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거리
섬사람들은 낙지발처럼 끈적거리는 길이라 했고 산골 사람들은
고구마뿌랭이 같은 데라 했다 한번 발 딛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고
더 들어가면 건질 게 하도 많아 아조 앉은뱅이가 된다는 곳
간다간다 강진장
마라마라 마량장
치라치라 칠량장
대다대다 대덕장
펴자마자 장평장
버성버성 보성장
도라도라 도암장
다 돌아다닌 장똘뱅이가 장에 왔다가 벚꽃 향기에 취했는지 치마에 파묻혀
닷새를 자고서야 다시 장을 보았다는 장흥 장터의 이마빡 같은 곳, 고쌈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용꼬리의 끄트머리 새끼줄 하나 달랑 쥐고서 이겨보겠다고 목숨을 걸었다.
장동 장평 관산 대덕 용산 유치에 강진 영암 보성 화순의
모든 길이 모여드는 곳 대처로 나가는 외길도 거기였다.
빨치산의 아내에서 경찰 각시가 되었던 여자가 사십 년
서방이 죽자 꼭 일곱 말 닷 되의 눈물을 빼고 가더란다.
신청 퇴물 소리꾼 여자가 서른 해 국밥집을 하고서야
소리가 터졌다는 곳도 칠거리였다.
--이대흠--
이대흠 시인은 장흥 출신 문학박사.
蛇足
‘장흥 칠거리’는 만약 우리나라 어딘가에 8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청주시
내덕동에 있는 칠거리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최다 갈래 길이다.
장흥 7거리 중앙에는 ‘칠거리’ 라는 글씨가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다.
동동리는 몰라도 7거리는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로 장흥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는 곳이다.
7거리 주변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장흥에서 최고 중심가였으나, 1972년 부산-순천 간
남해고속도로가 개설되고, 1975년 부산-여수-장흥(수문포)-목포 간 해운여객선 운행이
폐쇄되면서 부산에서 의류와 일용잡화 상품을 반입하는 장흥읍 재래시장 도매상들이
없어져 ‘장흥의 명동거리’라고 불리던 칠거리 상권은 쇠퇴되어 신 지역의 개발과
그에 따른 버스터미널의 이전, 상권이동으로 인해 발전이 멈춰버렸다.
장흥군에서는 칠거리 상권을 활성화하려고 ‘정남진장흥토요시장’이 시작되는
장흥읍사무소 앞에서부터 상설시장 입구까지 150m 구간의 상가도로변에
‘정남진 장흥 칠거리 문화 벼룩시장’을 개장하여 운영하고 있다.
장흥에 인연이 있어서 버스 정류소가 있던 ‘칠거리’도 들어 알고, 도암장과 가까운
좌일 장터 옆에서도 살았으며 강진장은 모임 행사에 쓰려고 대구능금 한 상자를 사서
버스를 타러 갔는데 그만 막차를 놓쳐, 등에 지고 50리 길을 친구하고 달밤에
걸었던 추억이 있다. 마량, 칠량장도 귀에 익숙하여 그 또한 반갑고 그리운 장터다.
시를 통해 ‘장’ 소리를 들어보게 되니 옛날에 엄마하고 장에 가던 생각이 나네요.
장에 가는게 그저 좋았던 추억, 그리운 것 들은 먼 기억으로 멀어져 가고
어제의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나이가 세월 탓을 한들 무슨 소용.
건강관리 잘하시고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장흥의 명소가 된 7거리, 바로 옆에는 탐진강이 흐르고
장흥 토요시장이 있다.
첫댓글 과문해서인지 장흥7거리는 처음이네. 한번 가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