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자유로를 달려 30여 분, 헤이리 조금 못 미친 곳에 파주출판도시(
www.pajubookcity.org)가 자리하고 있다. 출판 기획, 편집에서부터 인쇄, 물류,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 대한민국 출판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곳에는 1백10여 개의 출판사와 1백50여 개의 출판 관련 산업체가 입주해 그야말로 ‘책의 도시’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외 유수 건축가들이 설계한 출판사 사옥들은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건축 전시장으로 완성시켰다. 때문에 한가로운 가로변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원 없이 책 구경하러온 문학청년들과 건축 답사 차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찾아온 대학생들이 대부분. 출판을 위한 산업도시인 탓에 아직은 대중적인 상업 시설도 부족하고 일반인들의 발길도 뜸한 편이지만, 심학산과 갈대 샛강에 둘러싸인 조용한 교외에서 하루 종일 책에 푹 빠져 지내보는 것도 가을의 제법 괜찮은 소일거리가 아닐는지….
출판도시의 건축물은 서로 같은 듯 다르다. 각각의 건물은 기존 건축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지어졌지만, 헤이리처럼 공동의 건축 지침을 정해 주변 자연이나 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모던한 건축 양식을 적용하고 콘크리트, 나무, 금속 등 자연색을 거스르지 않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 스텐리 알렌, 플로리안 베이겔, 승효상, 민현식 등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해 최근 건축 트렌드인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선보인다.
파주출판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현상 공모로 설계안이 결정된 이곳은 출판정보센터, 전시장, 회의장, 레스토랑 등 다양한 기능을 담아 출판도시의 핵심 역할을 한다. 건물의 측면을 따라 흐르는 갈대 샛강과 한옥 한 채는 센터의 상징물. 한옥은 전라도 정읍 김동수 가옥의 별채를 고스란히 옮겨온 것으로 출판도시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미래를 함께할 정신적 상징이자 갈대 벌판 속에 문발(文發)이라는 원래 지명의 의미를 되살리는 좌표 역할을 한다.
건물의 1층은 아직도 비워져 있는 곳이 많은데 이는 출판사들이 1층을 서점이나 갤러리로 꾸며 독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 곳곳에 빈 터가 남아 있고, 건물을 올리기 위해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출판도시는 1998년에 기획된 이래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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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를 길게 달려 파주출판도시에 들어서면 갈대 샛강 위의 작은 다리 응칠교가 나타난다. 이곳에 올라서면 아시아정보문화센터와 김동수 가옥의 고즈넉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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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카보네이트와 스틸로 기하학적인 외관을 선보인 보림출판사 사옥. 건물 내부의 기능이나 형태와 관계없이 표면 형태를 도드라지게 꺾거나 접거나 휘게 하는 ‘표피의 건축’을 지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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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심학산은 출판도시의 뒤편을 넉넉하게 감싸고 있다. 출판도시 내 타운 하우스로 유명세를 치른 ‘헤르만하우스’도 심학산의 앞쪽에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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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출판사는 알레한드로 자이라 폴로와 김영준이 함께 설계한 곳으로 목재를 사용한 외관, 직사각 평면의 간결한 내부가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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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3개의 매스로 이루어진 한길사 사옥은 출판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 중 하나이다. 건축가 김헌이 설계한 이곳은 아무런 장식 없이 동판으로 구성된 외관과 내부의 텅빈 공간감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어놓은 북 숍&북카페는 10여 곳 내외에 불과하지만, 저마다 다양한 장르의 도서와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어 한두 곳만 들러도 하루해가 훌쩍 간다. 출판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방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헌 책방 ‘보물섬’.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2층에 위치한 이곳은 오전 11시~오후 6시까지(월요일 휴무) 열려 있다.
책의 계절인 가을 토요일 밤은 책 마니아를 위해 야간 ‘Crazy Reading Party’를 진행하고 있다. 1백원이면 책 한 권을 빌려볼 수 있고, 몇천원이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곳. 김영사에서 운영하는 북 아웃렛 ‘행복한 마음’은 출간된 지 1년 이상 된 모든 도서를 35~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넉넉하게 테이블과 의자를 갖춰 서점이라기보다는 도서관 같은 분위기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엄마와 아이를 위한 다양한 강의가 진행(전화 예약 031·955-3155)되는데, 엄마들이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팝업북 만들기를 가르쳐준다.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인 열화당에서는 ‘향기가 있는 책방’에서 자사 서적을 판매한다. 화보와 내용이 충실해 소장 가치가 높은 책들이 가득한 곳. 카페 인포테크, 다락원 북카페, 신원에이전시 북카페는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책을 읽기에 적당하다. 10월에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어른들을 위한 책 잔치’가 열려 좀 더 다채로운 읽을거리가 준비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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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형출판사의 미니멀한 건축물 사이 계단을 올라서면 푸른 가을 하늘과 ‘북숍 효형’의 간판이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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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건물의 중간중간이 펀칭된 유니크한 외관의 문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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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별 조형물이 천장에 매달린 열화당 ‘향기가 있는 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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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내부에는 책을 빌려주는 벼리도서관, 제3세계 나라를 돕기 위한 차&커피 코너 등 다양한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다. |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도시에는 놀거리나 즐길거리가 거의 없다. 출판도시의 끝자락에 복합 쇼핑몰 이채가 있긴 하지만 서울 시내처럼 다양한 브랜드를 갖춘 북적이는 쇼핑몰을 기대해선 안 된다. 출판 문화 산업을 위한 장소인 만큼 이채의 내부도 다소 조용한 분위기. 영화관인 씨너스 이채, 대형 찜질방 아스클리조트, 푸드코트를 갖추고 있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의 옆쪽으로는 트렌디한 유기농 샌드위치 숍 ‘the Market’과 가구&인테리어 소품 숍 ‘아이이케아’가 눈길을 끈다.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출판도시, 청년정신과 접속하다’라는 주제로 ‘파주북시티 북 페스티벌 2006’이 개최될 예정이다. 한옥 앞 응칠교 책거리를 비롯, 대학생 독서토론대회, 출판사 대표 작가와의 만남, 책 벼룩시장, 난장 파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독서의 계절 가을에 모처럼 열리는 어른들을 위한 책잔치인 만큼 주말에 하루 여행 삼아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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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케아의 오프라인 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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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북 아웃렛 ‘행복한 마음’의 한편에는 어린이를 위한 독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놀이와 책 읽기를 즐길 수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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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한 콘크리트 벽면과 수직성을 강조한 전면 유리벽이 인상적인 열린책들 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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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샌드위치(5천~6천원대)의 메뉴가 한 달에 한 가지씩 바뀌는 the Market.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곳답게 실내 인테리어도 감각적이다. |
자가용 서울·일산 방면에서 자유로를 타고 파주·문산 방면으로 가다가 김포대교 기점 15km 지점에 위치한 파주출판단지 진입로 표지판을 보고 우측 도로를 따라 들어간다.
셔틀버스 합정역(2·6호선) 1번 출구에서 셔틀버스 운행.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단, 일요일과 공휴일은 운휴. 문의 031·955-0001
일반버스 200번 : 합정에서 일산을 경유하여 출판도시로 운행. 100-3번 : 파주 시내 운행, 문의 031·941-1006 8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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