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엔 통영의 추도(楸島)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바빴다.
섬의 형상이 농기구인 가래처럼 생겨 가래섬이라 불렀는데...한자화하면서 추도가 되었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마을 전체가 물메기로 덮여 있는 섬이다.
골목마다, 지붕마다, 빨랫줄마다 물메기꽃이 피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러나...3월에는 물메기꽃이 모두 지고 말아서 매우 아쉬웠다.
통영시 산양읍에 속해 있는 추도는 통영항에서 21km 떨어진 섬이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유명한 장어시락국을 먹고 첫배에 승선하였다
추도항 여객선은 통영항에서 새벽 6시 50분에 출항한다.
추도로 가는 선상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았다.
오늘도 아름다운 새날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오늘도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섬섬옥수'가 친근하다
언제든지 어디든지 나와 동행하는 벗이 되리라.
여객선은 약 1시간 10분만에 추도 미조마을에 도착하였다.
추도는 큰산과 작은산을 2개의 축으로 해서 대항, 미조, 샛개 등의 마을이 터를 잡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덴 2~3시간이면 족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오붓해서 재미있다.
한려카페리호는 미조마을에 먼저 들렀다.
빨간색, 파란색, 주황색으로 칠해진 색색의 지붕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아침에 가는 배는 미조마을을 먼저 들른 다음 대항마을로 이동한다.
오후 배는 대항마을을 먼저 들른 다음 미조마을로 이동해서 통영항으로 회항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섬 용두도(龍頭島)다
주민들에게 '용머리'로 통하는 용두도는 마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배를 댈 수 있었고 마을을 이룰 수 있었다.
섬사람들은 그곳을 천하의 명당이라 했다.
또 그곳에 뫼를 쓰면 가뭄이 들고 샘물이 마른다고 믿었다.
미조마을 기슭에 우뚝 서 있는 후박나무가 반겨주었다.
키 10m, 둘레 4m의 거목으로 천연기념물 제345호로 지정돼 있다.
수령은 무려 500년...통영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평가받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사대부나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후박나무는 제주도와 울릉도 등 따뜻한 남쪽 섬지방에서 잘 자란다.
주로 해안을 따라 자라며 껍질과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민가의 담장을 등지고 서있는 후박나무 줄기는 삶의 질곡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추도는 12월에서 시작해서 2월까지 3개월 동안 물메기철이다
이때가 되면 골목마다 빨랫줄마다 물메기꽃이 핀다
때를 놓쳐버린 탓에 한두마리씩 말라가고 있는 물메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ㅠㅠ
이런 모습의 물메기꽃을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
물메기잡이나 말리는 일은 미조리 사람들의 1년 농사다.
추도의 바람과 햇빛으로 말린 물메기는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통영에 나온 물메기는 모두 추도 물메기로 둔갑을 한다고 한다.
미조리에서 대항리 방향으로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마을을 떠나 가장 먼저 용머리로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라 발을 내딛기가 죄송했다.
용머리 해안으로 내려가면 용암이 분출되어 만들어진 볼거리가 나타난다.
얼금얼금 얽은 자국을 드러내놓고 있는 바위가 멋지다
30분쯤 걸어가면 바다를 향해 길게 돌출된 지형이 나타난다.
일명 ‘샛개’라 불리는 곳으로 그 끝점까지는 무려 640m나 뻗어 있다
샛개는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 주는 천연 방파제가 돼 왔다
샛개 끝까지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샛개 끝으로 다가갈수록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배를 타지 않고도 추도의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 중의 명소로 손꼽힌다.
샛개 끝에 다다르면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가 우리를 압도한다.
샛개를 등지고 있는 '샛갯마을'이란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조그마한 선착장이 있고, 10여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마을에서는 여기저기 펜션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오세영 <바닷가에서> 부분
대항마을로 들어선 후, 등넘해수욕장으로 내려섰다.
추도의 해변은 모두 모래가 아닌 몽돌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였다.
새벽에 나오느라 지친 몸을 위해 이곳에서 오래오래 쉬어 갔다.
등넘해수욕장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데크가 만들어져 있었다.
작은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산제당을 겸한 효성당(孝誠堂) 만났다.
효성당 주변에는 잘 관리된 메밀잣밤나무 숲이 있다.
효성당 안에는 호랑이를 탄 산신과 거북을 탄 용왕 그림이 있었다.
이들은 거친 바람과 파도에 맞서며 살아간 사람들의 의지가 되어주었으리라.
방치되어 있는 지금의 효성당 안에는 박쥐의 배설물이 시꺼멓게 쌓여 있었다.
해발 120m의 작은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특이하게도 산 정상에 등대가 세워져 있었다.
등대의 표지판에는 1987년 10월 5일에 완공되었다고 씌여 있었다.
등대 아래에 있는 벤치에서 충무김밥과 더운 커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이곳에 오래오래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멍~ 하니 앉아있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배와 바람소리마저도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듯 하였다.
숲속에서 나뒹구는 동백꽃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직도 눈을 부릅뜬 모습이 뜨거웠다.
못다한 사랑에 취해있는 꽃잎이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았다.
작은산에서 내려와 대항마을 구경에 나섰다.
지붕을 두꺼운 밧줄로 동여맨 것을 보면 바람이 얼마나 센지 짐작할 수 있다.
산기슭에는 지장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건물 양쪽에 거대한 불상이 세워져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암자였다.
그러나 스님은 섬을 떠나버렸는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마을회관을 지나면 길 끝에 학교가 있다.
큰 산 아래 언덕배기에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추도초등학교’가 그것.
물론 지금은 폐교가 된 상태다
교문에는 '탁구장, 파크골프장'이란 간판이 붙어있었는데 신통치않아 보였다.
추도에 오면 반드시 들를 만한 명소가 있다.
진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이선생의 작업실이다.
12년 전 이곳 폐가를 구입해 꾸며 놓았는데 여러가지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대항마을을 한 바퀴 돌고 선착장으로 나왔다.
선착장에는 대여섯 척의 작은 어선들이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통영을 오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어촌계 사무실 앞의 담장에 그려진 모자이크화가 아름답다.
한쪽에는 마을 주민들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모습들이 존경스러웠다.
선착장의 방파제 담벽에는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붙어 있었다.
작품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인가 보다
대항마을을 떠나기 전에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갔다.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팽나무가 운치 있었다.
젊은 아저씨가 큰산 등산을 안내해줬는데...멧돼지 소문을 들어서 포기하였다.
추도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미조마을로 돌아왔다.
등산 안내도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여유롭게 쉬었다.
미조마을 승선장 앞에 있는 동백숲으로 올라갔다.
동백나무는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가득히 품고 있었다
동백꿀을 찾아 바삐 움직이는 동박새들의 소리가 요란하였다.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김초혜 <동백꽃 그리움> 전문
미조마을에서 오후 3시 50분에 출항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미조마을에서 나가는 사람은 오직 우리 둘뿐이었다.
다시 통영의 한산호텔에 지친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