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대표님의 한국 탈시설에 대한 증언이 제네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기만적 탈시설 정책을 비판하고 진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촉구합니다.
🌈재방영 링크: https://webtv.un.org/en/asset/k1i/k1i6b968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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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 대표님의 한국 탈시설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 제네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현장입니다.
한국 정부의 기만적 탈시설 정책을 비판하고 진짜 장애인 권리 보장을 촉구합니다.
💥발언문보기
My name is Kyushik Lee, and I‘m from South Korea. From a young age, I moved from rehabilitation centers to unregistered institutions run by churches. However, this was all presented as my ‘choice.’ I was forced to stay at home, and my family struggled to care for me. The state took no responsibility, leaving the burden entirely on my family, which is why I had no choice but to tell my parents, “Please abandon me in a institution.”
제 이름은 이규식이고, 한국에서 왔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재활원과 교회가 운영하는 미신고 시설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맨날 집구석에 갇혀 살아야 했고, 가족은 나를 돌보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온전히 가족들이 책임지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모에게 어쩔 수 없이 말했습니다. “나를 시설에 버려주세요.”
Then, at the age of 32, I became independent. My first home was a shanty. It was hot in the summer, cold in the winter, and I nearly had an accident there. Even now, life is still challenging, but I continue to live independently, making my own choices and relying on others when necessary.
그러다 나는 32살에 자립 했습니다. 첫 집은 판잣집이었어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사고도 날뻔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는 게 힘든 순간이 많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자립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I knew little about human rights. I was born with a disability and, while my siblings went to school, I could not. I didn’t understand why I had to live in a institution, but looking back, I realize that was discrimination.
나는 인권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태어나 보니 장애를 가졌고, 다른 형제들이 학교에 다닐 때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설에 내가 왜 가야하는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차별이란 걸 알았습니다.
While the government frequently claims that disability rights are protected, the reality is that discrimination remains widespread. “Astronomical taxes are required for deinstitutionalization,” says Oh Se-hoon, the Mayor of Seoul , the capital of Korea. Mayor Oh proposes to assess the capacity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to determine whether they can be deinstitutionalized and to evaluate how well they are living after deinstitutionalization before deciding whether to readmit them into institutions. When entering a institution, no one questions it, but when we try to leave, our lives are judged under the guise of ‘choice.’
국가는 늘 장애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알리지만, 실제로는 차별이 만연합니다. "장애인 탈시설에 '천문학적 세금'이 든다" 대한민국의 수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입니다. 오 시장은 장애인의 역량을 조사해서 탈시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탈시설 후에도 잘 살고 있는지 평가해서, 시설 재입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시설에 들어갈 때는 아무 말 없이 강제로 들어가게 하면서 시설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삶을 판단합니다.
Recently, the ordinance supporting deinstitutionalization in Seoul was abolished only two years after its enactment. Thankfully, the UN CRPD issued a statement regarding this.
얼마 전 서울시 탈시설 지원 조례가 제정된지 2년만에 폐지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하게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With every change in administration, laws and ordinances change, and the CRPD is interpreted at the convenience of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Astronomical budgets are being allocated not to deinstitutionalization, but to the expansion of institutions. While only 5.9 billion KRW is allocated for deinstitutionalization pilot programs, 112 times that amount is spent on maintaining institutions.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과 조례가 바뀌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맛대로 해석되는 게 현실입니다. 천문학적 예산은 탈시설이 아니라 시설확대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탈시설 시범예산은 59억뿐이지만, 시설 유지 예산은 112배 규모의 돈이 쓰이고 있습니다.
Some ignore this imbalance and argue that we should wait until a more robust system is in place before pursuing independent living. But when exactly will that time come? By then, I will be dead. I believe the right time for deinstitutionalization is ‘right now.’
누군가는 이런 불균형을 보지 않은 채 말합니다. 조금 더 탄탄한 체계가 만들어지고 나서 자립해야 한다고요. 바로 그 때는 언제일까요? 그 때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나는 장애인이 탈시설하기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Institutions cannot be an option. We must live together in the community. Deinstitutionalization is not a matter of time but of determination. Please urge the Korean government to make the decision for deinstitutionalization. I hope that the CRPD will be applied more accurately and powerfully in reality. I ask you to stand with us.
시설은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