 좋은, 상당히 열정적인 태극기 부대 팬이라는 60대 후반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발끈해서 이 재명 지사를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말들을 내 뱉는다. 모두가 우선 기상천외의 세월 호 실제 주인에 충격적인 표정들이였다.
박 정희 건에 특히 비교적 예민한 반응을 보인 케이스는 바로 우리 동창인 J회장이다.
옛날 고교 1학년 당시 적선동 헌 책방에서 빌린, 이북의 부수상이었던, 우리 경복의 전설적인 홍명희 대 선배가 지은 6~7권의 임꺽정전 원본을 읽으며 심취하기도 했고 며칠 동안 깡패들의 하숙방 점거사태로 고초를 당하기도 했던 종로구 옥인 동 하숙집 시절, 마산이 고향인 그는 인근에 경상도 사투리 어조가 유달리 강하고 투박했던 어머니 등의 가족과 함께 사는 서울 집이 있어 부산출신 우리 하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50년이상 지나 먼 훗날 직장도 은퇴한 다음에야 다시 가끔 그와 만나 고난의 엣 추억을 되씹으며 점심을 나누기도 했고 몇 년 전인 박 근혜 시절 답례 차 분당 서울 대 병원을 다녀오는 그에게 성남서 게장백반을 대접하는 날, 갑자기 내게 “이런 게장백반을 먹는 것도 고 박 정희 대통령 덕분”이라는 얘기를 해와 한동안 나를 어리둥절케 했다.
예의는 도외시 한다해도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런 얘기를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날 내가 대접하는 입장에서 그 이유나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반쯤 수긍하는 듯한 태도로 응대하며 넘겼다.
그리고 박 근혜 탄핵 훨씬 뒤인 최근 모처럼 핸드폰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그의 생소한 그 말이 생각 나 “야 이 박 정희 키드야 !‘라고 했더니 그는 ”그런 별칭을 듣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이라고 해서 박 정희 대통령 총격사건의 역사적 배경 등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훗날 검시의 쪽으로부터 흘러나온, 팬티도 안 입은 홑 파자마 차림으로 피살당했다는 설까지 전하며 결코 영광스런 입장이 될 수 없음을 일깨워줬다.
또 그가 탄핵 전 가끔 좀 반 정부적인 비판을 하기도 하는 내게 놀리는 투로 해 온 “빨갱이“(하기야 요즘은 언론자유가 대폭 신장돼 공공장소서 대통령을 빨갱이로 부르기도 하니 옛날 `유신이 무슨 귀신이냐?`며 힐난했다가 치도거니를 당한 것에 비하면 정말 민주주의가 대폭 발전된 좋은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에 대해서는 ”이미 조카가 그 기관에 들어 갈 때 외가 집의 맨 웃어른이라고 해서 벌써 충분한 검정을 받았으니 걱정을 해 줄 필요는 없다.”는 문자도 보냈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침묵이다.
그래서 바로 그 날 고 박 대통령은 헬기편으로 지방 시찰을 다녀오다가 도고온천호텔에 잠시 들리는 바람에 호텔 뜰 앞의 우리 안에 있던 사슴이 요란한 헬기 소리에 놀라 2단으로 높이 튀는 바람에 철조망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참사 예고까지 있었던 뒷얘기는 아직 못해 줬다.
사실 이 필자가 `빨갱이`란 소리는 전에도 들은 바 있다.
무려 20년 가까이나 다녀 온, 분당 탄천 운동장의 수영장에서는 몇 년 이상 약간씩 속마음을 나누며 안면을 굳혀 온, 부산 동래고 출신으로 영등포에서 철제품 공장을 운영해오다 은퇴한 한 고향 선배 양반은 탄핵 얼마 뒤 풀장 물속에서 느닷없이 내게 “실은 그 동안 당신이 빨갱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 와서 보니 그대 말들이 다 맞는 것 같다.”는 실토를 해와 둘이 함께 웃고 만 일이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또 한 동호인, 그는 유난히 건장하고 유쾌한 성격의 경상도 사나이며 헌병대 출신으로 냉수욕을 너무 즐겨 `물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 갑장 양반은 내가 얼핏 반정부 성향의 말을 뱉으면 “귀하는 왜 그렇게 정부를 못 믿느냐?”는 힐문을 했었는데 역시 탄핵 후부터는 성향이 바뀌어 얼핏 하면 `죽일 놈들`이라고 욕했다.
물론 침묵은 상대를 무시하거나 그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도 있고 또 완전히 KO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내 글을 읽고 난 다음의 우리 총무 말처럼 수긍을 쉽게 할 수 없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그들을 깨우쳐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10년 이상 잔차를 타면서 절로 단골집이 된, 서울공항 입구동네의 한 고기구이 집의 `제로키` 지프를 모는 L사장, 그는 내가 한 바이크 우먼과 동행해 갔을 때는 내게 `해 봤느냐?`는 막 질문을 하고 이에 `난 동네치기는 안 좋아한다.`고 답하자 `세상에 쑤XX 안 들어가는 구녕도 있냐?` 는 거친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사이인데 돈을 많이 벌어 성남의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쾌척하는 저명인사며 이 동네 유지로 태극기 부대 열열 지지자다.
이런 양반에게 세월호의 실제 소유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정답까지 알려줬더니 깜짝 놀랐고 마침 그곳에 친지가 있으니 바로 확인 해 보겠다고 했다.
그의 부인이 직접 조리하는 이 구이집의 묵은 지 김치 돼지고기 찌개가 잠실서부터 성남, 분당, 용인, 수원까지의 일대서 가장 맛이 뛰어 난 걸로 소문이 나 요즘도 들리는 집인데 L사장은 그 뒤로 부터는 내게 일절 태극기 부대 성향의 얘기를 꺼내는 일이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62D3B5CD7C16D31)
또 한 사람은 해사출신, 해군의 함장으로, 그리고 국방부 근무시절에는 연평 해전을 겪으며 그 뒷바라지에 애를 먹고 대령으로 예편한 Y씨, 그는 수영장 샤워 실에서 나와 나란히 앉아 알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내 비누를 가져다 사용하는 바람에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서야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고 이에 나는 미소로 답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엣날 30대초 젊은 시절 무려 20일간이나 취재차 해군 홍보 선에 올라 서해의 10여개 섬을 순방한 바 있어 절로 해군에 친근감이 높은 편인 필자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게 보이는 미남인데다 아주 솔직하고 싹싹한 후배여서 내 청에 따라 카톡 친구가 되는 바람에 그의 멋진 부인과 스키 폼 사진도 여러 장 구경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동네서 늦은 점심(이 병무 회장도 가끔 들린다는, 문경사람이 경영하는 `소떼마을` 고기구이집의 옛날 시골 장터 국밥맛과 꼭 같은 한우국밥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즐겨 찾고 있다.)을 함께 하자며 초대했다. 이런 그에게 세월 호 얘기를 건네 봤더니 그는 질색을 하며 `그럼 그런 곳은 때려 부셔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소 흥분했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좀 이상한 얘기만 한다는 듯 한 표정이 됐다.
그래서 “세월호의 운영자는 그 해운회사인 만치 우선 사고 책임은 그 회사에 있다 해도 그 얘기가 가짜라면 그 사실을 폭로한 이 재명 경기지사가 비록 요즘처럼 핍박은 좀 받는다고 해도 명예훼손 등의 문제에 어떻게 무사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반문을 해줬다.
그리고는 역시 대화는 끊어져 버렸지만 그는 솔직한 젊은이가 틀림없는 만치 곧 머지않아 대화의 문은 다시 열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에 기다리고 있다.
<>맨 위의 사진은 일제가 조선 사람들의 분노를 잠 재우기 위해 형식적으로 살인죄로 기소했다가 무죄 방면 했다는 낭인들.
두번째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는 김재규의 묘지로 한때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지만 탄핵뒤 성묘객들이 가져다 놓은 제사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래는 침몰전의 세월호의 웅자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왜 안 밝히냐고요 ? 이는 위의 글 속에 이미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상세한 뒷얘기는 너무 길어서 생략합니다. 따라서 독자의 유추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