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 29일 안식일
예수, 쉼을 주시는 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식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응답할 때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 미래에 경험하게 될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연구 범위: 창 15:13~21, 히 3:12~19, 히 4:6~11, 히 4: 1, 3, 5, 10, 신 5:12~15, 히 4:8~11
기억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히브리서 1장과 2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통치자 그리고 해방자로 즉위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소개한다. 이런 전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다윗 언약을 통해 약속하신 왕과, 그들의 원수로부터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잘 이해할 수 있다(삼하 7:10, 1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쉼을 하나님께 속한 쉼과 안식일의 쉼, 이렇게 두 가지로 묘사한다(히 4:1~11).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했던 쉼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셨다. 첫 번째 안식일은 완전을 가능케 하신 분과 함께 완전을 경험하는 날이었다. 참된 안식일 준수는 그 완전을 회복시켜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쉼을 약속하신다.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세상을 구속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해 놓으셨음을 기억하게 된다. 참된 안식일 준수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처음 창조되던 때를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미리 맛보게 해 준다.
TMI Time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참된 안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지 깨닫는다.
- 느끼기
나의 일을 그치고 예수님의 공로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 행하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으로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반응하여 영원한 안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TMI 안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 헌금을 걷습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1. 여러분의 삶에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장 편안한 쉼이 있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8:1, 시 105:43~45)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3:12~19)
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입니까?(히 3:15, 4:7)
5.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히 4:9~11)
6. 히브리서 4:8~11에 나타난 안식일의 쉼은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7. 이 땅에서의 쉼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식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응답할 때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 미래에 경험하게 될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TMI 밖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함
1. ‘내가 실천한 TMI 활동 : ( )’을 적고 함께 나눕니다.
2. 각자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나눕니다.
3. 우리가 오늘 오후에 실천할 TMI 활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2022년 1월 23일 일요일
쉼의 장소로서의 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며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을 알리도록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다.
창세기 15:13~21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때, 그분의 계획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출 8:1, 시 105:43~45). 그 계획에는 바로가 금지했던 안식일의 쉼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출 5:5).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산이었다(창 11:31~1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셨던 것이었다(출 19: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면서,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알릴 수 있는 땅에서 살기를 원하셨다. 마치 창조 때의 안식일처럼,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구속자와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이었다.
신명기 12:1~14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단순히 그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쉼을 누리게 될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우상들을 모두 몰아냈을 때 쉼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장소를 보여 주실 것이었다.
출애굽기 20:8~11과 신명기 5:12~15을 읽어 보라. 안식일의 쉼은 어떤 두 가지를 기념하는 날이며, 그 둘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의 안식일을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에 연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창조의 기념일과 애굽으로부터의 구속의 기념일로서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묵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이어서) 창조와 구원 두 가지 모두가 안식일 계명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창조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우리는 쉼을 통해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구원에 있어서도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안식일 준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강력한 표시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며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을 알리도록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다.
<적용>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그날의 축복을 풍성히 경험하기 위해 한 주일간 그대의 삶에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영감의 교훈>
빛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음 - “처음으로 언약의 약속을 받은 저희 조상 아브라함은 이방인에게 빛을 전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친척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아브라함에게 준 허락에는 바다의 모래와 같이 무수한 자손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허락은 그가 가나안 땅에서 큰 국가의 건설자가 되기로 되어 있는 것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로 더불어 맺으신 언약에는 세계 만국이 포함되어 있었다.”(선지자와 왕, 368)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원한 기쁨 속에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이 땅에서부터 인정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4일 월요일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과 인도하심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믿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히브리서 3:12~19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이 약속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슬프게도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경계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믿음이 부족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했다고(민 13:32) 기록한다. 그들은 그 땅이 분명 좋은 땅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땅에 거하는 자들이 강하고 성들은 튼튼하여 그들이 결코 그 땅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호수아와 갈렙 또한 그 땅이 좋은 곳이라고 보고했으며 그곳에 거하는 자들과 성들이 강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민 14:7~9). 그러나 재앙들을 내려 애굽을 무너뜨리셨고(출 7~12장),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를 전멸시키셨으며(출 14장),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으로 그들을 먹이시고(출 16장), 반석에서 물을 내셨을 뿐만 아니라(출 17장), 구름 기둥으로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목격한 백성들이(출 40:36~38) 그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 세대가 믿음 없는 자들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아이러니인가!(느 9:15~17, 시 106:24~26, 고전 10:5~1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인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선물들을 약속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4:2은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라고 이야기한다.
<묵상>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경계까지 한 백성으로 여행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그들의 기대와 상반되는 보고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믿음 없는 자들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 믿음을 갖는 것이나 갖지 않는 것 모두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독자들에게 “피차 권면하고”(히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히 12:15) 하라고 권면한다.
<교훈>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과 인도하심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믿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적용>
동료 신자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을 돕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불신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교만하고 불신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만일 저희 조상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고 당신의 법도를 따르고 율례대로 행했더라면 그들은 오래 전에 가나안에 정착하여 번영하고 거룩하고 행복한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64).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이 일상의 삶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5일 화요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하나님의 안식으로의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기 전에 즉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해야 한다.
히브리서 4:4~8을 읽어 보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연관하여 “오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광야 세대의 불신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안식에 들어가라고 권고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완고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약속이 “남아 있다”(히 4:1, 6, 9)고 이야기한다. 그는 헬라어 동사 카탈레이포(kataleipo)와 아폴레이포(apoleipo)를 사용면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히 4:1)고 강조한다. 다윗의 때에도 이 안식에 들어가라는 초청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은(히 4:6, 7, 시 95편 인용함) 그 약속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유효함을 뜻한다. 바울은, 참된 안식일의 쉼이 창조 때부터 허락되었다고 이야기한다(히 4:3, 4).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안식 속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신다. “오늘”은 성경 전체에 걸쳐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모세가 약속의 땅 경계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였을 때도 그는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신 5:3, 비교, 신 4:8, 6:6). 그 순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며(신 11:2~7)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해야 하는 때였다(신 5:1~3). 마찬가지로, 여호수아 또한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5)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그래왔듯이, “오늘”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결심의 때,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때이다(참조, 고후 6:2). “오늘”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서 3장과 4장에서 다섯 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히 3:7, 15, 4:7).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것은 불순종과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행동은 마치 광야 세대가 지상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지연시켰던 것처럼 우리가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을 지연시킬 수 있다.
<묵상>
고린도후서 6장 1~2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멸하시고(히 2:14~16) 새 언약을 허락하셨다(히 8~10장).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4~16). “오늘”이라는 호소는 하나님께서 지금껏 우리에게 신실하셨으며 그분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즉시 응답해야 할 이유를 주셨음을 인정하도록 초청한다.
<교훈>
하나님의 안식으로의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기 전에 즉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해야 한다.
<적용>
그대가 미루지 말고 “오늘” 내려야 할 영적인 결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지체했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나요?
<영감의 교훈>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늘 산 믿음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없이는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깨어 있고 활동하고 기도해야 한다”(증언보감 2권, 60).
<기도>
오늘이라는 시간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시는 기회의 시간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저를 위해 준비된 영원한 안식에 꼭 들어가도록 오늘 결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그분의 안식에 들어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이루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히브리서 3:11, 4:1, 3, 5, 10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초청하시는 안식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계시는가?
출애굽기 20:8~11에 있는 안식일 계명과 모세가 이를 다시 기록한 신명기 5:12~15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초청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돌비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완성하신 것을 기억하게 한다(출 31:18, 34:28).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을 기억한다는 관점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외치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실 죄로부터의 최종적인 구원을 가리켰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갑절이나 축복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히브리서 4:9~11, 16을 읽어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는가?
안식일의 쉼은 하나님께서 창조(창 2:1~3, 출 20:8~11)와 구속(신 5:12~15) 사역을 완성하신 사실을 기념한다. 마찬가지로, 하늘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즉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온전한 희생이 완성된 것을 기념한다(히 10:12~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리(福利)를 완성하신 후에야 비로소 안식하시는 분이심을 주목해 보라. 창조의 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마치신 후에 쉬셨다. 훗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승리를 통해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정복이 마무리되고 이스라엘이 “평안히 살”게 되었을 때 성전에서 쉬셨다(왕상 4:21~25, 비교, 출 15:18~21, 신 11:24, 삼하 8:1~14) . 이스라엘과 그 왕이 그들 자신을 위한 집을 마련한 후에 하나님 자신을 위한 집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묵상>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나 자주 구원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부족함에 집중함으로 영적 불안감 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불안감은 구원을 얻기 위해 나 스스로가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고 이는 우리에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쉼과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빌 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안 가운데 거하며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으켜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야 합니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이루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적용>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허락하시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내려놓아야 할 마음의 부담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 -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제칠 일을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창조 사업의 기념물을 세우셨다. 안식일은 전 인간 가족의 아버지요 대표자인 아담에게 위탁되었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상에 거할 모든 자들 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정당한 주권자시라는 것과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그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8)
<기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고 또 내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새로운 창조를 미리 맛봄
안식일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앞으로 다가올 하늘을 기대하는 날이다.
출애굽기 20:8~11, 신명기 5:12~15, 그리고 히브리서 4:8~11을 비교해 보라. 안식일의 쉼에 관하여 어떤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는가?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위의 성경절들은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에 쉬라고 권면한다. 한편 히브리서 4:9~11은 미래를 바라보도록 초청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안식일의 쉼을 준비해 두셨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안식일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는 날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래적 차원의 안식일 준수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자주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창조 세계를 원래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을 기억나게 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당신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새로운 창조에서 안식일은 구속의 정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늘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유대교 전통에서 언제나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BC100년과 AD200년 사이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생애’(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2, 18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곱 번째 날은 부활, 곧 다가오는 시대의 안식의 표징이다.” 훗날 아키바(Akiba)라는 랍비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분 앞에서 물었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상급을 받겠습니까?’ 거룩하신 분께서 답했다. ‘앞으로 오는 세상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다시 물었다. ‘그 세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십시오.’ 거룩하신 분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보여 주셨다”(Judaism: A Quarterly Journal, vol.16, 443, 444).
<묵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은혜로 구원받는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가 될까요?
(이어서) 안식일은 기념하는 날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날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을 것임을 나타낸다. 안식일은 믿음이 살아 숨 쉬는 날이며 생기가 넘치는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우리의 확신에 대한 가장 온전한 표현이다.
<교훈>
안식일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앞으로 다가올 하늘을 기대하는 날이다.
<적용>
다가오는 안식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하늘에서 경험하게 될 안식일의 감격을 나눠 보세요. 어떤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구속의 능력을 보여 주는 안식일 - “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시대의 소망, 289)
<기도>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쉼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보다 넓은 차원의 안식일의 의미를 기억하며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께서 아담이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구속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온전한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를 통해 받는 구원의 상징으로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의 쉼을 사용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안식일의 쉼을 그렇게 기록한 것은 신자들이 안식일을 소중히 여겼으며 그날을 지켰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2세기부터 교회 안에서 생겨난 매우 결정적인 변화에 대한 증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신 오히려 유대교와 옛 언약에 충성하는 것의 상징으로서 피해야 할 것으로 치부됐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교로 회귀하는 것인 양 여겨졌다. 예를 들어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Ignatius) 이렇게 말했다. “옛 질서 속에 살던 자들은 새로운 소망을 발견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생명이 부활하게 된 주의 날을 지킨다”(Israel and the Church: Two Voices for the Same God, 42). 이와 마찬가지로 마르키온(Marcion)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유대인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의 표징으로 안식일에 금식하라고 주문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의 상징이라는 이해가 훼손되자 기독교 안에서 안식일 준수가 사라지게 됐다.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성결하게 하시는 능력의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시대의 소망, 288, 2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안식일 준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2. 참된 안식일 준수와 율법주의적 안식일 준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 차이점을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우리 중에 있는 천사들(동티모르)
루시오와 옐리 부부는 파탈루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파송되었습니다. 그들은 선교를 위해 방과 후 수업을 시작했고 그 수업은 인기가 치솟아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것이 불과 몇 주 만에 57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매일 오후마다 수업은 기도와 성경 수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재림교회에 다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달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수업에 참석하지 않던 아이들이 학생들을 위협하고 추궁하면서 수업을 방해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6명의 아이들만이 오후 수업에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집주인이 루시오와 옐리에게 집을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얼마 후 루시오는 몇몇 마을 사람들이 침례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4개 마을 중 한 곳에서 전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전도회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루시오와 옐리는 다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루시오가 그의 물을 받기 위해 물웅덩이로 갔을 때 한 여성이 그를 멈춰 세웠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정체와 목적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당신은 돈으로 내 사람들을 꼬셔서 당신의 교회로 가도록 하고 있어요.” 그것은 누명이었습니다. 루시오는 아무에게도 돈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두 달 후 한 재림교회 지도자가 4개 마을 중 다른 한 마을에 전도회 설교를 하러 도착했습니다. 군중은 매일 늘어났고 루시오와 옐리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에 몇몇 남자들이 전도회 천막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회는 그날 밤 중단되었습니다.
전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교회가 빌린 트럭에 올라 떠날 때 더 많은 돌이 날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키 큰 남자 7명이 나타났습니다. 크게 놀란 세 젊은이들만이 그들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돌은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일곱 명의 빛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분의 천사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안식일에 13명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삶을 예수님께 바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천사를 본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교과
이번주 교과
교과 방송
전체 보기
52기억절
내 적용

2022년 1월 29일 안식일
예수, 쉼을 주시는 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식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응답할 때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 미래에 경험하게 될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연구 범위: 창 15:13~21, 히 3:12~19, 히 4:6~11, 히 4: 1, 3, 5, 10, 신 5:12~15, 히 4:8~11
기억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히브리서 1장과 2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통치자 그리고 해방자로 즉위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은 우리에게 쉼을 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소개한다. 이런 전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다윗 언약을 통해 약속하신 왕과, 그들의 원수로부터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잘 이해할 수 있다(삼하 7:10, 1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쉼을 하나님께 속한 쉼과 안식일의 쉼, 이렇게 두 가지로 묘사한다(히 4:1~11).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했던 쉼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셨다. 첫 번째 안식일은 완전을 가능케 하신 분과 함께 완전을 경험하는 날이었다. 참된 안식일 준수는 그 완전을 회복시켜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쉼을 약속하신다.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세상을 구속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해 놓으셨음을 기억하게 된다. 참된 안식일 준수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처음 창조되던 때를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미리 맛보게 해 준다.
TMI Time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참된 안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지 깨닫는다.
- 느끼기
나의 일을 그치고 예수님의 공로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 행하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으로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반응하여 영원한 안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TMI 안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 헌금을 걷습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1. 여러분의 삶에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장 편안한 쉼이 있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8:1, 시 105:43~45)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3:12~19)
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입니까?(히 3:15, 4:7)
5.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히 4:9~11)
6. 히브리서 4:8~11에 나타난 안식일의 쉼은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7. 이 땅에서의 쉼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식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응답할 때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 미래에 경험하게 될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TMI 밖으로 : 안교 소그룹이 함께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함
1. ‘내가 실천한 TMI 활동 : ( )’을 적고 함께 나눕니다.
2. 각자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나눕니다.
3. 우리가 오늘 오후에 실천할 TMI 활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2022년 1월 23일 일요일
쉼의 장소로서의 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며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을 알리도록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다.
창세기 15:13~21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때, 그분의 계획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출 8:1, 시 105:43~45). 그 계획에는 바로가 금지했던 안식일의 쉼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출 5:5).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산이었다(창 11:31~1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셨던 것이었다(출 19: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면서,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알릴 수 있는 땅에서 살기를 원하셨다. 마치 창조 때의 안식일처럼,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구속자와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이었다.
신명기 12:1~14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단순히 그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쉼을 누리게 될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우상들을 모두 몰아냈을 때 쉼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장소를 보여 주실 것이었다.
출애굽기 20:8~11과 신명기 5:12~15을 읽어 보라. 안식일의 쉼은 어떤 두 가지를 기념하는 날이며, 그 둘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의 안식일을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에 연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창조의 기념일과 애굽으로부터의 구속의 기념일로서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묵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이어서) 창조와 구원 두 가지 모두가 안식일 계명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창조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우리는 쉼을 통해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구원에 있어서도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안식일 준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강력한 표시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며 온 세상에 참된 하나님을 알리도록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다.
<적용>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그날의 축복을 풍성히 경험하기 위해 한 주일간 그대의 삶에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영감의 교훈>
빛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음 - “처음으로 언약의 약속을 받은 저희 조상 아브라함은 이방인에게 빛을 전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친척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아브라함에게 준 허락에는 바다의 모래와 같이 무수한 자손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허락은 그가 가나안 땅에서 큰 국가의 건설자가 되기로 되어 있는 것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로 더불어 맺으신 언약에는 세계 만국이 포함되어 있었다.”(선지자와 왕, 368)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원한 기쁨 속에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이 땅에서부터 인정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4일 월요일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과 인도하심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믿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히브리서 3:12~19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이 약속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슬프게도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경계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믿음이 부족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했다고(민 13:32) 기록한다. 그들은 그 땅이 분명 좋은 땅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땅에 거하는 자들이 강하고 성들은 튼튼하여 그들이 결코 그 땅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호수아와 갈렙 또한 그 땅이 좋은 곳이라고 보고했으며 그곳에 거하는 자들과 성들이 강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민 14:7~9). 그러나 재앙들을 내려 애굽을 무너뜨리셨고(출 7~12장),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를 전멸시키셨으며(출 14장),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으로 그들을 먹이시고(출 16장), 반석에서 물을 내셨을 뿐만 아니라(출 17장), 구름 기둥으로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목격한 백성들이(출 40:36~38) 그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 세대가 믿음 없는 자들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아이러니인가!(느 9:15~17, 시 106:24~26, 고전 10:5~1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인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선물들을 약속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4:2은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라고 이야기한다.
<묵상>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경계까지 한 백성으로 여행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그들의 기대와 상반되는 보고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믿음 없는 자들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 믿음을 갖는 것이나 갖지 않는 것 모두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독자들에게 “피차 권면하고”(히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히 12:15) 하라고 권면한다.
<교훈>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과 인도하심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믿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적용>
동료 신자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을 돕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불신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교만하고 불신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만일 저희 조상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고 당신의 법도를 따르고 율례대로 행했더라면 그들은 오래 전에 가나안에 정착하여 번영하고 거룩하고 행복한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64).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이 일상의 삶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5일 화요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하나님의 안식으로의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기 전에 즉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해야 한다.
히브리서 4:4~8을 읽어 보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연관하여 “오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광야 세대의 불신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안식에 들어가라고 권고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완고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약속이 “남아 있다”(히 4:1, 6, 9)고 이야기한다. 그는 헬라어 동사 카탈레이포(kataleipo)와 아폴레이포(apoleipo)를 사용면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히 4:1)고 강조한다. 다윗의 때에도 이 안식에 들어가라는 초청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은(히 4:6, 7, 시 95편 인용함) 그 약속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유효함을 뜻한다. 바울은, 참된 안식일의 쉼이 창조 때부터 허락되었다고 이야기한다(히 4:3, 4).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안식 속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신다. “오늘”은 성경 전체에 걸쳐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모세가 약속의 땅 경계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였을 때도 그는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신 5:3, 비교, 신 4:8, 6:6). 그 순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며(신 11:2~7)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해야 하는 때였다(신 5:1~3). 마찬가지로, 여호수아 또한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5)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그래왔듯이, “오늘”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결심의 때,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때이다(참조, 고후 6:2). “오늘”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서 3장과 4장에서 다섯 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히 3:7, 15, 4:7).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것은 불순종과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행동은 마치 광야 세대가 지상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지연시켰던 것처럼 우리가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을 지연시킬 수 있다.
<묵상>
고린도후서 6장 1~2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멸하시고(히 2:14~16) 새 언약을 허락하셨다(히 8~10장).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4~16). “오늘”이라는 호소는 하나님께서 지금껏 우리에게 신실하셨으며 그분의 초청에 지체함 없이 즉시 응답해야 할 이유를 주셨음을 인정하도록 초청한다.
<교훈>
하나님의 안식으로의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기 전에 즉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해야 한다.
<적용>
그대가 미루지 말고 “오늘” 내려야 할 영적인 결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지체했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나요?
<영감의 교훈>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늘 산 믿음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없이는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깨어 있고 활동하고 기도해야 한다”(증언보감 2권, 60).
<기도>
오늘이라는 시간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시는 기회의 시간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저를 위해 준비된 영원한 안식에 꼭 들어가도록 오늘 결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그분의 안식에 들어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이루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히브리서 3:11, 4:1, 3, 5, 10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초청하시는 안식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계시는가?
출애굽기 20:8~11에 있는 안식일 계명과 모세가 이를 다시 기록한 신명기 5:12~15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초청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돌비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완성하신 것을 기억하게 한다(출 31:18, 34:28).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을 기억한다는 관점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외치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실 죄로부터의 최종적인 구원을 가리켰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갑절이나 축복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히브리서 4:9~11, 16을 읽어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는가?
안식일의 쉼은 하나님께서 창조(창 2:1~3, 출 20:8~11)와 구속(신 5:12~15) 사역을 완성하신 사실을 기념한다. 마찬가지로, 하늘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즉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온전한 희생이 완성된 것을 기념한다(히 10:12~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리(福利)를 완성하신 후에야 비로소 안식하시는 분이심을 주목해 보라. 창조의 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마치신 후에 쉬셨다. 훗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승리를 통해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정복이 마무리되고 이스라엘이 “평안히 살”게 되었을 때 성전에서 쉬셨다(왕상 4:21~25, 비교, 출 15:18~21, 신 11:24, 삼하 8:1~14) . 이스라엘과 그 왕이 그들 자신을 위한 집을 마련한 후에 하나님 자신을 위한 집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묵상>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나 자주 구원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부족함에 집중함으로 영적 불안감 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불안감은 구원을 얻기 위해 나 스스로가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고 이는 우리에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쉼과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빌 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안 가운데 거하며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으켜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야 합니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이루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적용>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허락하시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내려놓아야 할 마음의 부담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 -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제칠 일을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창조 사업의 기념물을 세우셨다. 안식일은 전 인간 가족의 아버지요 대표자인 아담에게 위탁되었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상에 거할 모든 자들 편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정당한 주권자시라는 것과 그들은 그분의 손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그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8)
<기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고 또 내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새로운 창조를 미리 맛봄
안식일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앞으로 다가올 하늘을 기대하는 날이다.
출애굽기 20:8~11, 신명기 5:12~15, 그리고 히브리서 4:8~11을 비교해 보라. 안식일의 쉼에 관하여 어떤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는가?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위의 성경절들은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에 쉬라고 권면한다. 한편 히브리서 4:9~11은 미래를 바라보도록 초청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안식일의 쉼을 준비해 두셨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안식일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는 날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래적 차원의 안식일 준수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자주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창조 세계를 원래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회복하시리라는 약속을 기억나게 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당신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새로운 창조에서 안식일은 구속의 정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늘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유대교 전통에서 언제나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BC100년과 AD200년 사이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생애’(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2, 18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곱 번째 날은 부활, 곧 다가오는 시대의 안식의 표징이다.” 훗날 아키바(Akiba)라는 랍비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분 앞에서 물었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상급을 받겠습니까?’ 거룩하신 분께서 답했다. ‘앞으로 오는 세상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다시 물었다. ‘그 세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십시오.’ 거룩하신 분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보여 주셨다”(Judaism: A Quarterly Journal, vol.16, 443, 444).
<묵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은혜로 구원받는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가 될까요?
(이어서) 안식일은 기념하는 날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날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을 것임을 나타낸다. 안식일은 믿음이 살아 숨 쉬는 날이며 생기가 넘치는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우리의 확신에 대한 가장 온전한 표현이다.
<교훈>
안식일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앞으로 다가올 하늘을 기대하는 날이다.
<적용>
다가오는 안식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하늘에서 경험하게 될 안식일의 감격을 나눠 보세요. 어떤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구속의 능력을 보여 주는 안식일 - “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시대의 소망, 289)
<기도>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쉼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보다 넓은 차원의 안식일의 의미를 기억하며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게 도와주시옵소서.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께서 아담이 실패했던 바로 그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구속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온전한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를 통해 받는 구원의 상징으로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의 쉼을 사용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안식일의 쉼을 그렇게 기록한 것은 신자들이 안식일을 소중히 여겼으며 그날을 지켰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2세기부터 교회 안에서 생겨난 매우 결정적인 변화에 대한 증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신 오히려 유대교와 옛 언약에 충성하는 것의 상징으로서 피해야 할 것으로 치부됐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교로 회귀하는 것인 양 여겨졌다. 예를 들어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Ignatius) 이렇게 말했다. “옛 질서 속에 살던 자들은 새로운 소망을 발견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생명이 부활하게 된 주의 날을 지킨다”(Israel and the Church: Two Voices for the Same God, 42). 이와 마찬가지로 마르키온(Marcion)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유대인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의 표징으로 안식일에 금식하라고 주문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의 상징이라는 이해가 훼손되자 기독교 안에서 안식일 준수가 사라지게 됐다.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성결하게 하시는 능력의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시대의 소망, 288, 2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안식일 준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2. 참된 안식일 준수와 율법주의적 안식일 준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 차이점을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우리 중에 있는 천사들(동티모르)
루시오와 옐리 부부는 파탈루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파송되었습니다. 그들은 선교를 위해 방과 후 수업을 시작했고 그 수업은 인기가 치솟아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것이 불과 몇 주 만에 57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매일 오후마다 수업은 기도와 성경 수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재림교회에 다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달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수업에 참석하지 않던 아이들이 학생들을 위협하고 추궁하면서 수업을 방해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6명의 아이들만이 오후 수업에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집주인이 루시오와 옐리에게 집을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얼마 후 루시오는 몇몇 마을 사람들이 침례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4개 마을 중 한 곳에서 전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전도회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루시오와 옐리는 다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루시오가 그의 물을 받기 위해 물웅덩이로 갔을 때 한 여성이 그를 멈춰 세웠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정체와 목적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당신은 돈으로 내 사람들을 꼬셔서 당신의 교회로 가도록 하고 있어요.” 그것은 누명이었습니다. 루시오는 아무에게도 돈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두 달 후 한 재림교회 지도자가 4개 마을 중 다른 한 마을에 전도회 설교를 하러 도착했습니다. 군중은 매일 늘어났고 루시오와 옐리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에 몇몇 남자들이 전도회 천막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회는 그날 밤 중단되었습니다.
전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교회가 빌린 트럭에 올라 떠날 때 더 많은 돌이 날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키 큰 남자 7명이 나타났습니다. 크게 놀란 세 젊은이들만이 그들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돌은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일곱 명의 빛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분의 천사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안식일에 13명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삶을 예수님께 바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천사를 본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