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9
오늘 아침에
국방부유해발굴단으로 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작년 10월 대간길 황철봉에서
내가 발견한 두개골 유골이 유전자 김식 결과
국군 백골병단 소속 유격대원으로 판명되었고
경남 합천 초계에 있는 아들과 형제들을 찾았다는 소식이다.
이후 나라에서
호국영웅 귀환 행사를 거행한 후 현충원에 안장 예정이라 한다.
그래서
국군 백골병단이 궁금해 검색해 보았는데
대단한 호국의 영웅들이라 뭉클한 기분으로 잠시 소개한다.
백골병단[白骨兵團 ]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창설됐던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다.
결사 유격대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북한군으로 위장해 북한의 점령지역에 침투, 많은 전과를 올렸다.
백골병단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지시로 1950년 12월에 처음 조직됐다.
당시 전쟁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UN군과 한국군이
38선 이북 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후퇴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UN군은 12월 6일 평양을 빼앗겼고 12월 9일 원산에서 철수했다.
12월 14일부터는 동부전선에서도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의 빨치산 부대가
한국의 후방을 교란한 것이 전쟁에서 밀리는 한 요인으로 보고
채명신(蔡命新) 중령을 유격대장으로 임명해 비슷한 성격의 유격 부대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1950년 12월 21일 대구 달성초등학교에 있던 제 7훈련소에서
817명의 병사가 선발돼 백골병단의 첫 훈련이 시작됐다.
백골병단은
제11연대~ 제16연대까지 6개 연대와 특별대로 모두 1,430명으로 이뤄졌는데
실제 작전에 투입된 부대는 11~13연대 소속 600여 명이었다.
백골병단은 1951년 1월 첫 전투에 투입돼
강원도 영월, 평창, 양양, 인제 등 적의 후방에서 본격적인 유격 활동을 벌였다.
북한 인민군 69여단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뒀으며
대남유격부대 지휘관 길원팔(吉元八) 인민군 중장을 생포해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경향신문의 보도(1990년)에 따르면
당시 채명신 중령은 길원팔을 생포한 뒤 군인으로서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길원팔도 백골병단에 대해 “수 백 명의 군인으로 이곳을 교란하다니 너도 대단하다.
너 같은 놈에게 잡혀 죽으니 내 죽음이 더렵혀지지 않아 좋다”고 말하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골병단은
1951년 3월 30일 국군 제 7사단 제 3연대로 귀환하면서 임무를 마쳤다.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애초 투입된 647여 명 가운데 283명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골병단 [白骨兵團]
1951년 1월25일
임시장교 124명과 병사 700여명에게 군번과 계급을 부여하고
작전명령에 따라 적진에 침투시켰다
1951년 1월30일
육군중령 채명신연대장 휘하의 결사 제 11연대 363명이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서 적진 후방으로 침투하였고,
1951년 2월7일 결사제12연대 330명이
강릉을 경유하여 횡게방면의 적진 배후지역으로 침투하였다.
강원도 홍천군 광원리,구룡령차단, 평창, 인제,
양양지역 설악산 군량밭, 오색 단목령 지구 등 산간지역에서
적69여단을 궤멸시키고
대남빨치산 지휘부 전멸에 기여하는 등 적진 후방을 교란함으로써
아군작전에 크게 기여하는 전공을 올렸으나
1951년 3월 하순 설악산 지구에서
북한군 1개사단으로부터 협공을 받아
보급이 두절되어 일주일간 산야를 행군하며
적에게 저항하다 장렬히 산화하였다.
적진 후방에서
특수전으로 일어난 백골병단 부대의 전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다가
1961년 8월 23일
참전 생존자중 백골병단 결사11연대
작전참모 임시대위 전인식이 전우회를 발기 한 이후
자료를 발굴 정비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백골병단전적비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용대삼거리 매바위 인공폭포 맞은편
거북이 바위아래에 국가보훈처 지정 백골병단전적비가 자리잡고 있다.
조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고 윤창규 대위 등 364명의 대원의 넋을 기리고 충용의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여 귀감으로 삼고자
육군의 지원과 백골병단 참전 전우들의 성금으로 모아
1990년 11월에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설악산 기슭에 세운것이다.
아마, 이번에 발견돤 '한진홍'님도 여기에 이름이 오를것이다.
백골병단전전비 뒤편에는 2012년에야 그 공적을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전인식소령 외 육군본부 직할결사대 참전전우회 유공자 명단이 있다.
전적비 오른편 검은대리석에
백담사계곡전투에서
부상을 입으면서 분전을 펼치다가
적병을 향해 '내가 대대장이다'라고 고함을 지르며
적을 유인 적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함으로써 부대장병의 안전퇴출을 이끌어낸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된 고 윤창규 육군대위의 충용비가 세워져 있다.
백골병단전적비 아래에는
김인식씨의 참전용사 헌시가 새겨져 있다
조국의 자유와 통일을 위하여
출진한 백골병단 육백사십용사!
오대 설악을 넘고 또 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그들!
장하고 거룩한 겨레의 횃불
오! 그영광 청사에
길이- 빛나리
백골병단 전몰장병 394명중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58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고
대전현충원에 3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으나
303위는
아직도 그 행방을 확인하지 못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유해가 행방불명자 303위 중 한 분이고
오랜만에 아주 귀하게
고향의 가족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발굴단도 너무 기쁘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한 아군유해 9800여위 중
가족을 찾은 경우는 이번이 123번째로 아주 오래만의 경사라 한다
아직 미발견 아군유해가 12만여위로 추정되며
전쟁 후 70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이제 흔적이 거의 소멸되어 제보가 없으면 발굴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어디서던
오랜된 유골이나 녹쓴군수품 등이 발견되면 유해발굴단으로 제보를 바란다.
첫댓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박님이 좋은 일을 했군,
유해를 발굴하여 유족에게 돌려준것은 착한 나라 어른들 다운 선행이다.
앞으로, 산행에서도 행운이 따를것 같다.
내가 발견한 유해가 합천 초계 사람이라하니 기분이 묘했다.
전사 후 66년동안 백골상태로 바위틈에서 나 오길 기다린듯 한 느낌....
고향 가까운 사람이 오니 반가워 자기의 한을 풀어달라고 나를 인도한 느낌...
유명한 백골병단 소속인 구국의 영웅을 늦게나마 잘 모시게 되어 나도 너무 좋다.
백골병단유격대가 있다는 것도 처음알았네.
전국을 산행하면서 참 좋은 일을 한것이다. 고향과 가까운 합천분이라니
반갑기도 하고. 백골병단이라는 이름답게 백골의 영웅을 발견했으니
앞으로 복 받을 끼다. 이 산하에 잠든 무명용사들이 아직수만에 이른다고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덕제는 오랜만에 보네. 잘 살고있제?
그래 조국을 위해 산화하고 음지에 묻혀 있는 호국영웅들을 빨라 잘 모셔야 할텐데..
너도 막바지 더위 잘본내고 몸 관리 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