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 8인의 연재 글
[화요일] [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42회] 2021.07.06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작품집을 출간하고 떠나고 싶은데
-“새 소설집을 기대합니다. 힘내세요”
시·소설 등 작품이 저장된 USB 정리를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췌장암 재발과 소화기관의 암 전이 절제수술을 받은 어느 날 문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에 진저리쳤습니다. 이미 일상에 관련된 모든 것은 유언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큰 빚도, 어마어마한 재산도 없는 범부라 자손에게 특별히 당부할 ‘그 무엇’ 하나 없었습니다.
2008년 1월 2일 췌장암 진단에 투병보다 죽음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당시의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췌장암은 최악의 암으로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습니다. 수술 치료가 기적일 만큼, 그나마도 결국 생존율이 여타 암에 비교할 수 없는 통계수치였습니다. 한마디로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는 ‘올가미’였습니다.
죽음의 올가미, 절체절명 앞에 제일 먼저 버린 것이 옷이었습니다. 이 옷 버리기는 현재 진행입니다. 십오 년째 줄어드는 몸무게로 맞지 않은 옷을 버리다 보니 옷장과 수납장이 텅텅 비였습니다. 자식에게 아버지의 유품 정리 중 첫 번째일 옷 버리기로 또 슬픔을 겪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입니다.
서재의 책은, 베란다의 책장 책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후일 자식이 필요한 곳에 기증하든 소유하든 개의치 않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작가, 인기 없는 소설가이다 보니 칠십을 훌쩍 넘겼는데도 빈손이라 정리할 것이 없었습니다.
컴퓨터 몸체 위의 플라스틱 필통과 안경집에는 연필과 안경 대신에 USB가 들어 있습니다. 정확히 25개입니다. 용량과 모양새, 색깔이 모두 다른 USB에는 컴퓨터로 글쓰기를 시작한 2000년부터의 글이 저장돼 있습니다. 2021년 6월 말까지 시를 비롯해 수필, 산문, 컬럼, 희곡, 콩트, 장편·중편·단편소설 외의 명상 단문 등 다양한 글이 담겨 있습니다.
이중 시를 담은 에세이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장편소설집 ‘이혼의 진실’, 단편소설집 ‘타인의 방’ 등 7권으로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타인의 방’은 2019년 경기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창작집으로 출간된 작품 외의 작품을 퇴고해야 하는데 엄두조차 못 내고 있습니다.
USB에 붙여놓았던 메모까지 떨어져 하나하나 열어 장르별로 정리해야 하는데 바라다보기만 합니다. 200자원고지 6~7백 장 분량의 중편소설 3편도 있는데 어느 것에 있는지 그저 막막합니다. 대충 어림잡아도 중·단편 모음집 3권에 단편집과 콩트집 서너 권, 희곡집 1권 등 출간할 원고가 충분한데 감히 접근조차 못 합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7~8권의 작품집을 출간하고 떠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은 하늘이 그 시간을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입니다.
“얼마나 더 살까요?”
불쑥 물었을 때 주치의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새 소설집을 기대합니다. 힘내세요.”
정말 힘내야 하는데, 이승에 티끌 하나 남기지 말고 정리해야 하는데 오늘도 마음뿐입니다.
제8차 항암치료 / 정병국
정말 마지막입니까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제8차 항암치료 받는 날
혈액종양내과 주치의가 컴퓨터 차트를 보며
이제 그만 받아도 된다는 말에
눈을 감았습니다
마침내 긴 터널 빠져나와
평원을 달리는 기쁨
다급히 되물었습니다
오늘의 항암치료로
자유의 몸이 되는 겁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은 만큼
45kg까지 추락한 몸무게
이것은 치료가 아니라 고문이다
거부하려 했습니다
새 소설집을 기대한다는 주치의 격려
남은 여생의 희망으로 걸어가렵니다
※정병국 암투병기 시집 56쪽 전문
첫댓글
우리 가운데 그 누가 내겐 고난이란 없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생 모두에게 아픔이 있고 고난 때문에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우리 모두는 고난의 밤중에 노래하고 고난의 비를 맞으며 삶의 꽃을 피워갑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무척 피곤하고 지쳐있고 모두가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지요
마치 살벌한 생존경쟁을 통해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평안이 없고 스트레스만 가중되어 갑니다
그것은 애어른 할 것 없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지치고 병든 영혼들입니다
위 글을 읽으니 생각의 파고가 굴곡져 옵니다
우리 모두는 용기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정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정병국 선생님, 남은 여생을 천연계에서 마음을 비우고, 맑은 공기와 물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사시면서 치유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별이 되어
밤 하늘에서 반짝이며
글을 쓰고 계시겠지요
@小姬/작은 아가씨
아! 그리되셨구나요
좋은 작가분인데ᆢ
정병국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안 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