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한 장
예전의 어른들은 무명이나 베 따위를 끊은 헝겊으로 수건을 만들어 사용했다. 지금의 수건은 과거에 비해 재질과 디자인이 훌륭하다. 질감도 매끄럽다.
나는 밤낮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수건을 사용한다. 가정에서 사용하던 낡은 수건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한다. 아내가 빨아 놓으면 그 수건을 또 다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수건 개수가 늘어간다. 수건은 새 것보다는 많이 사용한 것이 눈에 잘 보이고 정이 더 간다. 새 것은 자극적인 인쇄 냄새가 난다.
수건은 내가 과음하여 화장실도 못 가고 방바닥에 토해놓은 이물질을 닦아도 불평이 없다. 수건은 자리를 탓하지도 않고 수원수구하지 않는다. 나는 수건을 볼 때마다 안분지족하며 지내는 것을 부러워한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는 밭에 나갈 때마다 머리에 당목수건을 쓰고 나가셨다. 땀이 나면 수건은 땀을 닦을 수 있고 햇볕을 가려 머리의 보온 유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낙네는 물통이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 수건을 머리에 얹고 물건을 올려 날랐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선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던 과부도 있었다.
수건은 회갑이나 행사장의 답례품으로 사연을 뽐낸다. 수건에는 가족 등의 역사적인 기록물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건은 생각이 나지 않던 전화번호를 기억해 주는 전화번호부가 되기도 한다. 생활 도중에 수건을 가까이 두고 사용하여 매우 요긴하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가족 10명이 땀내 나는 수건을 함께 사용했다. 전 가족이 사용하던 수건에 밴 땀 냄새는 나에게 역겹지가 않았다. 땀내 나는 수건을 같이 사용하다 보면 가족의 체온을 간접적으로 느끼곤 했다.
우리 아이들은 자랄 적에 욕실에서 수건을 한 번 사용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룻바닥에 그 수건을 내놓았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보다 수건의 개수가 많을 때가 종종 있었다.
TV를 통해 중계방송 되던 권투나 격투기 경기에서는 경기를 포기하거나 항복할 때 코치가 수건을 링 안에던진다. 그 순간 링 안에 던져진 흰 수건은 백의의 천사처럼 느껴진다. 실신상태에서 경기를 계속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건은 이때 경기를 중단하는 큰 무기이기도 하다.
현대수필가 목성균의 수필선 <돼지불알>에는 2편의 당목수건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 수필집에 실린 글 중에서 이 2편의 글은 내 생각으로는 당목수건을 잘 묘사한 것 같다.
“… 싸락눈 내리는 고추같이 매운 동지섣달, 당목수건 한 장으로 추위를 막으시고 할머니가 이강들 강바람을 안고 장터 송 약국에 건너가서 손자의 고뿔 약을 지어 오셨다.… 잔칫상에 둘러앉은 좌중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음식을 한 점씩 골라 당목수건에 싸셨을 할머니 … ” <당목수건>
이 글에 나오는 당목수건은 할머니의 살붙이 같은 것이었다.
<소년병(少年兵)>에는
“무 한 개를 다 먹은 인민군은 밭둑에서 일어섰다. 할머니가 얼른 머리에 쓰고 계시던 무명수건을 벗어서 ‘해 줄 게 아무것도 없네’ 하시며 인민군의 볼에 싸매 주셨다. 사시장철 밖에서는 쓰고 사시는 할머니의 살갗 같은 당목 수건이었다."
라는 대목도 나온다.
눈병이 나면 노란 눈곱이 끼어서 눈곱을 닦는 수건이 노랗게 된다. ‘안질에 노랑 수건’이란 속담도 있다. 눈병과 노랑 수건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데서, 매우 친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나도 나이가 들자 ‘안질에 노란수건’처럼 평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여자가 생겼으면 하고 은근히 바랄 때가 있다.
첫댓글 이 수필은 짧지만 은근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이 물씬 묻어나는 글이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어머니의 젖냄새를 맡듯이 그렇게 유정한 글이구려. 당목수건,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잊혀졌던 유년 뒷골목의 풍경을 떠올려 아늑한 과거로 여행 하게하는구려. 그러다가 냅다 여인타령이라니, 아주 그냥 한바탕 웃음을 선사하는 글이기도 하오. 좋은 글이오. 감사!
어제 공주에서 충남펜문학 문학기행 신익선 박사님 문학강연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권장생 작가 <강아지똥>동화와 <몽실언니> 소설도 읽어 보았습니다.
2013년도에 쓴 글을 수정 했습니다.
글을 읽어 주시고 댓글을 달아 주시여 감사합니다
@김창배 권장생 생가에 다녀왔어요
그옛날에 몽실언니를 만나고
온듯합니다 동생없고 다니던모습요
@영부인 어렵게 살았더군요
수건 한장이 결국은 남자들의 로망이자, 남자들의 숨겨진 은밀한 욕망이기도한 여인에의 갈망을 드러낸 점이야말로, 수건을 매개체로 하여 심중의 언어를 과거의 사실에 입각하여 정감 있게 표출해낸, 탁월한 문학적 형상화가 아닐 수 없다오. 마치 한 편의 잘 써진 시편을 보는듯 하잖소? 공주에서의 강연사진과 소감 역시 감사!
방금 퇴근하여
신익선 문학박사님
답댓글을 읽고나니 힘이 납니다.
간절히 원하면
누구에게나 소원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저는 요즈음 행복합니다.
선배님 문인들과 함께 문학
하는 것을 저는 늘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공기같은것입니다
보이지도않고 만질수도없지만
어느곳에나 있는....
행복은 보이지 않지만 빛이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