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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월성손씨 종가 서백당의 조란. 밀양의 일가 친척들이 농사지어 보내준 대추로 만드는데, 1년 내내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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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의 월성손씨 대종가 종택인 서백당. |
후손이 직접 농사지은 대추 모아
자손번창 기원하며 제사상 올려
나머지는 다과상 주메뉴로 대접
대구포 보푸라기·문어장아찌 등
제사음식으로 만든 음식도 다양
경주 안강에 있는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강이씨의 가문에 의해 형성된 유서 깊은 양반마을이다. 15세기 중반 조선시대 문신(文臣)인 송재(松齋) 손소(1433~84)가 양동으로 이주하고, 이번(李蕃·1463~1500)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곳에 정착하면서 양성 씨족마을의 틀이 갖추어졌다.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 중기 중앙의 관직을 두루 역임한 문신 손중돈(孫仲暾)과 문묘에 배향된 성리학자 이언적(李彦迪)이 있다. 손중돈은 손소의 아들이다.
마을 북쪽으로는 설창산이 있고, 앞으로는 양동천이 흐른다. 서쪽 산 너머에는 양동마을의 경제적 토대였던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은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마을 바깥에서는 마을의 전체적인 규모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마을 북쪽에 위치한 설창산의 산줄기가 ‘물(勿)’ 자 모양으로 내려와 능선을 이루고, 능선이 이루는 세 골짜기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손씨와 이씨 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외거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듯 형성되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 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돌담길이 이어지는 마을인 데다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984년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2010년에는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양동마을의 월성손씨 종택이 서백당(書百堂)이다. 손소가 처음 지은 집이다.
서백당이 자리한 곳은 언덕의 경사를 이용해 양편에서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오는 길을 만들고, 두 길이 맞닿는 언덕 위에 대문채가 서 있다. 대문에 들어서면 사랑채 기단과 누마루가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사랑채 앞마당으로 눈을 돌리면 거대한 향나무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서백당의 ‘서백’은 ‘참을 인(忍)’ 자를 100번 쓴다는 의미다. 이 서백당에는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멋진 고택의 풍광은 물론, 월성손씨 가문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 각별한 음식 문화 등을 느끼고 공부하기 위해 국내외 많은 인사들이 찾고 있다.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나서는 일반 관광객의 수도 훨씬 늘어났다. 1992년 영국 찰스 왕세자가 이곳을 방문했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일행이 찾아 종가음식을 대접받기도 했다.
서백당은 종손 손성훈 부부가 대구를 오가며 지키고 있다. 이 종가에는 오늘날에도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전통 종가음식이 있다. 바로 대추로 만드는 조란(棗卵)이다.
◆후손들이 농사지어 보내주는 대추로 만드는 조란
조란은 대추를 쪄서 대추 살만 추려내 곱게 다져 꿀과 계핏가루를 섞어 조린 다음, 다시 대추 모양으로 빚어 통잣을 꽂아 장식한 음식이다. 여러 종가에 내려오는 전통 음식 중 하나다. 다식이나 술안주, 간식거리 등으로 사용한다. 조란의 ‘란(卵)’은 열매를 익힌 뒤 으깨어 설탕이나 꿀에 조려 다시 원재료의 모양대로 빚은 것으로, 조란과 함께 밤으로 만드는 율란이 대표적이다.
서백당은 이 조란을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종가를 찾는 수많은 손님에게 내놓는 다과상 상차림의 주메뉴가 조란이다.
보기 드문 전통 종가음식이라는 점도 각별하지만, 무엇보다 조란이 탄생하는 과정이 특별해서 의미를 더한다.
대추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다. 밀양의 손씨 일가 후손들이 농사짓는 대추나무에서 수확한 것을 추렴해서 가져다준다. 매년 가을이면 종가의 지손 일가 40여 가구에서 각기 수확한 대추를 조금씩 내놓아 모은 것을 가져다주는데, 한 가마니 정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보내온 대추는 불천위 제사와 묘사 등 제사에 쓰고, 나머지는 조란으로 만들어 종가를 찾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데 쓴다. 조란을 맛보고 가는 손님이 1년에 1천명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조원길 종부의 말이다.
서백당 조란은 물에 불린 대추를 생강과 함께 넣어 끓인다. 그리고 도마 위에 면포를 깔고 잣을 골고루 다진다. 삶은 대추는 면포에 싼 뒤 빨래를 짜듯 대추 과육을 꼭 쥐어짠다. 과육에 소금 간을 살짝 한다. 과육에 계핏가루를 넣고 약한 불로 졸여서 굳히면 대추 반죽이 된다. 반죽을 떼어 안에 잣을 서너 알 넣고 대추 모양으로 작게 뭉친 뒤, 잣을 박고 다진 잣가루에 굴려 완성한다.
대추는 꽃 한 송이에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서야 떨어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꽃으로만 피었다가 지는 대추 꽃은 없다고 한다. 이런 속성을 지닌 대추라서 반드시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손 번창을 기원하고, 또한 어려움을 이겨낸 자식일수록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가르침을 본받고자 하는 뜻에서 제사상에 올린다.
서백당은 음식에도 취미가 있는 종부 덕분에 조란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귀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 감동을 주고 추억을 만들어가게 하고 있다.
서백당을 찾은 날 마침 서백당 사당 앞의 매화가 피기 시작했고, 종부가 매화 몇 송이를 따와 매화차를 내놓았다. 조란, 율란, 과일과 함께 맛보는 매화차가 각별했다.
◆대구포 보푸라기, 문어 장아찌 등 제사음식을 이용한 음식들
손성훈 종손과 조원길 종부는 종가음식이라고 해서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만들게 되며, 다만 제사가 많으니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남게 되는 음식을 이용해 만들게 되면서 생겨난 음식들이 종가음식의 특징 정도라고 본다는 것이다.
제사 음식을 이용한 서백당의 음식으로 대구포 보푸라기를 대표로 꼽을 수 있다. 대구포를 토막 내 물에 충분히 불리며 짠맛을 없애고, 찜통에 푹 쪄서 살이 익어 부드러워지면 면포에 싸서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린다. 그러면 불면 날아갈 정도의 솜털 같은 보푸라기로 변한다. 여기에다 설탕과 참기름, 통잣을 넣어 무쳐낸다. 사르르 녹는다. 안주나 밑반찬으로 그만이다. 종부가 시조모에게 배워 시어른이 살아계실 때 항상 상에 올렸고, 지금도 만들어 내는 음식이다.
대구포조림, 대구해물신선로, 미역국 등 대구포를 이용한 음식이 2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문어장아찌도 수백 년 전부터 전해오고 있는 내림음식이다. 제사상에 오른 문어를 물에 담가 놓았다가 문어 맛이 우러난 육수 고추장에 박아둔다. 물렁해지면 꿀, 조청, 참기름을 넣고 무쳐낸다.
불천위 제사상에 올랐던 쇠고기는 쪄서 두었다가 육포로 만들어 주안상에 내놓는다.
제사음식으로 화전을 올리는 것도 눈길을 끈다. 봄에는 진달래 화전을, 여름에는 종택에 있는 배롱나무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